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친구를 살리다

이제야 받은 편지

by 박경이

1

오빠랑 마당에서 하는 연날리기는 흥미진진이었다. 지대가 높아서 연이 잘 날았고 아랫동네와 멀리 산과 하늘이 배경이 되어 참 멋졌다. 방패연은 날리는데 기술이 필요하지만 꼬리연은 좀 쉽다. 다 쓴 공책을 잘라 이어 붙인 기다란 꼬리를 흔들며 날아오르는 가오리연을 볼 때면 내가 거인의 몸으로 벋어나는 것 같았다. 연을 데리고 산등성이로 올라가 다른 애들과 맞붙을 때는 두근두근 신이 났다. 다른 아이의 연을 끊어 먹을 때의 통쾌함은 오빠의 연이 끊길 때의 비통함을 능가했다. 뚝! 끊겨 흔들흔들 떨어질 듯 날아가는 연을 망연히 바라보는 상실감은 참 컸다. 조회시간 운동장에 서있는 내 눈을 시큼하게 하던 햇빛처럼 도저히 어쩔 수 없음.... 높은 나무에 걸린 연을 보면, 특히 오래 공들여 마음 기울여 만든 예쁘고 튼튼한 연의 긴 꼬리가 나무에 걸리면, 짧게 할 걸...어쩌다 탄탄한 댓살에 좋은 창호지로 만든 의젓한 방패연이 날아가 버리면, 오빠야 우짜꼬...도리 없음. 오빠의 찡그린 이마, 분하고 슬픈 오누이... 이럴 때 별로 말이 없는 은순이도 종종 함께였다.


다시 연을 만들고 연실을 자새에 감으면서 아이들은 체념과 반복, 노력이나 도전, 용기 따위의 말을 가슴에 담으며 크는 걸까. 튼튼히 사금질을 한 연실이 길게 끊기고 나면 정말 아깝고 안타까웠다. 유리가루를 풀에 개어 실에 바르는 오빠를 거들다가 손가락을 베이기도 했는데 피 한 방울에도 떨며 무서워하는 아이가 마다하지 않은 걸 생각하면 정말로 재밌었던 거다. 제 몸을 스스로 움직여서 뛰어다니며 뭔가 만드는 '놀이'가 좋았음에 틀림없다. 3년 동안 밀린 놀이를 벌충하며 몸과 마음이 자라느라고 엄청 바쁠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병치레하는 동생을 오래 지켜보던 일곱 살부터 오빠는 마음이 많이 아팠던가. 그래서 동생과 놀아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을까, 오빠는 잘 놀아주었고 자기 친구들과 놀 때도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나를 구박하지 않았다. "오빠야~" 헉헉대며 무리의 뒤를 쫒아오는 여동생을 한 번씩 재촉하며 기다려 주었다. "빨리 온나!" 내 동갑내기들보다 막내오빠랑 놀았던 기억이 많고 더 또렷하다. 내 동갑 친구 은순이는 부러운 듯 연 만들기를 쳐다보기는 했지만 끼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항상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랑 놀지 않는 한 혼자였고 언제나 기운이 없었다. 손위 형제들이 모두 집을 나가 있었던지 외동이었던지는 모르겠으나 주로 어딘가에 기대어 있던 아이였다. 은순이가 저희 집 문간이나 마루 기둥에 기대어 멀찍이서 오빠랑 내가 딱지치기나 구슬치기하는 걸 지켜보는 정물화 같은 기억은 희미하지만 영원하다.


2

은순이는 눈이 컸다. 입도 크고 오늘날 예쁜이들처럼 턱도 뾰족했던 아이로 기억된다. 마르고 키도 컸으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이국적이랄 만했다. 은순이네는 우리 옆집이었고 다른 집들은 많이 떨어져 있었으므로 은순이는 유일한 동네 친구나 마찬가지다. 서로의 마당을 오가며 고무줄이나 소꿉장난을 했다. 둘이 하는 고무줄은 마루 기둥에 한 줄을 묶어야 하니 단조롭지만 학교 친구들을 불러오면 여우야 뭐하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우리집에 왜왔니 같은 것들을 할 수 있었다. 은순이의 가느다란 종아리, 누우런 얼굴, 기운 없이 뛰는 모습이 선히 보인다.


그 날, 나는 마당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느닷없는 비명이 들려왔다. 짐승 같은 소리, 그러나 분명 은순이였고 변소에서 나는 소리였다. 은순아~, 와 그라노~ 달려가자마자 계단 몇 개 높이에 있는 변소 문이 확 열린다. 은순이 쪽으로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그 아이의 엉덩이 사이에 허옇고 커다란 뭉치가 눈에 딱 들어왔다.

기다란 것들, 움직이는 것... 찌그러진 누렁 얼굴, 물땀 범벅이 되어 부릅뜬 은순이의 너무나 큰 눈과 작고 똥그란 내 눈이 마주치며 불꽃이 튀는 찰나 집을 향해 뛰었다. 등뒤로 따라오는 은순이의 몸서리치는 비명은 조금도 작아지지 않았다. 다 쓴 공책인지 만화 그리던 연습장인지 하여간 나는 종이를 가져왔고 찢은 종이들을 겹쳐 은순이의 엉덩이 아래 그것에 대고 잡아 당겼다. 기억은 거기에서 끊긴다. 어떻게 무엇을 더 기억하랴, 어떤 장면을 더 저장할 수 있었겠는가. 그랬다. 내가 그렇게 했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야 은순이가 살 수 있다고 판단했고 다행히도 나는 그럴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고무장갑이 있었어야 했다! 속깊은 내 친구 고무장갑...


3

이것은 제일 늦게 만난 나의 사건이다. 정신분석 공부를 하면서 나의 구조적 특성을 조금씩 알아가던 중 떠올랐던 내 생의 사건들 가운데 이건 제일 늦게 왔다. 더이상 그것에 휘둘리며 살고 싶지 않았던지 다행히도 내편이었던 생명본능은 봉인된 돌무덤 하나를 찾아 뚜껑을 열도록 도왔다. 보이지 않는 권력을 행사하면서 구석구석 삶을 힘겹게 하는 원인 하나를 찾은 거다. 벌레 따위, 사물이나 장소의 오염상태 등 도무지 무심하게 지나칠 수 없도록 낱낱 인식시키며 불편감과 두려움을 일으키게 했던 원흉을 잡았다!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지배당하며 자책하는 일상, 남들은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는 것들로부터 침입하는 스트레스를 연속적으로 견뎌야 하는 삶이란 재난에 가깝다.


수십 년 후 진저리치는 전율과 함께 그 장면이 불현듯 떠올랐을 때, 내 비위 약함의 강력한 기원이 그것이란 확신이 번쩍번쩍 했다. 그날 변소에서 죽을 뻔한 건 은순이가 아니라 사실 나였던 거다. 당시의 내 일부는 죽었던 거다. 그것이 서서히 살아나 영향을 미치기 전까지는 이런저런 불결도 벌레 무서운 줄도 몰랐다. 오빠 따라 뛰어다니며 메뚜기도 잡고 우리가 길렀던 매의 먹이로 줄 개구리도 잡으며 꺄르륵 즐거웠으니. 화영이, 미남이와 함께 중2 때 화장실 청소도 너무너무 재미나게 할 수 있었던 거다. 당시 흔치 않았던 수세식 변기여서 가능했을 거로 짐작되지만 우리 셋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도 짬 내서 번갈아 드나들며 마른 걸레로 반짝반짝 변기며 바닥을 닦았다. 아이들도 신발 자국 난다면서 실내화를 벗고 드나들 정도였다. 선생님들의 놀람은 물론이고 다른 반에도 번져갔다. 청소당번을 돌아가며 했지만 우린 그 ‘권력’을 오래 독점했다. 미남이는 이름만으로도 관심을 받던 아이였는데 걔의 집에는 텔레비전이 있었고 화영이는 피아노까지 있었다! 미남이 부모님은 소원대로 미남이의 남동생을 낳았고 화영이네서 조심히 눌러보던 피아노 건반은 Oh, amazing!


4

5년 가까이 미국 드라마에 빠진 동안 자주 나를 건드리는 대사 가운데 하나가 “네 잘못이 아니야.”였다. 지긋지긋하다 싶게 많이 나왔다. 설마! 내겐 그러했다. 지극히 개인적이며 때로 누군가에게 부당하기조차 한 심리적 진실을 담은 말이다. 참 필요한 말, 순간을 놓치지 말고 해주어야 할 중요한 말인데 들을수록 슬그머니 화가 나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듣기 싫어 귀를 막을 때도 있었다. 아이와 무관하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특히 좋지 않은 일에 관하여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근거없는 죄의식을 아이가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네 잘못이 아니야’란 말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가끔 분명 아이가 잘못했는데도 아이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할 때는 뾰족하게 짜증이 났다. 그 아이가 일부러 한 일임에도 ‘내가 일부러 한 게 아니야’라고 친구에게 말하라고 할 때도 있었다. 분명 다칠 걸 알면서도 못되게 굴었는데...


그렇구나, 아이이기 때문이다. 일단 안심시킨 다음 결과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거였다. 네가 친구를 정말로 다치게 할 마음은 아니었을 거란 말. 나쁜 짓이지만 네가 정말 원해서 한 것은 아닐 거라는 믿음을 보여주는 거다. 결국 잘못했음의 우회적 지적이지만 네가 나쁜 아이여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 그러니 사과하고 화해를 권하며 다음에 그런 실수를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가르침이란 것을 알아갔다. 자신의 행위와 결과에 대해서 가만히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이었다. 아이에게 말을 주는 행위, 바로 어른이 할 일이며 그런 사람이 어른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리 자주 화가 난 걸까.


네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모든 게 잘 될 거야. 괜찮아... 꼭 안아주면서 아이와 눈을 맞추며 또박또박 전하는 어른의 말... 내가 간절히 원했으나 듣지 못한 말, 들을 수가 없었던 말이었기 때문임을 몰랐다. 나는 괜찮지 않았던 일이 많았던가. 무슨 일이 생길까 늘 두려웠던가. 내 잘못이라는 죄책감으로 자주 나를 탓했던가... 진정한 부러움이며 질투였음을 몰랐다. 듣기 싫다는 느낌과 생각, 분노와 짜증을 일으키는 말들이야말로 내게 필요한 말이다. 진정 내것이다. 내 감정을 깊이 자극하고 흔드는 말들은 모두 나를 해석하는 중요한 열쇠요 실마리다. 쥐기 불편하고 맞지 않는 것 같아도 더듬다 보면 내가 열리는, 나를 열리게 하는 말들을 좇는 사이 다른 열쇠가 이어 나타나고 발견된다. 실마리는 풀리며 끊기지만 찬찬히 이어가며 새 꾸러미를 감게 된다. 내게 필요한 말을 부를 때 기꺼이 다가오는 말을 맞이하는 황홀한 기쁨에 올라타고 새로운 내 말타래를 감는다.


5

그날 어른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어른들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술항아리에 내가 빠졌을 때처럼 딱 맞춰 엄마가 달려왔더라면, 내가 했던 그 일을 어른들이 했더라면! 조금 늦었더라도 나에게 장하다고 말해 주었더라면! 꼭 안아 등을 쓸어주었더라면 나를 얼어붙게 했던 공포는 그 순간 대부분이 흩어졌을 것이다. 괜찮아, 얼마나 무서웠니. 어떻게 그렇게 잘 했느냐고 정말 놀라운 아이라고, 은순이가 네 덕분에 무사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더라면 공포는 자랑스러움으로 녹아내렸을 것이다. 웃음으로 발효되었을 거다. 살며 겪는 소소한 이야깃거리로 남았을 터이다.


트라우마는 사건 자체의 크기나 심각성보다 주체의 심리적 충격 강도다. 같은 사건을 겪어도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이유다. 해석불가능에서 비롯되는 주체의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범람은 기호해독이 불가능할수록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신체적 증상을 반복한다. 비슷한 상황이 만들어질 때마다 공포를 소환하고 고통을 재생산함으로써 일상을 망가뜨린다. 자신의 언어로 상징화시키지 않으면 존재의 벽을 허물어 버린다. 사건상황에 대해 이해 가능한 보편적 설명으로부터 수용이 시작되고 주체의 충격은 완화된다. 말의 존재인 인간은 말로 풀어서 소산시켜야 한다. 조용하고 분명히 거듭되는 위로와 격려, 관심이 필요하며 지켜보고 함께 있어주기,가 중요하다. ‘피해자 탓하기’가 고통을 몇 배 증폭시키는 까닭이기도 하다.


삶은 레고도 아니고 조각판 맞추기는 더욱 아니다. 틈이 없고 어긋남이 없는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다. 인간의 삶은 통계나 수치가 아니며 프로그램화될 수 없는 것이다. 어긋나야 틈이 생기며 움직임, 운동이 가능하다. 틈이 있어야 빛이 들어오고 숨을 쉴 수 있다. 그 가운데 변화와 창조가 이루어진다. 어긋나는 시간과 공간, 말과 감정들로 울퉁불퉁 거친 삶의 숲에 자신만의 길을 뚫어낸 사람들, 고통과 즐거움을 엮으며 저만의 무늬로 살아낸 모든 사람 하나에 별 하나씩! 은순이는 별 두 개. 나도 별 하나.


6

그 사건 직후 누군가 내게 해야 했던 말이지만 발화되지 못한, 수십 년 내내 실종되었던 말을 지금 예순다섯의 내가 열 살 나에게 한다.

“괜찮아, 너는 아무 잘못이 없어. 오히려 친구를 살린 거야. 잘 했어, 경~이~, 정말 잘 했어.”

나에게 내가 말했다.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듯 발음했다. 말은 이제야 도착했다. 그날 내가 눈물로 쓴 편지를 이제 받았다. 명문화는 존재의 등록이며 인정이다. 그때 사람과 말과 사건이 있었음이다. 실체를 대면하면서 관계와 사이를 인정하고 화해한다. 괴물 하나를 마침내 무찔렀다. 또 한 겹의 해방이다. 내 친구 은순이는 어디 있을까. 호리호리 활달한 멋쟁이일까, 퉁퉁하고 기품 있는 모습일까.


은순아, 나 별 하나 더 가져도 돼?

은순아~ 오각에 모두 꼬리 달아서 별 날리기 해보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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