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먹이로 빛나는 별들
여행은 왜 먹이로, 빵으로 기억되는 것일까? 검은 독일빵과 맥주, 네팔 포카라의 고소소 쫄깃한 빵, 터키 케밥, 보스포러스 해변의 고등어샌드위치와 멸치튀김, 인도의 달과 난, 프랑스의 에스프레소와 바게뜨. 일본 어느 식당서 갈아먹은 와사비, 그리스의 시래기같은 샐러드, 맨하탄의 유쾌한 베이글과 터키식 샌드위치.......
풍광과 사람과 건축물과 명화에 연달아 경기를 일으켰음에도 음악에 취하고 친절에 녹았으며 거리거리 흥겹고 새로웠음에도 문득 절절히 다시 부르는 것은 먹이, 음식이더군. 사람 손에서 나와 내게 들어가 나를 만드니 몸이 직접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까. 먹은 것이 우리를 만드니 먹이가 곧 마음이라면.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먹으면 맛이 더하는 건가. 삶이란 먹는 일인지 몰라, 애들 말대로 삶은 계란인지도 몰라. 인도와 네팔, 터키의 음식이 더 자주 그리운 까닭은 사람들의 순함이 좀 더해서려니. 식당에 들어가서 주문하면 그때부터 천천히 만들어 미소로 내놓던 음식은 접시마다 탄성을 불렀거든.
나 지금 갑자기 착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느닷없이 설탕덩어리 도넛이 먹고 싶다, 미치게 달달한 거.
아, 깻잎 찌는 냄새다, 회가 동한다. 이런 먹거리가 있었지, 잊고 있었네. 아랫집으로부터 날아오른 냄샐테지? 두 집이 이렇게 가깝구나. 뒷밭으로 나가서 깻잎을 딴다. 필요한 게 있어 부엌문 휙 열고 밭을 향할 때마다 부자가 된다. 양념간장에 파채 넣고 들기름. 오호 맛있어. 부자가 음식을 만드니 맛도 향기도 더 풍부하다. 진짜 부자다.
배 두드리다가 미정의 전화를 받았다. 초봄에 나를 많이 걱정 시켜놓고 돌아간 뒤 내내 잘 살았단다. 네 걱정 안하고 나도 잘 살았다고, 우리밭에서 깻잎도 딴다고 자랑했다. 철딱서니 없는 견우를 달래가며 싸움을 걸고 조용히 오래 잘 싸우는 으뜸 직녀다. 견우가 대적하지 않을 수 없을만큼의 싸움거리를 조용히 제시하는 방법으로 시작한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숙제를 준달까, 지금 무엇을 놓고 대화를 하거나 따지는지를 명료하게 낱낱이 느리게 드러내는 미정을 보며 자주 놀랐으니 그건 엄청난 능력이었다. 둘이 분명히 싸우되 잘 싸우고 있는 중임을 견우에게 인식시키는 방식의, 싸움 같지 않으나 치열한 싸움이다. 크지도 않고 느린 목소리로두려움 속에서 용기를 길어올리면서 말이다.
아들이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하는 시어머니와 시누이까지 겹으로 싸우는 전쟁이어서 진심에서 우려낸 전략이 없이는 불가능한 전투의 연속이었다. '이제 어머니의 며느리 역할만큼은 그만 두겠습니다.'라고 미정이 선언했을 때 그건 유독히 빛나는 봉우리 하나였다. 나는 새로 열리는 지평 하나를 시원하게 보았고 이후 무수하게 이어질 공동승리를 예감했다. 십수년 지난한 세월 깊어진 변화의 확신은 갈수록 싸움의 기술을 늘게 했을 터. 고통이 클수록 종종 배어나오는 꿀방울 같은 기쁨 역시 엄청났으리. 싸울수록 견우 스스로 자신을 깨닫고, 깨달을수록 그것의 불가항력적인 부분조차 함께 이해하니 서로 고마움을 부르며 갈수록 잘 싸운다. 그게 그들의 삶이다.
어쩔 수 없이 깊이 얼키고 설킨 실타래들을 풀며 서로를 이끌어 간다.
어디에 있는지 알수 없는 실마리를 찾아 쓰리도록 웃으며 함께 걷는다.
아픔을 풀어 기쁨을 짠다.
서로를 풀어 서로를 먹인다.
더디고 마디게 얼룩덜룩 알록달록 빛나는 무늬를 엮는다.
오래 그들을 지켜보며 자주 경탄하는 동시에 얼마나 갈까 궁금하고 뚝 끊어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어느 때는 내가 그 베짜기를 멈추게 하고 싶은 생각이 솟을 때도 있었다. 완성에 대한 직녀의 의지가 강할수록 단번에 싹뚝, 튼실한 가위를 쥐어주고 싶은 때가 있었다. 그렇게 힘들면서도 둘이 함께 베틀에 앉아야 하는지, 그게 정말 그가 원하는 일인지 의심스러웠다. 혼자 짜는 게 더 즐겁고 아름답고 새로울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완성을 고대하며 지지하는 마음 역시 강했으니, 어쩌면 내가 더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몇 개의 세계를 넘나들며 한바탕 원하여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보겠다는 미정의 의지, 그러므로 이 직녀만큼 더디게 촘촘히 제 삶을 직조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제가 짠 날개옷을 꺼내 입고 내일 된장찌개 사주러 오겠단다. 그럼, 베틀에서 내려와 쉬어야지, 완성이 코앞인데. 완성이 아니라도 완성이다. 미완성인 채로 완성이라는 말은 그게 곧 사는 일 자체이기 때문이다. 원하고 선택하여 그리 살았으니 잘 살았으며 그렇게 계속 살아가는 중인 거다. 그러므로 일단 먹어야 또 먹이지, 먹어야 싸우며 살고 살리지. 저만의 요리법으로 서로에게 정성 담긴 음식을 대접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가슴에서 목덜미로 흐뭇함이 동그랗게 퍼진다.
냉동실에서 꺼내놓은 코스타리카를 갈다가 취한다.
갇혔다 해방된 영혼들의 춤이라 하자.
세상 모든 향기와 기쁨이 모여 뛰노누나.
이 향기 즈려밟고 견우와 직녀도 해방춤 한 판 펼치기를.
생의 여행, 영혼의 먹이로 빛나는 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