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시간을 만들 줄 알지
초록 공간을 감아올리며 휘둘러보던 시선이 하늘높이 멈추자 문득, '아, 남의 나라 가고 싶다.’는 말이 툭 나온다. 가슴이 뻥 뚫리면서 초겨울 산타바바라의 예쁜 동네에서 태평양 바라보며 한 달 살고 싶었던 바람이 두둥, 등장한다. 파리, 맨하탄에도 다시 한 달만 머무르고 싶다. 런던 아니, 이스탄불. 겨울 모스크바, 부다페스트... 좋았던 세계의 도시가 올록볼록 난리가 났다. 이 집을 두고? 그럼, 갖고 가나. 남의 동네에 매혹당하기는 이제 쉽지 않을 걸. 좀체 떠나지 못할 걸. 남편이 거둔 우리 감자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으니까. 작고 못생긴 감자를 가장 맛있게 졸이는 사람이 나니까. 고추랑 새우젓에 들기름 왕창 애호박부침개가 얼마나 맛있는데 왜 가냔 말이다. 오이와 가지를 바로 나가 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
이제 밥이 뭔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좀 알만하니 우리 동네로 충분하다. 남의 동네서 담아올 게 없는 것 같다. 자잘하고 드문드문 맺힌 방울토마토도 내년이면 똘똘해질 껴. 그 소문이 난 것일까, 어제 방울토마토 한 상자를 선물 받았다. 잔칫집에서 얻어온 돌떡이랑 방토를 앞집과 나누고 밭에서 일하고 계신 노부부께도 갖다 드렸다. 정중하나 낮지 않으며 다사로움이 실린 노인의 태도는 <나무를 심은 사람>의 엘자 부피에를 닮았다.
비행기 없이도 맘껏 날아 여행을 끝낸 다음 양파·토마토·깻잎 또르띠야 돌돌 말았다. 채소즙을 줄줄 흘리며 잘 먹은 뒤 큰 딸래미 태우고 기차 시간 맞춰 역으로 출발. 나가는 길, 어째 어머니 말씀에 대답이 엉성하다. 시무룩 얼굴에 빛이 죽은 것 같기에 물었더니 요즘 꿀꿀~심란~짜증이 와르르~하단다. 오호, 너 마침 말 잘 했구나, 잘 했어. 나와야 할 말이 나오도록 때와 장소, 사람이 맞추어질 때가 있잖은가. 잘 들어 주었지,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사람, 만남, 관계, 상황을 천천히 읽고 해석해 봐.
그것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명료하게 느껴 봐라.
말로 정확·정직하게 표현하고 솔직하게 수용한 다음 떠나보내.
행동이나 표정으로 울퉁불퉁 드러내지 않을수록 좋지만 쉽지 않지.
그러면서 변해야지. 변화 없는 이해, 이해 않는 해석은 개뿔이야.
너 꽤 잘 하고 있잖아. 무엇보다 넌 시간을 만들 줄 알잖니, 틈은 나는 게 아니라 내는 것이며
만들어야 한다는 걸 좀 아는 것 같더라. 그러니 뭘 더 바래?
“엄마 고마워.”
“잘 가~”
고맙긴 뭐, 그 정도 가지고.
들어봤자 실천은 못할 텐데 뭘.
남의 말은 아무리 많아도 내 것이 아닌걸.
실천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품이긴 하지.
가방에 잘 담았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거야, 아님 말고.
오늘 못 쓰면 내일 쓰겠지, 제 말을 만들어 가면서.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거라면 뭐하러 가방에 담겠어.
지금 쓰면 좋지만 못 쓸 게 뻔하니까 담아두는 거지.
남의 것은 쓰는 척 해봤자 시늉하다 말지. 시늉하다가 말아도 그만큼 살아 본 거니까 좋지. 그러다 정작 잘 쓸 수 있는 제것을 잃을 것 같아도 그렇지 않아. 내 몸에 들었으니 내 것이지. 그러면서 내 말을 만드는 거야. 그 어느 것 하나도 나를 만들지 않는 게 없거든. 나에 가까운 나, 미래에 올 나를 만든단 말이야. 그러니 뭘 해도 남는 장사지. 하지만 지금은 생긴 대로 맘껏 살아야 하는 때야, 그게 젊음이고 초반의 생이니까. 못난 짓하고 실수하고 실패해도 괜찮아. 잘 하는 줄 알고 한 거니까 이미 널 키운 거야. 자신이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떡하겠니, 나 못났구나, 그렇게 생겼구나, 하고 덥썩 받아들여야지. 쉽잖지만 어쩌겠어. 살다 보면 잘 한 것도 많게 마련이야.
하여간 뭐가 좋다, 해 봐라, 아무리 들어도 못하는 그게 바로 또 어느 누군가의 생겨먹음이니 할 수 없는 거야. 구조적 특성이라고 이름 붙일까? 그러니 괜찮아, 싫음 마, 정말 괜찮아, 다른 게 있기 마련이야. 병리든 문제점이든 그게 네 힘이고 너만의 동력이야. 맘 가는대로 멋대로 살아야 해, 가만가만 조심조심 살다가 못살고 덜 사는 거야, 일단 생겨먹은 대로 마구 굴러다니면서 그보다 조금만 더 달리, 더 맘에 들게 살아보려고 해 봐. 일단 살아.
요게 중요해, 별표 다섯 개. 나중에는, 언젠가는 가방을 열어봐야 된다는 거지. 고치고 바꾸고 다르게 살아보는 게 좋겠다는 거지. 가방을 힐끗힐끗 보다가 마침내 열게 될 거야. 네게 진정 필요한 때, 아주아주 필요한 때. 아님 말고. 네 인생이야. 사람에게는 말이 필요하단다. 말을 먹지 않고 사람이 될 수는 없어. 무한반복되는 뻔한 말도 먹고 새로운 말도 맛봐야 해. 그래야 네 말이 다가오지, 만들게 되지. 이전과 달리 보고 뒤집어 보고 느낄수록 네가 원하는 너에 가까워질 거야.
말이 밥이야. 말을 알아야 잘 해석하고 빨리 상징화시키면서 걸리적거림 없이 제 생의 숲을 뚫고 갈 수 있거든. 오, 내가 이렇게 한 수 가르치고 싶어하는 줄 몰랐네. 정말이야. 이것도 가방에 담을 거지? 그래, 천천히 하나씩 넣다 보면 어떤 건 이미 실천한 거나 마찬가지가 될지도 몰라. 빨리 배우고 제것으로 지녀 마구 쓰는 사람이 있거든.
사람은 엄청난 힘을 가진 멋진 존재더라구. 내가 오래 공부하면서 깨달은 거야. 그걸 이제야, 그것도 공부해서, 알았냐고? 응. 엄마가 느림보잖아. 그리고 알았어도 몰랐지. 이젠 진짜 아는 거야. 진리는 쉬워야 사람들이 알아먹지만 또 쉬워서 바닥에 구르고 걷어 채이잖아. 누구나 알지만 그래서 또 아무도 모르는 거야. 안다,는 모른다,의 다른 표현이야. 얘, 마루야, 얼른 가방에 담아라. 참, 갔지.
결국 그래서, 마루에게
가방 열어보라고 종종 일러줘야겠지.
엄마가 통째 담겼으니 말이야.
잃어버렸나 싶을 때 다시 넣어주는 선배가 되어야지.
흠흠 고맙겠지. 그게 엄마지.
밥은 딱 알맞은 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항상 늦거나 빠르거나 많거나 적거나.
딱딱 아귀 맞는 건 삶이 아니야, 시간이 아니야.
내게 쑥 다가와서 담겼던 말, 셰익스피어를 빌어 데리다가 뜻을 더한 말을 꺼낸다.
"Time is out of joint."
가방을 연다. 틈을 낸다, 틈은 숨이고 쉼이며 빛이고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