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함으로 달려오는 신뢰

위대한 펑교사

by 박경이


귓가에 갸릉갸릉 낮게 코고는 소리, 요 정도는 봐준다. 그러나 곧 드릉드릉.

어깨에 놓인 남편의 팔을 떠밀어낼 참인데 어떻게 알았는지 다시 귀엽게 갸르르

따끈따끈 옆구리가 좋은 계절이니 제발, 여보, 코 골지 마.

다시 잠이 들려는 순간, 드르릉 크르르~~

이건 적수를 앞에 둔 짐승의 소리다. 여봇~~!

응? 나 코 골았어??


에그~ 깔끔하던 내 남편이 언제부터 코를 골게 되었던가. 콧구멍에 머리카락 넣어 간질여도 찡긋,하고는 소리도 없이 잘 자더니. 다시 한바탕 솟구치려는 코를 살짝 눌렀더니 푸푸푸 터질 것 같다. 쯧!

아이고, 이 위대한 평교사, 이쁘기도 하지. 학교 잘도 다니고 담임 맡는 것도 좋다지, 애들이랑도 잘 놀고, 멋져부러.

볼따구랑 이마빡 찰싹찰싹 두들겨 준다.

30년 넘도록 계속 서로를 선택하니 우린 천생연분인가 봐.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하는 게 진짜 선택이라잖아. 우리 결혼 한 번 더 할까? 진정한 결혼은 같은 사람과의 두 번째 결혼이래. 철학자의 말씀이야, 내 말이 아니야.


해를 향해 벌떡 일어나 나간다.

맛난 아침잠 한 쪽 놓쳤어도 아깝지 않다.

참 고운 아침이다. 너울너울 햇빛 좋네,

여보, 일어나~

어둠과 싸늘함을 시나브로 싹 거두고 이미 거기에 있는 아침이다.

한 해를 녹여낸 시래기 된장국의 위엄을 보라.

은행밤밥에 깻잎 달걀말이, 노란 접시 초록 시금치는 색깔 고운 격려다.

삶의 기쁨이 포슬포슬 확신처럼 만져진다.

우리 부부 사이에는 맘껏 늘어나는 고무줄이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잊고 지내다가 너무 멀다 싶은 어느 때 살짝만 당겨도 차르르 말려오는 끈.

메아리로 호응하며 기분 좋은 팽팽함으로 달려오는 신뢰.


어디에 묶여 있는지 몇 개인지 모르는 끈들, 과연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기도 하고 때로는 알 필요조차 없는 많은 끈들을 밀고 당기면서, 모든 부부와 짝꿍은 이미 수십 번 또는 수백 번의 결혼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하다면 아직 결혼을 한 게 아니라는 사실도 발견했다. 가장 치열한 관계의 부대낌 속에서 나를 찾고 만들어 내는 극한의 작업이 결혼이라는 걸 잘 알게 되었다. 나아가 나를 닮았으나 닮지 않은 사람을 만들어낼 때 그것은 나를 거듭 넘어 살아보는 엄청난 일임을 또 알아냈다. 멋도 모른 채 그러나 제정신으로 홀려서 덤벼들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유일한 인간의 일. 두 우주를 넘나들며 다른 우주와 관계맺는 또다른 창조라는 것에 대해, 반짝반짝 더 알아가는 중이다.



"어떤 결혼도 수백 개의 작은 결혼들 위에 세워진다." (존 빙홀. 정신분석가)

"가장 가까운 사람 사이에도 무한한 거리가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면 나란히 함께 하는 삶의 놀라움이 자라난다. 그들이 온 하늘을 배경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그들 사이의 거리를 사랑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서로가 상대방을 고독의 수호자로 임명하는 결혼이 훌륭한 결혼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 그의 어느 책에서 옮겨 썼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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