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選拔)의 역설, 뽑기와 뽑히기

by 김인수 스테파노

선발(選拔). 듣기만 해도 묵직하고 진지한 단어다. 선발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기준, 누가 봐도 ‘잘할 만한 사람’을 뽑기 위한 장치다. 시작은 분명 그랬다. 뭔가 공정하고, 냉철하며, 능력과 자질이 반짝 드러나야 할 것 같은 제도.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선발은 제 기능을 잃고 괴물로 변했다. 능력을 검증한다는 이름 아래, 본래 목적과 무관한 시험이 생겨나고, 불필요한 부산물이 늘어나며, 사회 전체가 과잉 경쟁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었다. 마치 진주를 고르려는 행위에 진주 대신 조개껍데기만 잔뜩 헤적이는 꼴 아닐까.

선발의 가장 큰 명분은 ‘공정성’이다. 누구에게도 불평등하지 않도록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인생은 하나의 기준과 척도로 그 가치를 담을 수 없을 만큼 복합적인데 이를 숫자로만 계측한다. 필연적으로 정보의 유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뿐만 아니라 계량화할 수 없는 높은 차원의 가치 추구는 어느덧 관심 밖의 일이 된다. 그런데 점수 몇 점, 순위 몇 등으로 잘라내다 보니, 선발되어서 할 일과는 무관한 영역까지 측정 대상이 된다.


국내 영업 사원을 뽑는 곳에 낮은 TOEIC 점수로 응시조차 못해야 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럼에도 우리는 이상하게도 이러한 요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뭔가 변별력이 있어야 하니까.” 결국 ‘공정’을 위해 덧붙인 장치들이 공정을 해치고, 본질에서 멀어지게 만든 거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부분까지 열심히 외우고, 면접관이 묻지도 않을 질문에 대비하느라 시간을 쏟아부은 기억. 정작 필요한 건 현장에서 해내는 힘인데, 준비 과정은 점점 실전과 무관해진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들어야 했던가. ‘준비하는 자의 비극, 준비시키는 자의 안도.’ 아이러니하게도, 준비하는 자는 지쳐 쓰러지는데, 선발하는 사람은 안도한다. “그래도 선정 기준 즉 뽑을 거리가 많으니, 나중에 욕은 덜먹겠지.” 이게 바로 뽑기와 뽑히기의 슬픈 딜레마 아닐까.


그래서 선발 시스템은 사회적 비용을 눈덩이처럼 불린다. 준비생은 불필요한 공부와 훈련에 수년을 쏟고, 사회는 그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능력 있는 사람을 뽑으려다, 오히려 ‘준비만 잘한 사람’을 키워내는 꼴이다. 선발에서 선별로, 선별에서 소비로 꼬인 꼴이다. 이쯤 되면 선발은 제도가 아니라 일종의 소비시장에 가깝다. 학원, 교재, 자격증이 줄줄이 매달려 선발의 신분증 양산 시장이다. 모두가 뽑히기 위해 달려가지만, 막상 뽑히고 나면 “이 모든 과정이 꼭 필요했나?”라는 질문이 따라와 꽤 오랫동안 공허감과 허탈감 자괴감과 씨름해야 한다.


선발은 간단한 일이었다. ‘그 분야에서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으면 되는거다. 그런데 지금은 ‘잘 준비한 사람’을 뽑는 여과장치로 바뀌어버렸다. 채용되어 맡게 될 본래의 일은 뒷전. 지금도 수많은 선발의 장면을 마주한다. 입시, 채용, 공모전, 오디션....

하고 싶은 질문은 그 선발 과정이 정말 필요한 걸 뽑아내고 있는가? 아니면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불필요한 짐을 지우고 있는가?다. ≪시대예보:호명시대≫의 ‘선발의 몰락’을 읽고 끄적였다. 웃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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