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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Jan 20. 2023

드러냄이 끝내 아름답고

우리가 서명할 자리를 남긴

      - <부추 화분> 빈센트 반 고흐. 반고흐미술관. 암스테르담 

      - <누운 게빈센트 반 고흐. 반고흐미술관. 암스테르담   

        

부추 향내 터지는 화분은 녹색 꽃

초록 속에 하얀 동그라미 숨긴 꽃다발  

가녀린 아픔을 지녔을지라도 맑고 곱다  


등 대고 누운 게는 누운 참이 쉴 참 

게가 꽃 같다 뒤집혀도 꽃송이

아픔은 지고 아름다움만 남는다

고통을 따라 빛이 길을 연다    


어둠인 줄 알면서 어둠 속에 머무르며

상처가 숨과 빛의 통로임을 알게 한다  

존재가 자신을 풀어내며 

드러남을 선언할 때면 

그 창조는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한다   


아름답다 

고흐의 그림은 아름답다

핵을 돌며 끝없이 분화하는 그의 곡선들 

부드럽고 힘찬 꼬물거림으로

불러내는 생명마다 생의 울혈을

그 모질게 타오르는 힘을

잔혹하도록 아름답게 그려내는 고호

두려움과 섬뜩함도 아름다움을 통해 말한다

내면 깊숙이 물결을 일으키는 색과 선들 

드러냄이 끝내 아름답고야 만다 

아름다움으로 매혹한다    

한 발 더 내딛는 우리


자신을 무수히 찢고 견디며 

늪을 지나 숲을 뚫고 태양을 만들며

지문指紋 같은 인간의 곡선을 세상에 나눈 사람

나는 그의 지문에 내 지문을 맞댄다

그림으로 재물을 얻지는 못했으나

생을 관통한 친구·형제를 가진 사람 

미래에 올 모든 이들을 환대하며

자신의 그림에 우리가 서명할 자리를 남긴 사람   

그 자리에서 마음껏 

좀 더 살아보고 싶은 우리  

<부추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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