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풍경화

가만히 반딧불 한 마리

by 박경이


어서 오셔요 어머니~~

꽃 사이로 마당 걸어오시는 우아한 노마님. 보라색 레이스 윗도리와 한들한들 검정 치마가 이채롭다. 재작년에 사드린 옷이 오늘 엄니를 저리 돋보이게 할 줄. 소리랑 뽕띠가 좋아서 펄펄 뛰며 꼬리친다. 사람들 말소리와 발자국 소리 우렁우렁 퍼지니 집이 살아난다. 꽃바람 분다.

엄니 요리 오셔요, 자자~ 요기 앉으셔요.

둘째 시누가 사온 자주색 가방 척! 들고 우리 딸들이 준비한 리본 구두 착, 신은 다음 큰시누님의 얇은 분홍 모자가 쓰윽~ 패션의 완성. 의논하여 장만한 선물도 이런 완결이 쉽지 않을 거야. 엄니는 소파에 붙박이로 앉아 시종 미소 모델을 하셔야 했다. 애들은 찍은 사진들을 오늘 오지 못한 가족들에게 보낸다. 금방 답이 온다. 그러니 전가족이 만난 것 맞지? 사람들이 서로 불러 묻고 대답하니 땅이 되고 함께 먹고 웃으니 삶이 되었다.


그 땅에 생명으로 흐드러진 빨강 다홍 앵두와 보리수를 딴다

휘늘어진 가지 잡고 사랑을 훑어내리는 가족 풍경화

초여름 햇님이 쓰다듬은 맑은 얼굴들이 가지마다 열린다

고호의 <과수원>과 오지호의 <사과밭>이 겹친다

하얀 색으로 웃으며 녹색으로 말하는 하늘색 그림

엄니 작은 몸에서 저 그림이 그려진 거야, 엄니가 그린 거야

해 그늘에 모두 말語로 나눈 것까지 얹어 묵직한 보따리를 싼다

서넛 혹은 둘이 되어 각자의 집으로 떠날 때날 때면

곧 다시 만날텐데도 마음이 저릿 뜨거워진다

소리뽕띠 잘 있어~~ 다정한 명령이자 작별

가족이란 게, 같은 가지에서 벋어 흩어지고 만나는 일이

이렇게 기뻐서 눈물 날 일이던가...


다락 창문 닫으려는데 밖으로 멀리 보이는 낯익고 예쁜 몸짓들

소리 뽕띠 데리고 세 부녀가 산책하는 풍경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찰부리며 천천히 움직이는 동영상

가슴이 짜르르, 눈가가 다시 젖는다. 별일도 다 있네, 뭐 특별한 거라고

산 아래 길 따라 사람과 개가 만드는 평화는 걸작이다

내 작품


화투판을 벌인다. 신난다. 민화투에서 엄니를 이길 장사는 없다. 이상해, 할머니는 패도 잘 들어. 당연하지, 누가 감히! 노인정에서 충분히 벗삼은 화투짝이 엄니를 알아 뵙는 거지. 그런데 나는 윷놀이도 화투도 이제 보는 게 좋다. 화투는 스무살 때 친구들한테 짓고땡에 섰다까지 배우면서 며칠 밤 홀린 이후로 별 재미를 모르겠다. 끼끼륙(7,7,6), 쎄칠장(3,7,10) 따위를 외우며 얼마나 신기했는지! 어쩌다 윷놀이에 끼게 되어도 아무렇게나 던진 다음 판 돌아가는 것 보며 깔깔 대는 게 더 좋다. 오도방정 윷가락 던지며 펄펄 뛰던 내가 구경을 즐기게 될 줄 몰랐지. 또 한 편 가족화를 감상하는 재미랄까, 나랑 남편이 함께 창작한 가족화.


오늘도 화투판에서 딴 동전을 수북하게 밀어놓으신 엄니가 작은 새처럼 누우실 때

우리는 그 날개 아래서 짹짹거리며 영화 한 편을 본다, <르 아브르 Le Havre>

이심전심의 인지상정이 만드는 삶 속으로 빠져든다

모든 걸 내려놓고 인간 안에 있는 인간과 만난다.

감동은 동사가 되어 사랑을 일으키고 새로움을 불러낸다

지극히 아름다운 세상풍경화.


이층 다락까지 켜 놓았던 모든 불을 하나씩 끈다

나는 방바닥에 엎드려 종아리를 흔들며 일기를 쓴다

집 내려놓은 달팽이가 된 것 같다

제 빛 속에 가만히 저를 비추는 반딧불 한 마리

모든 그림은, 하늘님 보시기에 참 좋았다.











◀오지호의 '사과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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