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경이 Dec 06. 2022

우리들의 라라랜드

생의 근원적 수동성을 찢으며 

   - <유모와 나><나의 탄생><부서진 기둥><디에고와 나>  프리다 칼로. 멕시코 미술관   

                                                                             

꿈을 꾸었다 

······

내가 공원의 벤치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다 

청명한 하늘에 구름이 조금씩 생겨난다 

모이던 구름이 나뉘며 두 덩어리로 뭉친다 

거대한 젖이 되어서 날 향해 다가온다 

왼쪽 젖이 얼굴 바로 위에서 방울방울 떨어진다 

나는 엄마를 부르며 젖을 먹는다      


이런 꿈도 있나 그러니 꿈이지 

그러고 보니 이미 한 번 꿨던 꿈이다 

엄마 돌아가시고 몇 달 후였던 것 같다

새벽 3시다 아기가 깨어 젖 먹을 시간인가 

나의 라라랜드     

 

1) 품에 안겨 젖 먹는 아이, 얼굴은 어른이다 

하얀 젖 두 방울, 젖샘과 젖줄이 꽃송이 같네 

시커먼 가면을 쓰고 있는 유모 혹은 엄마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허기 

채울 수 없는 생의 공복      


2) 나와야 할 아이가 나오고 있다 

내가 엄마의 자궁으로부터 질을 통과하여 

빛 가운데로 나오는 중이다 

마땅하지만 섬뜩하며 낯선 까닭은 

우리가 바로 그 아이였기 때문이다 

부인하고 싶은 동시에 영원히 그리운 장소 

표현조차 불가능한 우리들의 라라랜드    

 

엄마의 고통을 뒤집어쓴 나는 결단코 

밀어내기를 요청함으로써 내 삶을 선택했다 

정물에서 동물로 능동성을 획득한다

살아 보리라, 동그라미 두 개로부터  

시원적으로 강제된 생에 동의한다 

생의 근원적 수동성을 찢으며 

새로운 곳에서 인간으로 살겠다는 선언     


3) 총 같이 신전의 기둥 같이, 부서진 등뼈를 다시 세운다 

갈라지는 대지 위에서도 미래를 직시한다  

두려움 씻어낸 눈에 단호한 눈물로 말하네 

견디는 것이 생이지만 견디기보다 살기를 택하라   

   

4) 그게 사랑인 줄 알았다 

프리다의 이마 한가운데 디에고 리베라의 얼굴  

그 디에고의 이마에 있는 또 하나 눈을 보며 

이토록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했더랬다 

오인이야말로 a의 진리이므로

프리다가 그토록 매혹당한 디에고의 보물은 뭘까

동일 이미지만 무한 복제되는 거울방에 갇힌다 

문이 있을까 숨 쉴 수 있을까     


응시자체로 포획되기, 그 자신보다 

더 그가 되어 그를 위해 살도록 매혹당하기 

상대방이 원하지 않음에도 원한다고 믿는다면 

그래서 그를 ‘위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위했던 거라면 

그것이 결국 자신을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라면

사는 줄 알았던 그것이 광기거나 죽음이라면

a와 칼놀이를 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투덕거리고 사는 남녀들, 쌍들 

알 수 없는 곳에서 만족하는 불만족의 원환

항상 어긋나되 어디선가 들어맞는 틈에 끼어 살기 

자신을 죽여야만 끝까지 가는 오인=사랑  

사랑을 가능케 하는 동시에 불가능하게 하는

순수한 내 보물 a, 반짝, 하고 사라지는 비늘들     


‘뭐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고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마태복음의 문장은 깊이 새겨 볼만하다. 주체 자신의 공백의 자리에서 무엇을 창조할 것인지 기회를 주고 책임을 묻는 막중함이 담긴 말이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곱고 유익한 것을 만들어내라는 권고이자 경고. 모든 원인은 내 안에 있다는 정신분석적 진리다. 왜 아니랴. 우리는 시작부터 오물이었으니 해산 장면을 비롯하여 비체卑體로서 정액도 그렇다. 인간으로 태어나 산다는 것이 세계를 더럽히는 동시에 창조하는 일임을 힘차게 전한다. 더럽히듯 맘껏 살되 책임지며 아름답게 만들라는 명령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난 인간이 이미 어떻게 서로에게 오염되고 관여되어 있는가를, 어떻게 잘 전염될 수 있을까를 수천 년 궁구·역설해 온 것이 철학일 터이다. 거리를 두고 살되 각자의 섬은 이미 물 아래서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손을 내미는 인간은 눈부시다. 그렇게 함께 누리는 세상은 한 판 맘껏 살아볼 만한 곳이 아닐까.   

   

클리치대로 불빛이 훤하다. 직선들은 율동하며 곡선으로 나뉘어 곰실거린다.  고호의 지문 같은 둥근 선들이 퍼져간다. 창문을 닫을 수 없는 밤. ‘금속레이스로 떴다’는 에펠탑 불빛과 센강의 가로등도 휘황하겠다.  

   

                                                                                                 

● 움직이는 그의 몸, 그만의 독특한 거동은 나에게 나의 고유한 이미지들을 가져다주는 내면화된 이미지로서 심리현상의 중심에 투영된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선택된 사람이 내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살아있는 몸체야말로 무의식에 새겨져서 나의 환상을 다듬어주기 때문이다. 만약 선택된 사람의 몸이 나의 환상에 욕망을 흥분시키는 온상들의 집합체이면서 내 이미지들의 살아있는 소재가 된다면 나, 곧 나와 내 몸은 그의 환상에 무엇이 될까? 담쟁이의 은유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생명력이 왕성한 식물로서 담벼락을 기어오르고 타고 오를 때, 그 부착근을 균열된 틈이라는 아주 특별한 장소에 붙인다. 마찬가지로 선택된 타자-나의 환상이 된 대상-에 대한 나의 애착도 가는 곳이 정해져 있다.(다비드 나지오 『사랑은 왜 아플까?』 표원경 옮김. 한동네. 68-69ㅉ)   

  

<유모와 나>


작가의 이전글 너무나 예술이고 몹시도 삶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