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 별까지 걸어야지
- <밀 이삭> 빈센트 반 고호, 반고호미술관. 암스테르담
노란빛 도는 녹색 밀 줄기들 사이로
귀ear에 귀를 대고 속삭이는 이삭ear들
보라색 가는 엉겅퀴도 한 송이
작은 나비도 세 마리, 소근대는 소리 난다
끈처럼 가느다랗게 연결되어 서로를 듣는다
잎새를 건드리는 바람도 듣는다
흔들릴수록 가까이 기대고 서로를 의지하며
촘촘한 틈을 지우지 않고 홀로 함께 이삭을 돋운다
자꾸자꾸 넓어지는 들판만큼 나는 줄어들고
점점 깊이 밀밭으로 들어가 귀를 기울인다
작고 가늘어질수록 다른 존재가 들린다
멀지만 가깝고 참으로 외로우나 다정하다
빈센트~ 당신은 해냈어요
그림마다 맥박과 말이 있어요
해골 같은 외로움으로 화폭마다 대상을 살렸어요
진정 살아있는 자만이 외로움을 숨쉴 수 있으니까요
당신은 미래와 세계를 열어젖힌 거예요
당신의 별에 다다랐어요
엄청난 우주의 선물을 받은 사람이여
몹시도 흐뭇한 순간 촬영금지를 잊고 찰칵
어깨에 살짝 닿는 손끝, 동시에 귀에 닿는 금지의 말
화들짝 놀라 비명소리가 새어나올 뻔
미안해요 그렇게 열중한 줄 몰랐어요, 원하면 찍어도 좋아요
나보다 더 놀라서 거듭 사과하는 직원
고개를 숙인 채 서로 미안하다고
눈을 마주 보며 속삭이는 두 사람
잠시 두 개의 밀이삭이 되어 있었다
심장은 뛰지만 새는 웃음을 멈출 수도 없다
‘유리잔에서 꽃피는 아몬드 가지’는 거듭 특별하다
작년 봄 드센 바람이 잠든 뒤
길가에 드러누운 벚나무 한 그루
통통한 봉오리 작은 가지 떼어와 꽂으면서
몇 개나 필까 했는데 다 피어서 신비로웠거든
꽃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던 거야
돌 안에 들어 있는 형태를 꺼내듯이
고호도 자신의 성에 있는 것을 꺼냈던 거야
그는 성안에 들어가지 못한 게 아니었어
성 밖에서 아프고 외로웠던 것도 아니었다
이미 자신의 성 안에
자신만을 위해 지어진 성안에 있었던 거다
그 성은 예술이고 온 세상인 것을
수십 년 그를 삼킨 나를 품어준 고호
생의 곳곳에서 때때로 발바닥 맞비비며 울던 나를
위로하고 조금씩 흔들며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더디게 느릿느릿 나의 성城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하도록 도왔다
나도 내 그림을 그리고 내것을 꺼낼 수 있겠다
이제 고호를 다시 읽으며 그에게 기꺼이 흡수되고 싶다*
나도 내 별까지 걸어가야겠다
그가 그의 방식으로 그의 별까지 걸어갔듯이
* '나는 바다처럼 광대한 밀밭에 온전히 흡수되어 버렸어. I'm wholly absorbed in the vast expanse of wheat fields, large as a s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