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 잡았다

마음꽃 딴 자리

by 박경이


성묘 후 모두 우리 집으로들 왔다. 강아지를 보는 순간 너도나도 반기며 함박웃음으로 말을 건다. 과연 개와 사람은 좋은 친구인가 보다. 뒷마당을 둘러보던 시누들은 어제 몇 알 캐고 걷어서 버린 고구마 덩굴을 발견하고 반색을 한다. 둘러앉아 줄기를 딴다. 요즘은 사기도 쉽지 않다면서 똑똑 꺾어 담는다. 공사장 전선다발 같은 고구마줄기와 볶아 먹는 고구마줄기가 같다고? 들기름에 조갯살이랑 볶은 고구마 줄기는 내가 정말 잘 먹는 건데. 도대체가 궁금하긴 했어도 딸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언니~ 이렇게 따는 거야, 그걸 몰라서 이렇게 좋은 걸 버렸구나, 우리 언니가?”


뻗어가는 본덩굴에 일정 간격으로 잎새 달고 자란 줄기를 따는 시누이. 둘째 시누의 얼굴에는 거의 언제나 자생하는 기쁨이 은은히 거한다. 그녀의 깊숙한 반달눈은 이지러지는 법이 없거든. 동지섣달 눈보라에 반달이 파르스름할 때가 있을지라도. 말 그대로 ‘성숙한’ 인간이란 저렇구나,를 알게 하는 사람이어서 이 시누가 언니라고 부를 때 참 좋다. 머쓱할 때도 있지만 내가 어른임을 보증하는 것 같다. 어머니가 세 자매의 재미를 거들자 네 여인들의 손끝에는 흥취가 더한다. 나는 우리 엄마와 그러하지 못했으므로 자주 봐도 낯설고 부러운 광경이다. 나도 나중에 저렇게 내 딸들과 흐뭇할 수 있을까. 나를 찌르는 바늘 끝 몇 개 가운데 하나가 그거다. 하지만 나는 이미 물꼬를 트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바로 그 바늘로 말이다.


시골집 이사하고 처음 온 둘째시누 남편은 한참을 둘러보더니 이층을 참 잘 지었다고 말한다. 전체 터의 넓이나 아래층 넓이에 알맞은 비례와 균형으로 2층을 올렸단다. 자신이 보기에 재료도 좋은 것을 썼으며 꼼꼼히 잘 짜 넣었단다. 심어 놓은 나무들의 자리나 종류를 보니 이전 집주인이 안목 있는 분이란다. 깜짝 놀랐다. 그가 새롭게 보였다. 낱낱 근거를 들어가며 칭찬하는 드물고 귀한 능력을 가진 사람인 줄 몰랐다.

조카는 2층을 나무로 지어서 좋다며 나무 벽을 쓰다듬는다. 저도 이렇게 나뭇결 느낌이 좋은 집을 짓고 싶다며 웃는다. 그를 감성 가진 청년으로 생각한 적도, 그의 정서를 읽어본 적도 없었다. 큰시누님의 아들이며 남편의 조카니 내게도 그저 조카일 뿐이었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어떤 부분이 누군가의 꿈일 수 있음을 새삼 인식했다. 너의 집짓기는 이미 시작된 거라고 말해주었다. 온전히 핀 동백꽃 한 송이 잘 전달한 듯 느닷없는 기쁨을 얻었다.


과일을 먹던 중 고추장아찌 어떻게 담느냐고 큰시누님이 물어서 또 깜짝 놀랐다. 형님이 그걸 모르세요, 요리의 달인이? 호호, 내가 요리의 달인이야? 근데 고추장아찌는 담아본 적이 없네~, 저번에 엄마 집에서 먹었는데 정말 맛있다고 했더니 자네가 담은 거라고 하시잖아? 어찌 이리 맛있게 담았대~? 히히, 나는 의기양양 시누들께 고추장아찌 담는 방법을 강의했다. 방방 뜬 내 손이 병 하나를 새로 열었더니 이건 더 맛있다는 큰시누님. 작년인가 자네 매실장아찌도 정말 맛있었잖아, 엄마가 엄청 좋아하셨지. 정말 잠 담갔네. 아이고나, 언감생심, ‘장아찌 분야’에서 이런 칭찬이라니! 그렇게 홀린 나는 큰시누님께 병째 드렸지 뭔가. 막내시누가 좋아한다기에 조금밖에 안 남은 양파장아찌도 줬지.

마음을 잘 소비한 자리가 간지러워 웃는다.

마음꽃 몇 송이 딴 자리는 가을 꽃밭이 한창이다.

땡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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