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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Nov 26. 2022

나는 비로소 내가 된다

눈물은 무게다

 -<롱샹성당 Ronchamp. Notre-Dame du Haut> 르 코르뷔지에. 프랑스 롱샹


대지를 쓰다듬듯 번지는 초록 물결  

얕은 구릉지대를 돌자 형체 하나 솟는다   

땅에서 막 피어오르기를 끝낸 통통한 버섯 하나

날개를 접으며 쉰다 아하 

스머프 아파트, 보아뱀 모자, 어서 가보자 

그러나 하늘 보며 천천히 오르라 한다

발바닥도 느껴보라 속삭인다      

 

둥글게 기울인 하얀 벽체를 돌아 

작은 문 안으로 세상이 열린다

어둠 속에 빛이 생긴다 어둠이 빛을 만든다

빛에 닿은 사물들도 작은 빛들을 낳는다 

나는 있다, 빛알갱이 하나로 있다

나를 건드리는 어떤 존재 

그것의 일부가 된 듯한 온기

어마어마한 것을 가지고 말았다, 떨림!

    

미끄러지는 창마다 빛의 노래

벽의 두께만큼 깊이를 가진 창

빛의 통로마다 은총의 세례

아른대는 결을 따라 층층이 춤추는 빛과 색 

눈물에 굴절된 빛가루들 사이로 

찬란한 광채와 어우러진 어둠

순수한 혼란 같은 빛의 질서 

잊었던 내 영혼을 만져보는, 전율.

     

작고 단순한 네모 창턱에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빛과 어둠이 침묵으로 섬긴다

고요히 깊은 호흡으로 겹쳐 있다 

하나둘 모여드는 발들 성가대를 이루는 목소리들 

울림에 젖는다 몸을 휩싼다 자발적 복종

지배당하는 즐거움, 신성한 폭력 

빛과 선율이 서로를 타고 흐른다

정밀하게 자리 바꾸는 시간, 순수한 내맡김  

   

인간의 시간이 신에게 속하는 곳

세상의 모든 곡선, 면, 근원의 색  

걸음 따라 펼치는 빛들의 잔치 

가시관의 예수가 아버지를 부르는 듯 눈물이 난다 

나도 당신을 부르게 하소서 

눈물은 뜨겁고 무겁다 눈물은 무게다 

나도 어머니를 찾게 하소서 

나는 비로소 내가 된다


내가 되어

대지 위에 죽은 재료들을 심어 살리는 

건축이라는 이름의 놀라운 그림을 본다

이 자리를 가능케 한 무수한 점과 끈들을 생각한다

이 성당을 땅에서 솟게 만든 손발과 마음을 그려본다. 

코르뷔의 고뇌와 영감과 천재를 상상해 본다

그를 전적으로 믿었던 쿠튀리에 신부를 느껴본다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뜬 

예술가-신부의 간절한 기도를 헤아린다 

범벅된 감정들이 찰랑찰랑 기쁨으로 바뀐다

진심을 다해 새로움을 시도하는 자들을 향해 솟는 존경심     


다시 한 방울 

뜨거운 눈물로 응결되는 

영혼,을 들어올리는 작은 풍선

빈짝이는 느낌표들...     


                                                                               

*건축은 최고의 조형예술이다. 왜냐하면 조각과 회화도 건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건축의 탁월성은 모두 빛에서 나온다. 건축은 빛의 질서이다. 이에 반해 조각은 빛의 유희이고 회화는 색채에 의한 빛의 재현이다. 색채는 빛의 분석이다.(이종석 옮김 『가우디 공간의 환상』 다빈치. 11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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