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없이 지지하는
1
가족들이 우리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종종 찾는 맛집 사장님이 손질해 준 홍어 몇 점을 꺼내며 자랑했더니 막매 시누 입이 떡 벌어지며 눈이 커진다. 나는 시누가 홍어를 못먹는다는 말에 깜짝 놀라고 시누는 내가 홍어를 먹는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꾀까다롭고 예민한' 내가 홍어를 먹는다는 것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야말로 맛의 총합을 아는 거라고 큰소리쳤다. 천년 깊이로 오감을 뒤흔드는 홍어가 헙헙하게 부서지는 흙내 깊은 수육과 만나 신김치의 묵묵함을 믿고 조용히 폭발할 때, 그것은 가히 모든 감각과 정서의 절정이 아닌가. 이른바 미식의 최고봉!
밥 잘 먹은 사람들의 흐뭇함이 피워올린 이야기는 뜬금없이 확대가족회의로 발전되었는데, 중요한 현안인 소리와 뽕띠에 대해 한바탕 토론의 장이 열렸다.
①개들도 사랑하며 살 권리가 있는데 중성화수술이라니 잔인하다.
②새끼 낳으면 어떻게 키울 거냐. 수술해서 기르자.
③덜컥 우리에게 와서 부담스러운데 좋은 집을 찾아서 보내자.
두 마리 거둘 자신이 없지만 떠나보낼 자신은 더 없다. 정도 들었지만 우리집에 오면서 이미 한 번 버림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더듬더듬 설왕설래, 그러나 서로 별 할 말이 없기도 하다. ②번을 호소하는 우리 큰딸래미의 눈물에 마음 아프신 엄니께서 마침내 ‘마루 울리지 마라.’ 하셨으니 수술동의에 한 표 추가, 뽕띠부터 하기로 결정. 실시! 마루랑 남편이 뽕띠를 안고 병원으로 갔다.
가족들을 배웅하고 들어오다가 비어있는 뽕띠 집을 보니 짠하다. 시누이가 쥐어주고 간 5만원짜리를 펴면서 또 뭉클한다. 언니 좋아하는 커피 사. 나는 커피를 잘 모르니까 사다 줄 수가 없단 말이야. 교감이라... 뜨거운 피 흐르는 존재들의 애틋함.
2
뽕띠가 병원에서 돌아왔다. 기운이 하나도 없이 눈을 씀벅이고 있는 순한 짐승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수술은 뽕띠가 했는데 마취는 내가 당한 것처럼 무력감에 빠진다. 너를 위한 일이니 이해하렴. 얼른 회복하여 맘껏 까불고 놀려므나. 일단 따뜻한 화장실에서 녀석을 재우기로 했다.
한밤중 몇시쯤이었던가, 여보 어떡해, 뽕띠 토했어, 남편의 목소리가 아련히 들렸다. 또 토했어... 또... 다섯 번째야... 목소리는 다 들리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뭔가에 한없이 쫒기는 꿈만 꾸었다. 이른 아침, 단호박 가루를 약이랑 섞어 먹였더니 다행히 잘 먹어서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여보, 어쩌면 그리 뽕띠를 잘 보살펴 줘?”
“그럼 봐줘야지, 어떡해. 연극대본 고치고 대사 외우며 있었어. 거의 못 잤지.”
“밤새 정말 힘들었을 텐데 전혀 투덜대지도 않고.”
“내가 왜 투덜대?”
“너무 힘드니까. 자기 그럴 때 가끔 부어서 퉁퉁거리잖아.”
“...... ”
“밤새 들락날락 어쩌면 목소리에 조금도 짜증기 없이 걱정하면서 그리 잘 살펴주냐~. 자기 정말 멋졌어.”
“흐흐, 근데 뽕띠 사료 안 먹네. 어쩌지?”
“입맛 없어 그렇지. 어떡하면 좋을까” 얼굴 마주보며 둘이 합창!
“미역국에 말아 주자!!”
피곤할 남편을 생각하여 부드러운 미역국을 끓였는데 뽕띠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사료에 국물은 물론 미역 건더기까지 정말 잘 먹는다. 산모만큼 힘들지도 모른다 싶어 안쓰럽다. 간식까지 먹는 걸 보고서야 마음이 확 놓인다. 하루종일 나랑 계속 문자를 주고 받다가 퇴근 후 기어코 서울에서 내려온 마루는 화장실에서 뽕띠랑 같이 잘 기세다. 개를 껴안고 만진 손으로 귤도 까먹고 이불 속으로 스윽 들어오면 정말 싫다. 그러니 슬슬 뽕띠보다 얘를 더 걱정하는 나. 가재미눈으로 감시하지만 그래도 아주 든든하다.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개를 조건없이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그게 내 딸이란 것도.
3
뽕띠가 잘 회복하여 이전처럼 소란하게 잘 노니 얼마나 좋은지! 이젠 소리 차례. 병원에서 데리고 돌아와 안아내릴 때만 해도 무척 긴장했다. 그런데 깔개 위에 내려놓자 고개를 살짝 드는가 했더니 앞발을 연달아 세우면서 벌떡 일어나는 게 아닌가. 영화에서 본 바 갓태어난 송아지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서늘히 놀라는 한편 얼마나 마음이 놓이던지. 제 집으로 부르르 털며 천천히 걷는 진돗개가 마치 사슴 같았다. 수컷이 훨씬 생존에 유리한 몸을 가졌구나 싶으니 몇 시간 소리를 걱정하던 마음이 뽕띠에게로 더욱 짠하게 기울어진다.
여린 것에 대한 연민은 인간이어서 더욱 가능한 인간됨의 조건이다. 그것은 자주 예기치 않은 기쁨을 데리고 온다. 그 기쁨이 퍼져 나와 이웃의 삶을 더 낫게 만들 터이다. 생명 가진 것들을 돌보고 책임지는 일이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간접적으로 돌보고 대체하는 것으로 끝나기 않기를. 유행같은 기계적 반복에 그치지 않기를. 반려동물을 향한 사랑이 자기연민과 자기애로 쫄아들지 않기를, 그것을 훌쩍 넘어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이해로 확대되기를. 동물과 교감하는 능력이 인간과 소통하지 못하는 무능력과 비인간화로 연결될 수도 있음에 대해 염려하고 가끔 사색도 하면서 말이다.
빨래가 깃발처럼 날리는 빨랫줄 아래, 초록 잔디위에서 서로를 핥아주는 하얀 털 가진 두 생명을 본다.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