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의 울림을 더듬으며
얼마만인가, 둘째 오빠 보러 봄길 따라 부산에 간다, 봄을 보며 간다.
남쪽으로 달리는 햇빛. 물방울. 오빠. 마음. 동생, 막내...
“경이 왔나”
우리 둘째 오빠가 완전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 대단하던 내 둘째 오빠가 병색이 완연한 환자가 되어 있다.
자신감으로 빛나던 오빠의 몸을 기침이 챙챙 가르는데도
목소리와 눈매와 몸짓마다 한 줄기 올올함이 힘줄처럼 팽팽하다.
그리도 좋아하던 담배는 오빠의 친구로 여전히 함께였다.
밖에서 피우라거나 끊으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면서 한 대 더 피웠더랬다.
“나는 이기 맛있다. 너거들도 맛있는 거 묵제? 나는 인자 너거들보다 맛있는 거 묵을 날이 적으니 많이 묵어야 된다.”
논리를 뛰어넘은 이 논리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을 유쾌하게 웃게 했으나 나는 아니었다. 모든 의미를 꿀꺽 삼킨 뒤에도 어떤 나머지가 있는 얼떨떨 웃음이었다. 최소 두세 번은 반복되었을 상황인데도 그때마다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심지어 정말 방안의 담배연기가 그리 나쁠 것도 없다는 생각조차 설핏 한 것 같다. 도무지 기원과 내막을 알 수 없는 수백가지 화학첨가물로 절여진 음식들을 먹고 사는 게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유머를 입은 오빠의 말은 어이없는 완고함일 뿐인 동시에 동생들을 공부시킨 오빠 자신의 의무이행에 대한 자부심이자 하늘을 우러른 떳떳함이란 걸 알았다. 따라서 그 비논리는 나에게만 작동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을 감싸는 나의 웃음은 바로 빚진 자로서 내 책무를 알고 있다는 무력한 증거였다는 것을! 그렇다. 어떤 논리도 필요없다. 나는 오빠가 고맙고 올케가 고맙다.
오빠 두 손을 잡았더니 참 따뜻하다. 오빠도 이런 체온이 있구나, 나보다 더 뜨겁구나. 이 오빠가 나와 막내 오빠를 공부시켰다. 용돈이나 학비를 타러 갈 때면 오빠는 ‘경이 왔나’가 다였다. 공부하라고, 원하면 ‘빤스’를 팔아서라도 유학 보내준다고 했다. 공부를 곧잘 했던 우리를 자랑스러워했다는 건 잘 알았지만 하필이면 왜 빤스이며 그게 무슨 돈이 된다는 건지 우습기만 했다. 그래도 들을 때마다 무한히 든든하고 고마움이 솟았다. 나는 오빠에게 빤스 팔 기회를 주지는 못했다. 그렇게 둘째 오빠는 우리의 아버지였다.
올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 기 없다. 아버지 안 계신 동생들 자기가 책임지고 공부시킨다는데 내가 뭐라카겠노."
대학 졸업 후 초년교사인 나는 아이들과 공부하고 노느라 즐겁고 바빠서 아버지를 잊었다. 벌어도 부족해서 가끔 용돈을 얻으러 가면서도 잊었다. 몇 번 번창했던 사업마다 내리막으로 정리해야 했던 오빠는 자신의 재능과 꿈을 능가해버린 상황과 조건을 원망하지 않았다. 분노도 삼키고 말도 삼킬수록 목소리에는 심줄이 들고 눈은 빛났으며 등은 꼿꼿했다. 말이 줄어든 자리를 담배연기가 채웠다. 나는 나를 사느라고 점점 더 오빠를 잊어야 했다.
같은 가지에 나고도, 많은 도움을 받고도 멀리 있는 정물처럼
그림자 기운으로 느꼈을 뿐인 둘째 오빠.
오빠는 작은 그림자 두 개를 더 찐하게 달고 살았다.
오래 묵은 진심과 감사는 깊이 발효하나니
언니오빠 덕택에 공부했다고, 공부 시켜줘서 고맙다고 했다.
덕분에 남의 새끼 잘 가르치며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가지들은 서로 바라보되 만나지 못한다.
뿌리의 울림을 더듬으며 소리없이 둔하게 흔들릴 뿐.
아득히 공명하며 저릿저릿 아플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