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밥상

그리움과 사랑의 맛

by 오늘의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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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덧은 생각보다 끔찍했다. 팀원들에게 아직 임신 사실을 얘기할 수 없어 뱃멀미하는 듯 울렁이는 속을 가지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도 아무도 없을 때까지 참았다가 토를 했다. 변기를 붙잡고 아무리 토를 해도 가라앉지 않는 속 때문에 눈물이 났다. 점심시간이 되면 속이 조금 안 좋다고 하며 팀원들을 식당으로 보내고 혼자 파주의 찬바람을 쏘고 들어와 힘듦을 꾹 참고 묵묵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3월 초의 봄날 파주의 공기는 정신이 확 들 만큼 차가웠다.

‘어떻게 다시 들어온 회사인데. 여기서 포기할 순 없어!’

결혼 후 호기롭게 회사를 그만두고 나는 내 일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퇴사를 한 후 나는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하지만 기혼녀에 아이도 없는 내가 일할 수 있는 회사는 흔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종업계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막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본 후였다. 일 년 동안이나 열심히 준비했던 아이였는데 타이밍이 절묘했다. 출근할 회사 팀의 리더에게 이야기했지만, 대답은 생각보다 쿨했다. 임신해도 일을 잘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다만 팀원들에게는 출근도 하고 적응도 좀 한 뒤에 알리자는 이야기였다.

뱃속의 아이와 함께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간만에 출근한 회사와 일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팀장의 말대로 나 하기 나름 아닌가 싶었고, 팀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배로 열심히 했다. 하지만 입덧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무렵 갓 담근 엄마의 파김치가 너무 먹고 싶었다. 엄마표 파김치! 맵고 알싸하며 끝맛이 텁텁하면서도 깔끔한! 엄마표 파김치만 먹을 수 있다면 니글거리는 속이 뻥 뚫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엄마에게 선뜻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시어머니가 이것저것 음식을 싸 주셨지만, 시어머니의 음식은 냄새만 맡아도 바로 화장실행이었다.

엄마에게 뭘 요구한 적이 살면서 한번도 없었던 탓일까? 음식에 별 관심이 없는 내가 먹고 싶은 게 생긴 게 나조차도 대수롭지 않았던 걸까? 나는 임산부 치고는 식욕이 없는 편이었고, 일을 하고 있었기에 울렁거릴 허기를 다스릴 스낵바 하나면 됐다 싶은 시절이었다. 그리고 굳이 엄마에게 파김치를 담가 달라는 말이 선뜻 나오기 어려울 만큼 모녀치고 우리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었다. 남편은 내가 퇴근하고 오면 온갖 맛있는 걸 먹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는 대부분 성의 있게 먹으려 최선을 다한 다음, 화장실에 가서 변기를 붙잡고 먹은 것을 다 게워 냈다.

임신을 하니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보통 딸이 임신하면 친정엄마가 가장 먼저 맛있는 거 해주고 그러지 않나? 하지만 우리 엄마는? 축하한다는 말이 끝! 우리는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임신 호르몬 탓인지 자꾸 눈물이 났다. 남편은 몰랐을 거다. 저녁을 먹고 화장실에서 다 토하고 나면 한참을 혼자 울다 나왔다는 사실을. 엄마가 그리웠고, 엄마표 음식이 그리웠다.

당시 나는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홍대 집에서 회사까지 통근버스를 타고 다녔다. 회사가 외곽이었기에 통근버스를 놓치면 말도 안 되는 배차 간격의 일반 버스를 타야 해서 무조건 놓치지 않기 위해 종종 뛰어야 했다. 임신 6주 차였던 어느 날, 통근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리다가 하혈했다. 병원에 가자 의사가 노발대발 당장 입원해야 한다며 난리가 났다. 하지만 아직 팀원들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지 못한 터라, 나도 모르게 “저, 내일 꼭 출근해야 하는데요.”라고 말했다가 노의사는 더욱 노여워하며 지금 애가 중요하지 일이 중요하냐며 나를 타박했다. 나는 유산을 막기 위해 일주일 동안 누워만 있어야 했고, 팀원들에게는 내 입이 아닌 팀장의 입으로 나의 상황이 전달되었다. 남편은 사색이 된 얼굴로 일주일간 휴가를 내고 나를 보살폈다. 최대한 움직임을 덜하기 위해 누워만 있던 그때, 나는 엄마의 또 다른 주특기인 게장이 생각났다. 싱싱한 게를 달콤 맵싸한 양념에 한껏 버무린 엄마표 게장! 하지만 현실은 남편이 시켜주는 배달 음식을 먹으며 하루하루 시간이 흘렀다.

이후 회사로 돌아가 나는 더는 화장실에 아무도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 토하지 않아도 되는 특혜를 누렸다. 그 후의 시간은 일사천리로 흘렀다. 임산부였지만, 회사에서는 누구보다 열심이었고, 틈틈이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얹힌 듯한 기분은 임신 내내 계속되었다. 그게 마음의 얹힘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속의 울렁거림이었는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 모르겠다.

8개월에 접어들 때쯤, 배가 제법 많이 나왔고, 회사에선 계단을 걸을 때 내 배로 시야가 가려져 계단 끝이 보이지 않아 조심해야 했다. 입덧도 서서히 가라앉고 몸이 무거운 것 외에는 모든 것이 평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OO야, 집에 올 수 있니? 엄마가 밥해 놓을게. 와서 밥 먹고 가.”

나는 날아오를 듯한 기분으로 집으로 향했다. 엄마의 밥상에는 임신 시절 내내 먹고 싶었던, 파김치도 게장도 있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나는 이게 내내 먹고 싶었다는 말을 엄마에게 끝내 하지 않았다. 다만 엄마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오래 서운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흰 밥에 파김치를 척척 걸쳐서 먹다가, 알이 꽉 찬 양념 게장을 한입 베어 무니, 모든 서운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밥을 먹고 집으로 가려고 하자 아빠가 내 짐을 들어주었다. 아빠와 나는 말없이 정류장까지 걸었다. 내가 버스에 오르자 나에게 손을 흔드는 아빠를 바라보자 울컥 눈물이 났다. 나도 묵묵히 손을 흔들었고, 버스가 출발하자 닭똥 같은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가끔 아들을 보면 미안할 때가 있다. 음식에도 요리에도 별 관심 없는 나를 아들은 나중에 어떻게 기억할까? 삶이 너무 힘들 때 엄마에게 돌아와 잠시 머물며 먹을 수 있는 주특기 메뉴가 나에게도 있을까?. 나중에 아들이 전화로 엄마 나 뭐 먹고 싶어 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날을 기대해 본다. 그러면 나는 너무나 반갑게 “언제든 와. 엄마가 다 준비해 놓을게.”하고는 사랑을 꽉꽉 채워서 요리를 할 것이다. 요리하는 게 너무 고되지만, 오늘도 아이와 남편이 먹을 저녁을 위해 장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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