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지 말고, 살아내기

by 김인수 스테파노


큰아이 결혼식 날, 우리 가족은 긴장감 속에 하루를 맞이했다. 단순히 결혼식이란 의례 때문만은 아니었다. 얼마 전에 약속한 ‘우리만의 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결혼식장에서 울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누구든 눈물을 보이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일종의 가족 협약. 처음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약속은 우리 스스로를 다잡는 장치가 되었다. 첫애 결혼식장을 울음 대신 웃음을 선택하자는 것. 기쁨의 자리를 눈물로 흐리지 말자는 다짐은, 어쩌면 품속에서 벗어나는 천둥벌거숭이와 이별의 슬픔을 예고하는 듯한 부모 마음의 방어막이기도 했다.


결혼식을 기록하던 촬영자가 비디오카메라를 들이대며 “아버님, 한마디 해주시죠”라고 말했다. 미리 준비한 문장도, 마음속 대본도 없었다. 그 순간 가슴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은 의외로 담백했다.


“상대에게 기대하지 마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만 생각하라. 상대가 무언가를 해주기를, 또는 해주었으면 하는 것을 바라지 마라. 지금껏 우리 부부가 싸움 없이 살아온 이유다.” 둘째 아이이던가, 학교에서 “부모님 싸움(다툼)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란 질문에 저만 손을 못 들었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이 말은 거창한 가르침이 아니다. 살아온 일상의 무늬에서 저절로 새겨진 소박한 지혜다. 부부가 함께 산다는 것은 결국 서로의 기대를 줄여가는 과정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왜 저 사람은 내 마음을 몰라줄까, 왜 저걸 안 할까, 저것을 해주면 좋겠는데 등등’이 같은 서운함이 쌓이면 작은 균열이 깊은 골이 되기 마련이다. 반대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스스로에게 먼저 묻고 행한다면, 서운함보다 뿌듯함이, 상대는 고마움이 남는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외손주가 서른네 달. 말이 늘고, 질문이 많아진다. 무조건 ‘아니~’를 외친다. 제 방식대로 세상을 알아가는 나이다. 아이의 투정과 웃음을 지켜보다 보면, 그날 결혼식장에서 던졌던 말이 여전히 유효함을 느낀다. 산다는 것은 거창한 약속이 아니라 작은 배려의 연속이라는 것. 서로에게 기대지 않겠다는 다짐이야말로 오래도록 관계를 지켜주는 힘이라는 것을.


결혼식장에 눈물 대신 웃음을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아쉬움이나 애틋함에 매달리기보다, 새로운 출발을 축복하는 마음이 우선이었으니까. 그것은 슬픔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웃음 속에 녹여내는 지혜였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기대하고 또 기대를 배신당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배우자는 서로에게, 친구는 친구에게, 직원은 상사에게, 상사는 직원에게. 그러나 그 기대가 줄어들수록 관계는 오히려 단단해진다. “나는 너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너는 왜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니”라는 원망보다 훨씬 따뜻하다.


살아낸 날들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단순하다. 기대하지 말라.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고 움직여라.


결혼식장에서 카메라 앞에 서서 던진 그 한마디는, 내 삶이 전한 가장 진실한 고백이었다. 세상은 늘 불완전하고, 관계는 언제나 어긋날 수 있다. 그러나 기대 대신 내어줌을 선택할 때, 우리는 조금 더 단단히 서로를 지켜낼 수 있다.


앞으로 외손주가 세상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이 진실을 전해줄 날이 올지 모른다. 혹 그날이 오면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기대하지 않아도 괜찮아. 대신 네가 해줄 수 있는 것을 해. 그게 마음 편한 일이고, 배려고 사랑이야. 그것이 살아내는 방법이다.”

20250927-RV603120-2.jpg 20250927, 도봉산 스님과 석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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