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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Jan 23. 2023

고린내를 삶의 향기로 바꾸는

맨발도 괜찮아 맘껏 걷자

      - <구두 한 켤레끈 달린 낡은 구두> 빈센트 반 고호. 반고호미술관. 암스테르담

      - <붉은 모델> 르네 마그리트. 개인소장?     


고호의 구두, 철학적 사색과 논쟁을

불러일으킨 끈 달린 낡은 구두 한 켤레

하이데거는 그것을 농촌 아낙네의 신발이라 하고 

메이어 샤피로는 고호 자신의 구두라 한다 

자크 데리다는 ‘한 켤레라는 방향성’에 의문을 던진다 

고호의 구두라고 굳게 믿었으며 

켤레를 의심할 수 없는 나는 오직 흥미진진 

몸으로서 발의 모양을 그대로 보존하는 신발

존재를 담는 그릇, 좋은 논쟁거리일 터이다   

   

산문시에 가까운 감상에서 하이데거가

우리의 눈앞에 어머니 대지를 펼치며 

일하는 여인에게 그 구두를 신길 때 

나는 온전히 그의 편이었다 

고흐의 구두가 맞겠다고 샤피로에게 동의할 때도 

하이데거의 대지와 시는 포기할 수 없었다 

데리다를 따라 켤레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하기로 마음먹자마자 구두는 짝짝이로 보였다 


감상하는 자는 누구며 생각하는 자는 누군가

대상에 투사되는 각자의 욕망 

심리적 진실과 기억의 다툼 

대상은 말하지 않거나 덜 말하며 숨긴다 

우리에게 말하게 하면서도 금지를 발한다      


신발이 갖는 성적 기호나 물신적 성격을 생각하면 켤레에 대한 의심은 전복에 가까운 사유의 확장이다. 이때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한다면 그건 표준화된 해석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배경지식과 함께 배고 스민 앎이다. 몸이 근원적으로 지닌 앎, 의식이 모르는 앎이다.      


따라서 이 구두 정말 짝짝이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벌건 입체물이 되고 이어 발가락이 돋더니 

무수한 신발짝들이 울컥울컥 생겨난다  

아우슈비츠의 증언, 산 같은 신발더미가 웅성댄다 

내 발목을 잡아당기는 발가락 구두에 

급히 흙을 퍼담고 얼른 꽃을 심는다

멈추자, 생각하기 위해 잠시 멈추자   

천천히 오래 오래 서로를 부르며 걷는 사람들

무수히 펼쳐지는 존재들의 정원...  


구두는 이제 채플린의 접시에서 파스타가 된다 

<황금광 시대>에서 그는 잘 삶은 구두를 썬다

천천히 냅킨을 펴고 우아한 동작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여 구두끈을 담는다  

친구에게는 먹음직한 윗가죽 부분을 주고 

자신은 못이 붙은 밑창을 잡고 오물오물 

가시 사이로 생선을 바르듯 맛있게  

면은 포크로 돌돌 말아 크게 한 입에 

그가 잘 먹으므로 나는 침을 삼키고 

서러우면서도 안심하며 내 신발끈을 푼다    

 

고린내를 삶의 향기로 바꾸는 예술가 철학자들 

낡은 구두는 밥이 되고 꽃이 피며 말이 열린다

먼 길을 우회하여 돋을새김으로 빛나는 지금-여기

이제 신발을 찾지 못해 애간장 타는 꿈은 그만

내 신발만 없거나 멀리 한 짝만 굴러다니는 꿈도 끝

짝짝이 아무거나 두 개 골라 덥석 신을 수 있자

빵꾸났으면 어때 맨발도 괜찮아 맘껏 걷자     


<붉은 모델> 르네 마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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