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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Jan 26. 2023

고호는 열고 렘브란트가 닫았다면

묵직한 아름다움과 경건

     - <여자 예언자 한나>, <유대인 신부>, <야경렘브란트. 

                                                              암스테르담국립미술관(레이크스미술관)      


눈빛을 읽기 어려운 곱슬머리 청년 

스물두 살 렘브란트의 자화상 얼굴에서 

작은 결정을 품은 긴장감을 엿본다 

‘예루살렘의 파괴를 한탄하는 엘리야’의 근심을 

반사시키는 빛은 바로 그 긴장에서 시작되어

지금도 신으로부터 오고 있는 듯    

  

다시 그 빛은 예언자 한나의 어깨 너머 책을 비춘다

새로이 세우라, 다르게 만들라 

말을 듣는 고요, 준비하는 침묵

손의 두께와 단단한 주름은  

자신의 시간을 잘 만들며 통과했음을  

자신과 신 앞에 부끄럽지 않음을 전하고 있다     


예의만 갖추고 지나쳤던 <야경>을 보러 되돌아간다 

한껏 차려입은 남자들의 자부심이 밉지 않다 

쑥스럽구만 허허 나 좀 잘 그려주시오 

나름 폼을 잡고 시선을 견디는 풋풋한 남자들 

세상을 만들어가는 순한 사람들이 보인다

오늘은 렘브란트를 조금도 거부할 수 없다     


역시 슬쩍 지나쳤던 <유대인 신부>를 보러 돌아간다 

황금날개실로 짠 옷 앞에서 맘껏 놀란다 

영원의 색, 변함없이 인간을 사로잡는 아름다움

그의 그림은 어떤 말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렘브란트니까

그의 이름으로 마무리되는 놀람과 감탄이면 족하다

이상하다 모든 렘브란트에 푹 빠진다

멀리서 전해오는 어떤 확신으로 불러 세운다

더 드러낼 수 없는 분명함 속에 모든 걸 내려놓게 한다     


그의 그림마다 완성된 인생의 한 장면을 본다 

말의 근원이랄 침묵과 고요까지 거듭 발견한다 

묵직한 아름다움과 경건을 읽는다 

전적으로 믿고 따르며 그를 배웠어도 좋았겠다

든든한 안정감 속에 둔하도록 머물러도 좋겠다, 아하

그의 그림은 나를 정지시켜 주었구나!

덕분에 부유하면서도 내가 똑바로 설 수 있었구나


그리하여

고호가 흔들어 놓은 것을 렘브란트가 고정시켰다면? 

고호는 열고 렘브란트가 닫았다면? 

멈춰 가며 다시 잘 흔들릴 수 있도록

방황을 누리며 천천히 즐겁게 가도록 도왔다면 

왜 삶이 왈츠이며 삼자가 필요한지 증명되었다

아이에게 어머니의 기능과

아버지의 기능이 동시에 요구되는 이유다     


고전이며 정전으로서의 렘브란트

의심하고 바꾸기 위해 일단 붙들려야 하는 확실성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밑자리, 항상성이라는 환상 

대타자가 보여주는 말-그림을 수용할 때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말을 들은 것만 같다

내게 필요한 만큼 투명함을 얻고 

오래오래 천천히 큰 숨을 쉰다 

<예언자 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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