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고마워요
봄날 토요일 경주에 사는 조카딸 부부가 두 아이 데리고 왔다. 나의 세째 올케인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집에 왔다. 어설픈 초대에 먼 길 온 언니를 얼싸안고 좋아 펄쩍 뛰었다. 인천에서 오빠와 함께 온 막내 올케도 반가워 어쩔 줄 모른다. 집 돌아본다며 나간 두 동서가 짧은 시간에 캐온 쑥과 냉이가 수북하다. 3만원어치도 넘겠다며 재미나게 손 맞춰 입 맞춰 다듬는 모습이 예뻐서 사진도 두 장 찍어 놓았다. 하나는 언니들끼리 마주보고 웃고 하나는 날 향해 웃는 사진, 종종 꺼내보게 될 것 같다.
조카사위는 가리비도 맛있게 굽더니 초저녁 동네를 뒤흔든 윷놀이가 끝난 다음 파스타까지 만들어서 흐뭇함을 더했다. 그러니 남편에게 순종하며 수족처럼 살아온 올케에게 짠함과 미안함이 다시 일어 맘이 아프고 미안했다. 자다가도 오빠가 부르면 일어나 안주를 만들던 언니, 언제 또 무엇을 시킬지 몰라서 대령하고 있어야 했으니. 드센 억양의 명령어 몇 개에 따르는 대답은 “예” 뿐. 그것은 말다운 말을 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이었으리. 다른 고장에 살면서도 그 억센 사투리의 억양을 조금도 내려놓지 않음으로써 낡은 패권의식이거나 근거없는 자존심 따위를 드러내는 경상도 남자를 볼 때마다 우리 오빠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술을 탓하며 오랜 세월을 견뎠다. 시누이 용돈 한 푼이라도 더 주려했고 깔끔한 잠자리에 재우며 맛난 반찬 먹이려 했던 언니. 푸짐하면서도 정갈하며 맛있는 밥상이란 바로 이런 거라고 생각하게 했더랬다. 그러니 내 안에는 오빠들보다 올케들이 더 많이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심장이 저르르, 고맙고 고맙다.
오빠가 정이 많고 좋은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내겐 특히 그러했다. 그 정이란 무엇이고 좋음이란 어떤 것일까. 내 오빠인 그 아버지들 때문에 조카들은 ‘남자’가 아니라 남자-사람이 되기 위해서, 남자인 동시에 사람인 남편을 만나려고 더 분투하지 않았을까 싶다.
동창으로 드는 해가 계단을 올라 아이들을 부르자, 그 소리 듣고 가만가만 내려오는 아이들이 하루를 열었다. 친밀한 얼굴보다 더한 장식과 꾸밈이 있을까. 웃고 말하는 보물들, 화려한 아침이다. 3학년, 5학년 두 아이는 뽕띠·소리랑 놀며 먹이며 한바탕 신나더니 아침밥 먹고 다시 달려나간다. 어른들이 차 마시며 한창 이야기꽃 만발 중에 5학년 아이가 급히 들어온다.
“소리가 뛰어가서 고라니를 잡았어요.” 뜬금없다.
“소리가 고라니 죽였어요. 피났어요.” 아이 얼굴이 빨갛다. 3월말 산바람이 차긴 하지만 벌겋게 부은 것 같다. 목소리는 떨리고 상황은 조각난다. 소리를 데리고 산에 갔는데 소리가 달아났다? 고라니가 죽었다? 거실에 있던 어른들은 거의 동시에 외치며 벌떡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소리를 놓친 거야?”
“네”
“소리가 고라니를 물고 달아났어?”
“네”
그런데 소리는 제 집에서 펄떡거리고 있다, 숨길이 요란하다. 고개를 치켜들고 자못 당당하다.
“소리 제 집에 잘 있구만.”
“그런데 왜 소리를 놓쳤다고 했지?”
아! 고라니가 물린 건 제가 소리를 놓친 탓이라고 생각하는구나. 터져버릴 듯이 씩씩대고 있는 빨간 아이를 얼른 껴안았다.
“너 많이 놀랐구나. 너 때문이 아니야.”
“고라니가 죽은 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건 동물들 사이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이야. 괜찮아. 소리가 달려 나간 거지, 네가 놓친 게 아니야. 괜찮아.”
아이 눈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아주아주 또박또박 말했다.
“소리를 데리고 왔으니 잘 한 거지. 훌륭하다. 네 힘으로 소리를 집까지 데리고 왔잖아. 아주 잘 했어.”
아이의 마음 놓이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린다.
“고라니가 피난 걸 보니까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그렇고말고. 마음이 아프지, 슬펐구나.”
눈물이 또르륵, 들썩이는 어깨를 다독였다.
“울어도 돼. 생명인데 안됐지. 하지만 네 잘못은 아니야. 마음이 아파서 울 수 있는 건 참 좋은 거야.”
물을 마시고 나서 아이는 2층으로 올라갔다. 이 녀석 참 대단한 경험을 했구나 싶다. 언제 어떤 식으로든 풀어야 할 제 생의 거대한 덩어리 하나를 안전한 곳에서 제대로 폭발시킬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잊힐지라도 건강한 공격성과 함께 따스한 맘 갖고 잘 자랄 터이다.
소리는 (장한 짓 했으니 칭찬받으러!) 아이에게로 돌아왔더란다. 아마, 고라니는 새끼였을 것이다. 물리긴 했지만 죽진 않았을 테고 어미가 보호하고 곧 나을 거,라고 믿고 싶다. 소리도 난생처음 새로운 경험을 하고 흥분되어 있을 텐데. 고라니를 문 것도 탓할 수 없으려니와 주인에게 곧 돌아온 것은 참 잘 했다고 칭찬해주어야 할 것이다. 소리에게도 개다울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면 잘 자라겠지. 쫙 펴고 일어서는 봄, 새것을 보는 봄이니까.
녀석들, 오르는 봄길 따라 고모할머니네 잘 왔네.
안 해 봤다는 윷놀이까지 한바탕 신나게 해 본데다
할머니의 의도적, 조작적 배려 덕분에 이겨도 봤지.
조금 전에 고모할아버지 따라 감자까지 심어보고 갔네.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 호칭을 화들짝 놀라면서 들어야 했다.
딸들은 ‘아주머니’라는 항렬 호칭에 경련을 일으켰다.
얽히며 서로를 잇고 딛는 무수한 점들의 연결, 가족.
가늠할 수 없는 것을 가늠하며 생각해 본다.
사람은 어머어마한 것들을 통과해야 하나 보다.
현관 오르는 돌계단 사이를 뚫고 핀 제비꽃 봐라.
놀랍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