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라는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 그렇다. 누가 사랑의 처형자가 되고 싶겠는가? 애초에 사랑의 처형자란 무엇인지 우리는 생각을 해야한다. 책 제목이 우리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남기는지 고민해보자. 처형자는 타인의 삶을 끝내는 직접적인 연관자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처형자는 무엇일까? 글 첫 문단 마지막을 보면 저자는 이야기한다. “낭만적인 사랑은 신비로워야 지속이 되고 그 사랑을 자세히 살펴보면 신기루가 되어 날아가 버린다.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가 싫다” 이 줄에서 저자의 생각을 볼 수 있다. 그전에 우선 나는 이번 독후감의 내용을 에피소드 1 ‘사랑의 처형자’만을 다룰 계획이다. 책의 제목과 내용,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극명하게 들려주는 에피소드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책의 줄거리 또한 따로 정리 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생각과 경험, 책의 내용을 같이 추적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것 이다.
우리 인간들은 먼 옛날부터 지금, 그리고 미래 모두 포함하여 세대를 이어가고 유전자를 보존해가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랑이란 개념을 우리는 끌어안고 추구하는 존재들로 즉, 인간은 사랑의 존재다. 단순 낭만적 관점에서 벗어나 사랑은 인간의 세대 유지 욕구의 원동력이며 만약 인간에 대한 관점을 유전자를 이어가는 존재들로 본다면 사랑은 유전자 보존에 있어 가장 원만하고 보편적인 과정이며 인간의 인생에 주 목적이다. 우리들 또한 살아가면서 최소 한번 이상은 사랑을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 경험하고 추구하며 동경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은 먼 인간의 과거부터 존재한 신호지만 아이러니하게 사랑의 감정은 안정적으로 발달하지 못했다. 오히려 안정적이지 못하기에 존재하는 감정이다. 사랑이 안정적이라면 그만큼 욕구와 충동, 매력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고, 이는 인간의 발달에 큰 제약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사랑은 가장 원초적이며 원시적인 감정이자 신호이며 다루기 어렵고 충동적이며 인생의 큰 과제이다. 책에서 첫 에피소드의 내담자는 사랑의 고통으로 인생마저 고통으로 변한 인간을 보여준다. 그녀는 70대의 노령에도 8년전 상담가와 단 27일의 상담 경험으로 사랑에 빠져 그 짧고 강렬한 기억이 본인을 지배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매일을 다시는 받지 않는 8년전 상담가인 매튜에게 전화 메시지를 남기며 살아간다. 그녀는 이미 인생의 존재 이유가 매튜란 존재에게 넘어갔고 자신의 주체가 사라져 자살을 시도하는 등 심각한 문제까지 이어졌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매튜와의 이별 경험으로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이유는 더 이상의 이별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녀는 사랑의 노예이다. 27일간의 짧은 추억에서 공감받음과 본인이 수용 됐다는 그 만족이 사랑이란 감정을 불렀고 그 사랑이란 감정이 순수한 형태로 이어진 것이 아닌 이해욕구와 섞여 왜곡되며 집착으로 변했다. 이러한 왜곡된 사랑의 형태를 저자는 강박관념이라고 표현하였다. 난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쓰라리고 화가 나기도 했다. 델마의 답답한 태도에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델마의 태도가 충분히 이해가 됐다. 나와 매우 비슷한 과정을 겪은 인간이였다. 거기다 그녀는 노령으로 인하여 죽음이란 개념이 더해져 복잡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자살을 생각함에도 막상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나에게 공감을 일으켰다. 이 이야기는 남들에게 못하는 이야기지만 나 또한 최근 고작 1년도 못 채운 한 인간을 잊지 못했고 두달 전까지만 해도 인생은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단순히 그 존재가 그리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사랑의 첫 경험으로 인하여 나의 존재마저 잊고 몰입하였고 내 존재가 수용됐다는 쾌락이자 욕구에 점점 더 기대고 버림 받지 않기위해 집착을 했다. 하지만 진짜 고통은 이별 후이다. 책 내용 속 델마하고 비슷하다. 그녀도 27일간 행복한 시간에 비교되는 지금의 인생의 불만족으로 인하여 과거의 본인을 추구하는 것이 일종의 강박으로 나타난 것이다. 나도 이별 이후 행복하고 충족된 ‘나’와 비교해서 내가 받아들여졌다는 그 생각과 감정이 가짜였다는 배신감과 과거에 비해 비참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고 나의 모든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결국 이별이란 형태가 곧 나의 ‘존재’에 대한 거절로 느껴졌다. 그리고 헤어진 이유의 진실을 난 모른다. 이는 델마의 이야기와 일치한다. “옛 애인을 자살로 몰아넣는 완벽한 시나리오가 뭐겠어요? 아무런 이유도 말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떠나버린다, 그것이 바로 그가 내게 한 짓이에요!” (78p) 그녀 또한 심한 고통으로 왔을 것이다. 이후 델마는 저자의 추진으로 8년이란 기간 동안 못 만난 메튜로 구성된 3인 면담 이후 그녀는 단순히 사랑을 잃은 것이 아니라 인생의 감각과 기둥을 잃었다. 그녀가 사실 강박의 형태를 보여 준 것은 인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자기 방어였고 그녀가 정말 강렬히 사랑했던 그 경험이 그녀의 인생의 존재 이유였던 것이다. 또한 그녀는 면담 내내 핵심을 말하지 않고 빙빙 돌려 주제를 왜곡하며 이야기했다. 이러한 과정조차 정말 현실의 차가운 진실에 도달하면 자신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사실을 몰랐고 그저 강박을 없애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서 면담을 진행하였고 결국 그 진실을 델마는 직시하고 과거의 그 짧은 행복과 이후의 강박으로 살아가던 인생의 기둥이 무너져서 허무함과 분노밖에 남지 않았다. 이 증상에 대해서 저자는 반성을 하며 말하였다. “나는, 누구라도 치료할 수 있다는 과대망상에 다시 한 번 빠졌었다. ... 돌이켜보면 거의 성공할 확률이 없었는데도, 그녀에게 고통스러운 직면을 시켜버렸다. 나는 대체할 만한 무엇을 세우지도 않고 방어 체계를 벗겨내 버렸다” (84p) 사실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다. 저자 정도의 전문가 마저도 본인을 쉽게 망각하기도 하고 델마 또한 자살을 생각하는 등 죽음에 미련이 없어 보임에도 누구보다 본인을 잃기 싫어서 강박, 외면등의 자기방어를 보여줬고 노령으로 인한 죽음 그 자체도 무서워하며 사실 누구보다 인생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인간이었다. 나는 이 에피소드의 상담은 실패한 상담이라고 생각한다. 이 에피소드의 마지막은 결국 델마는 상담을 그만두고 저자와 관계가 멀어진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이러니하게 본인을 고통스럽게하고 진실을 직시로 허무함과 고통, 분노를 느꼈음에도 한달에 한번 메튜와 만나 이야기 함으로 인생의 감각을 찾고 살아간다. 그것을 저자는 보고서를 통해 알고 저자는 마지막으로 이야기한다. “머리골치 아픈 자료들! 어쨌든 이것은 내게 약간은 안도감을 주었다.” (86p) 이것은 절대 해피엔딩이 아니다. 결국 저자는 상담을 통해 내담자의 직시를 이끌고 강박을 벗겨냈음에도 그 후는 없다. 저자는 내담자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그녀는 비록 지금은 삶을 찾았다고해도, 그 삶을 찾은 방식 또한 결국 메튜에게 의지하는 삶이다. 이것을 과연 성공이라 볼수있을까? 상담은 절대 구원적 해결책이 아니다. 나도 이별 후 심적으로 힘들어 상담을 받았지만 델마 처럼 나도 모르게 내 현실과 과거를 직시하지 못하고 말을 돌렸다. 이것은 전혀 의도적 행동이 아니라 무의식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방어기제였다. 이에 따라 상담은 전혀 진전되지 못했고 이 책의 결말처럼 나도 상담을 도중에 중단했다. 그리고 상담조차 (상담을 구원으로 보는 시각으로 인하여) 나를 해결 못했다는 그 죄책감이 나에게 온다. 내가 그만큼 문제아인가? 내 존재는 결국 거절당하는 존재인가? 그럼과 동시에 나 또한 인생에 대한 미련과 존재감이 사라진다고 느꼈다. 하지만 내가 힘들수록 그것은 삶에 대한 미련이었다. 나 스스로 해코지 할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몸만 떨릴뿐 내 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난 이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설명하지 못 하지만 최소한 깨달은 바는 있다. 타인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생각보다 인간은 생명유지에 관하여 끈질기제 설계되어 있고, 그 끈질김이 때로는 왜곡되어 인간에게 큰 고통을 남긴다. 이것은 델마와 나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진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보고 상담가는 자신의 상담이 내담자, 그 인간의 삶에 대하여 책임이 존재하고 본인 스스로를 망각하지 말고 전문성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인간은 망각과 모순의 존재다. 하지만 그 모순을 인지하고 배우며 전문성을 길러 상담하는 것이 기술이다. 단순히 기술이라 명시된 여러 개념을 배우는게 아니다. 진정한 기술이란 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개념을 적용하여 책임감있게 타인을 대하는 것이 상담이다. 상담가는 스스로의 사명감을 가지고 상담해야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매우 정밀하고 복잡한 존재다. 그리고 솔직히 내담자를 완전히 이해할수 없다. 그럼에도 전문성을 가지고 그 타인을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자신의 망각과 모순이 개입되지 않도록 자제하는 것이 기본 태도이자 내담자를 진정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제목인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의 의미는 단순한 사랑의 이야기가 아닌 상담가로써 델마의 사랑(인생)을 함부로 처형자처럼 끝낸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개념도 강렬하지만 동시에 신기루처럼 금방 희미해져 왜곡되는 모순을 지니고 있고 저자는 이미 델마의 삶을 의도치 않게 끝내고 느낀 찝찝함과 자신의 오만함이란 모순을 망각하고 끝내 인식함으로 느낀 경험을 우리에게 델마 에피소드와 사랑이란 개념을 이용하여 우회적으로 알려준 것이 아닐지 생각한다. 즉 우리 인간은 쉽게 망각하고 모순에 휩싸이는 존재인데 그러한 망각과 모순속에서 우리 존재를 어떻게 유지시키고 실존함을 증명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상담가들은 단순 상담이 아닌 모순과 망각속에서 존재의 이유를 증명시키는 존재임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