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가슴에 햇살을 안고 애호박부침개를 한다
연두색이 곱다, 색이 아니라 빛
여보, 초록으로 변하기 전에 먹자
노랑연두가 시간을 따라 연두가 된단 말이야
연두는 하루하루 날을 따라 올라가 짙은 연두가 되고
진연두는 달을 타고 올라가 녹색이 되고 이윽고 모든 색이 될 거야
꼬리를 흔들며 솟다가 하늘을 품고 마침내 팔랑팔랑 낙하하는 잎, 색, 빛
선물인 줄 몰라야 하는 신들의 선물
마음이 움직여 시간을 만드니 아침에도 전을 부칠 수가 있다
미움은 거름이 되었고 거름진 똥배에 시간이 자란다
연두를 품은 세상의 모든 여백과 색과 웃음이 우리 식탁에 산다
기적!
기적의 색이다 연두는
시작이다, 시간의 빛이다 연두는.
애호박은 연두 덩어리다. 껍질은 더도 덜도 없이 완성된 연두색이어서 차마 만지지 못하고 보아야 한다. 그렇게 망설망설 칼을 대면서도 눈에 색을 머금을 듯 바라본다. 욕심껏 색을 느끼고 싶어 천천히 자른다. 배어나오는 미소로 입꼬리를 올리면서 미안한 마음으로 가만히 썬다. 통. 통. 통. 작은 소리로 연두색을 나눌 때, 그래서 또 다른 한 겹 보드라운 연두가 동그랗게 펼쳐질 때면 아하, 작은 탄성이 흐른다.
연두! 사오월 나뭇가지를 점점이 찍고 이으며 살금살금 겹치는 연두, 넓어지고 진해지는 연두빛의 시간을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까. 눈치챌 듯 말듯 조금씩 깊이를 더하며 이윽고 초록을 불러들이면서 물러나듯 어울리는 연두빛 잔치에 초대받지 않은 사람도 없을 터이다. 일부러 맘먹지 않았건만 절로 예감되는 풍요 속에서 모두들 자신의 삶을 노래하며 활기를 일으키는 연두들의 계절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연두는... 감나무 잎싹이다. 연두빛 잔치가 한창일 때 죽은 듯 오래 깊은 숨 쉬고 있던 느림보 감나무가 마침내 밀어내는 연두, 연두덩이 작은 잎새는 그냥 감탄이다. 거칠고 마르고 둔한 가지에서 밀어내는 속깊은 똑똑함이 단박에 보인다. 약간의 무게와 두께를 지니고 반짝이는 보들보들 연두를 뿜어내는 감나무...어린잎 따라 점점이 가지를 더듬다 보면 한스럽도록 새로운 하늘을 발견하고야 만다.
어쩌나, 자작나무 잎새 연두도 지나칠 수 없다. 온통 연두들에 휩싸여 흥흥거리다가 뒷뜰에 있는 감나무 연두를 놓친 해는 있지만 대문 옆에서 가느다랗게 팔랑이는 이 연두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봄을 보낼 수는 없다. 자작나무 하얀 둥치를 쓰다듬으며 보드라운 연두빛들이 커지는 것을 가만가만 보다가 활짝 놀라 감나무에게 달려가면, 어쩌나 모든 연두의 빛과 색들이 이미 감나무 가지에 올라 쫑긋대고 있는 것이다. 고개가 아프도록 본다. 까치발을 들고 잎싹들을 가만히 만져본다. 이미 뜨거운 희망을 품고 있다. 연두 따라 빛으로 녹아들거나 가지를 따라 오르거나. 시간이 자란다,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