연애할때는 몰랐다. 내가 이렇게 심하고 중증일지.
이제 없으니깐 알겠다. 내가 얼마나 그 관계가 깊고 내가 얼마나 진심이 가능한 사람이고 진심이 아니면 이렇게 의미를 안둘수가 있는지.
어제 새벽에 난 나름의 선언을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난 옛날부터 지금까지 나 자신이 주인이 되고 진정으로 주체성을 가진 인생을 살아본 기억이 없다.
하다못해 어릴적부터 정말 어렸을적 부터 음료수하나도 내가 직접 고민하고 고른 기억이 없을정도다.
항상 아빠나 엄마에게 골라달라하고 내가 골라야 한다면 하루종일 고민을 하고 결국은 맨날 후회를 했다.
이미 어릴적부터 이러한 악습관이 쌓이다 보니 연애때도 내 주체가 아닌 타인을 주체로 내 인생을 살았다.
친구 관계도 그렇다. 겉으로 보면 정말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고 항상 연락하는 친구 한명이상은 늘 꼭 만들었지만, 이게 정답이 아니였다.
오히려 친구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나랑 맞는 친구도 아닌 친구조차 굳이 심적으로 힘들어 하면서 끌고 갔다. 이것은 정답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물론 지금에서야 초등학교 중학교때부터 지내온 친구를 손절할 일은 없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내 의견을 따를 시기다.
항상 남에게 맞추던 내인생과 항상 남의 의견이 편했던 내 인생에서 이제는 나의 내적 외침을 주의깊게 들을 차례다.
이제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야한다. 남 이였으면 인생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을수도 있지만 난 이제야 시작이다.
이제 진정으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들어설 차례다.
나 자신의, 내 자아의 왕이 될 차례인 것이다.
물론 내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다 타인 맞춤형 인생이고 관계 강박의 인생이였지만 그럼에도 오래 걸릴지라도 이제 주인을 되찾을 시간이다.
나름의 혁명인 것이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고 나름의 주체성을 찾고자 노력하는 선언도 했음에도 지금당장 오늘만 봐도 예전 전 여친과 갔던 번화가에서 나도 모르게 남들의 얼굴에 전 여친 얼굴을 대입해 환각을 보고 자꾸 있지도 않을 전 여친을 진심으로 찾고 있던 내 모습을 나도 모르게 발견했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모습을 발견한 내 모습 자체가 이미 시선을 점점 외부로 돌리고 나 자신을 객관화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만큼 심각한 나 를 이제야 안 것이고 이제야 내 상태 파악을 슬슬 시작할수 있었다.
이것이 그저 의미 부여이고 바로 내일만 되도 꺾이고 힘들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 이자리에서 타자를 치는 이순간에는 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찾을수 있다. 지금의 생각도 나 자신이고 한 없이 나약하고 의존하는 나 역시 '나'이다.
나는 나를 알아야하고 나는 나를 이제 보내주어야 한다.
갈길이 아주 멀고 미래를 생각하면 답이 없어 너무나도 두렵고 우울하지만, 그럼에도 미래에 존재하는 나를 위해서, 과거에 고통스럽게 존재한 나를 위해서 현재 지금의 나를 존중해야한다.
이것이 자존감 회복과 자아 주체성을 향한 첫 걸음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난 나 자신을 여리고 나약한 풀 하나로 비유하고 싶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보잘것 없고 의지도 없어보이고 척박한 땅에 깊게 뿌리 내린 잡초, 그중 풀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거센 외부의 바람과 저항에 이리 바닥에 처박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지만 결국은 풀 하나는 꺾이지는 않는다. 이것이 나약한 풀 하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풀 하나이기 때문에 꺾이지 않고 나약함이란 강인함과 유연성이 풀 하나를 지탱하는 것이다.
비록 지금의 난 이 풀 하나처럼 볼품없고 나약하고 마음도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흔들리기에 유연한거고 나약하긴떄문에 발전하고 성장할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