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려야 변한다

하늘님 보시기에 좋았다 ②

by 박경이


뽕띠는 이제 ‘기다려’와 ‘먹어’라는 말을 아는 것 같다. 기다려,를 못알아 먹고 우왕좌왕 설치던 소리가 엉덩이 한 대 맞는 걸 보고 따라한 건가?ㅎㅎ 머잖아 완전히 알아들을 거다. 뽕띠. 지랄견이라 불리기도 한다는 코카스페니얼에게 어울리는 이름, 탄력 있는 된소리가 예쁘지, 뽕띠. 이런 똥강아지에게 좀 과한 이름이지만 뭐, 존경하는 어른 이름을 딴 거니깐.


“엄마 요새 뭐 읽어?”

”메를로 뽕띠의 『살의 기호학』 읽으려고. 제목 죽이지 않냐.”

“맞아! 뽕띠라고 하자, 와~ 엄마 어때?”

둘째 딸래미의 난데없는 제안, 이름 바꾸려 며칠 생각하던 차에 선뜻 동의했다.

좋아! 뽕띠. 아주 멋진걸? 메흐시~ 무슈 뽕띠!

뽕띠,

거듭 소리내다 보니 된 발음이 주는 안정감과 힘이 있는 이름이다.

작고 여린 짐승에게 내가 주고 싶은 것인가 보다.

안정과 힘은 내가 오래 갈망한 것이기도 할 터이다.

무한히 나를 편집하는 무의식의 선택적 편집력에 힘입어 나도 가능할까,

내 안의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잡고 고요해질 수 있을까.

『빨간 머리 앤Anne of green gables』의 끝문장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God's in His heaven, all's right with the world.”**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세상은 평화롭다’

······

‘모든 게 제자리에 있다’로 해석하고 싶다, 나는. 안 될까.

안된다!

제자리에만 있으면 변화가 만들어지지 않을 테니.

흔들려야 변하고 달라질 것이며 움직여야 새로운 게 생성될 터이니.

변화는 원하지 않아도 오고 알지 못하는 중에도 올 수밖에 없다.

스스로 만들지 않을 때 불가해한 폭력으로 들이닥치기도 하는 게 변화다.

나는 개와 함께 또 좀 더 다른 내가 되려는 중인가 보다.


빨래 너는 동안도 마른땀이 빠짝거린다.

저 가는 볕살이 나를 통과하는구나. 나를 꿰어 들어올리는구나.

옷이며 수건이며 씨실 날실로 올올이 지나며 단련시키겠구나.

그 뽀송함은 명료하고 고양된 메마름으로 내 살에 닿을 테지.

몸맘이 함께 알맞은 습기와 건조함으로 탄탄히 높아지는 느낌이다.

톡톡 터지는 행복감이 아프다 아, 펄럭펄럭 소리없는 깃발로 마르려무나.

햇볕이든 화살이든 쏟아지려므나, 나는 힘내어 할 일을 할 테야.

빨랫줄 아래 종종거리는 강아지들, 평화가 괸다.

빨래는 줄에서 마르고, 강아지들은 작은 나무 아래서 쉬니

하늘님 보시기에 좋았다.



* ‘초록지붕green gables’을 ‘빨간 머리’로 옮긴 것은 번역 세계에서만 가능한 가공할 만한 창조적 편집이다. 나는 원제를 알고 나서 오래 전율했다. 더없이 노골적이고 아름다운 사기詐欺가 아닌가! 이후 두 개의 제목은 동시에 떠오르면서 이른바 이야기가 담아낼 수 있는 무한의 풍성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초록지붕의 빨강머리 앤Anne이 내게 상상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결정적으로 알게 해준 이후, 대체로 세상사람들은 앤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고 생각되었다. -_-

** 고등학교 영어책에서 배운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구. 자주 내게 성경구절로 인식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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