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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Dec 09. 2022

바꿔! 소매치기가 말했다

엉겨오르는 충동들이 짓는 집

1

샤펠성당에서 나와 시립극장 옆 미스트랄에서 점심을 먹는다. 격하고도 감미로운 바람 미스트랄. 맥주 한 잔에 취기라 부를만한 것이 목을 간질인다. 하늘은 높이 푸르고 햇살은 다정하다. 센강 위로 사람들의 발소리와 웃음이 흐르고 걱정근심 한 점 없다. 센강을 배경으로 식탁 위의 맥주잔을 찍어 남편에게 보냈다. 그의 덕분에 가능한 시간이기도 하니 바람결에 나누는 건배! 기분 좋은 방심 상태. 가벼운 졸음이 묻어나자 최소한으로 살아있는데도 충분하다 싶다. 노뜨르담 성당은 이제 강만 건너면 바로 왼쪽이다.  

    

다리로 접어드니 가녀린 여자 둘이 앞을 막으며 서명판을 내민다. 거절하자마자 아시아 사람들의 권리를 위한 것이라며 급박한 얼굴로 다시 서명을 요구한다. 알콜 기운은 이미 의무감을 희석시켰으므로 강하게 거절하고 걷는데 곧 앞을 막는 그들. “한국, 일본, 중국인들은 꼭 해야 한다. 제발 도와주세요.” 인도 사람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순간 그들은 달아났고 동시에 히죽 웃는 작은 아이의 가무잡잡한 얼굴 형체가 유령처럼 내 오른쪽 옆구리 아래로 빠져나갔다. 등줄기가 찌릿하여 매달린 작은 가방을 내려다보니 열려있다, 가볍다. 지갑이 없음을 깨닫는다.  순식간에 엎어진 기쁨을 덮친 막막함. 여권? 떨리는 손으로 안쪽의 지퍼를 열었다. 여권은 있다. 얼빠짐. 일단 목적지로 간다.      


2

부르고 말 시키고 서명판을 들이대며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아이는 조금씩 가방의 지퍼를 열었구나. 내가 경계심 없어 보였구나. 나를 지켜보고 있었겠구나. 그동안 아무 생각 없었다. 천국에서 노는 아이처럼이라고 과장해도 될까. 어쩌면 그리 달라붙고 밀어붙이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까. 소름이 돋는다. 닿았던 부분이 가렵다. 나를 만지지 마라! 몸, 특히 피부는 외부를 향해 열려있는 자아경계의 최전선이기에 수시로 감각되지 않을 수 없다. 디디에 앙지외는 ‘피부자아’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성당 앞에서 줄서서 기다리며 그 광경을 재구성하다 보니 살얼음 깨지듯 피식 웃음이 샌다. 그런 식으로 나눔을 강제당한다면 하는 수 없다. 여권에 전화기까지 남겨줘서 고맙다. 성당을 들어간다. 앞자리에 잠시 앉았다가 일어난다.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을 텐데 몽롱하다. 멍하니 묵주를 구경하다가 두 개를 고른다. 돈이 없음을 깨닫고 깜짝, 바바리 주머니를 뒤져 30유로 묵주 하나를 샀다. 남은 일정을 어쩌나. 나, 제정신 맞는데... 아, 와중에도 노뜨르담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경탄을 부른다. 이전에 왔을 때 공사중이어서 보지 못한 뒷면을 보니 참으로 아름다운 선들이다.       


3

신 없이, 신 앞에 엎드림 없이 이런 건축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겠다. 인간 최고의 창조나 발명으로서의 신 없이 인간을 말할 수 없겠다. 신 앞의 부복, 납작 엎드림, 통절한 수용에 처해진 자만이 꿈틀거리는 새로움으로 몸을 일으킬 수 있겠다. 신과 함께 걸으며 자신을 만들어내는 거다. 무한한 존재에 대한 인식,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깨달음만이 지속적 열정과 끈기로 두려움없이 몰아붙일 수 있겠구나. 창조의 고통을 즐거움이자 헌신의 기쁨으로 승화시키거나 끝까지 오인을 가능케 하는 열정의 동인이 되겠구나.      


베드로 성당을 비롯하여 파르테논 신전이나 베르사이유, 이스탄불의 돌마바흐체 같은 궁전을 보면 아름다움이든 정교함과 화려함이든 그 어마어마함에 탄성을 연발하면서도 찝찝함이 따라다녔으니 그것을 가능하게 한 피와 살의 아우성 때문일 터이다. 제 삶을 강제당한 사람들이 떠올라 감탄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련한 상징이 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지금도 짓고 있는 스페인의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 뜨르르한 도시의 빌딩들은 어떤가. 많은 부분 기계가 대체하지만 그것을 작동시키는 것은 사람이며 위험은 도처에 있다. 희생에서 헌신으로, 강제에서 자발로, 착취가 아니라 알맞은 지원과 대가로, 우리는 발전하고 있는 걸까. 인간을 중심에 둔 체계나 규칙이며 합의일까. 감시와 규제가 지속적으로 유지·보완되는 걸까. 한 사람의 인권이 밟힐 때마다 우리 모두는 함께 낮아진다. 한 번 낮춰진 기준을 다시 높이기는 어렵고 어렵다.    

  

인간의 공간 확장과 무한성 추구에 대한 갈망. 영원히 잃어버려야 했던 어머니의 형상으로 집을 짓는 인간들. 이왕이면 아름답게 크고 높게, 화려하고 장엄하게 인정받고자 다투는 인간들의 욕망을 어쩌랴. 무한히 꿈틀대며 사라지기 무섭게 다시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는 충동들이 짓는 집은 a의 파편과 비늘들로 만드는 어머니다. 자못 맹렬하게 엉겨오르는 인간의 충동이 만드는 형상들. 오직 불가능으로만 가능한 그것.    

  

그러므로 이제는 눈앞에 드러난 광경에만 놀라며 순수하게 감탄할 수 있다. 모든 희생을 끝내 삶이 포함할 수밖에 없는 고통의 자리에 놓으면서 감사로 전환시킬 수 있다.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내는 심연, 언어 너머의 자리들을 느끼면서 서늘히 스며오르는 숭고함에 나를 내맡기며 경탄할 수 있다. 칸트의 ‘수학적 숭고’가 이런 것인가 싶어 종종 올돌한 감동에 휘말리면서. 어떤 돌파를 거친 존재적 지진을 상상하면서.      


4

a에 휩쓸려 생각에 풍덩 빠진 나. 생각으로 전방위적 불안을 틀어막고 있다. 나로부터 빠져나온다, 주저앉을 것 같다. 집에 가자, 지하철역을 찾는다. 차표가 여러 장 있다는 생각이 나자 기쁘다. 앗, 하겐다스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인다. 가장 맛있다는데 아직 먹어 본 적 없잖아. 그런데 돈도 없잖아. 가방을 뒤진다. 여권에 100유로 한 장이 들어있다. 이렇게 좋을 수가! 예쁜 가게, 하얀 탁자. 딸기 초콜릿 아이스크림. 정말 맛있다. 코끝이 찡하다. 산 자의 특권.    

  

스르르 두 여자의 얼굴이 떠오르며 소름이 끼쳐온다. 흐뭇함이 서린 사악한 웃음을 띤 채 내 돈이 원래 자기 돈이었다고 주장한다, 나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옆구리로 빠져 달아나던 남자아이의 얼굴은 내 옷자락에 찍혀 덜렁거리는 듯 섬뜩섬뜩하다. 그들이 들러붙을 동안 나는 그까짓 서명을 해주지 않은 게 미안했을 뿐. 돈을 꺼내는 동작 몇 개가 오직 귀찮아 노숙자를 지나칠 때처럼 말이다. 그의 한 끼와 나의 귀찮음의 관계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특히 눈보라치는 겨울, 장갑까지 벗어야 할 때.   

   

바꿔! 소매치기가 말했다. 이전 삶의 방식을 중지하라는 강력한 명령이다. 된통 혼내야 하는 아이였던가 나는. W에게 선물받은 노란 색조의 지갑, 맘에 들어 오래 아끼며 썼으나 이제는 낡고 때 묻은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면허증과 주민등록증의 주소나 사진 모두 오래 전에 바꿨어야 했다. 지금의 나와 일치하는 게 없다. 하하하 정말 어이없다. 여분으로 가져온 카드는 다른 곳에 두었어야 이럴 때 쓸 것 아닌가. 겪을 것은 겪어야 한다.      


5

반갑다, 비누가게가 보인다. 부디 낱개로 팔기를 바라면서 들어간다.

“다행이네요. 하나를 팔지 않아서 못샀거든요. 고마워요.”

“고맙긴요. 한국분인가요?”

“네.”

“나 한국에 관심이 많아요. 한국영화를 좋아해요.”

“그렇군요.”

“홍상수감독 작품은 다 봤어요. 그를 좋아하는 프랑스 사람들 꽤 있어요. 요즘은 봉쥬...ㄴ호 감독 좋아해요.”

“정말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군요.”     


어쩌나, 단절시키기 어려운 외교활동이 시작되었다. 비누 하나가 필요할 뿐, 나는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한국에 가고 싶어요, 갈 거예요.”

“그러세요. 한국 좋아요. 프랑스랑 달라서 새로울 거예요.”

“네, 갈 거예요. 파리는 처음인지, 얼마나 있을 건가요?”

“한 달 예정이요. 오래~ 전에 며칠 다녀갔어요.”

“벌써 두번째군요? 오래 전, 언제였죠?”

“음, 18년 전에 삼사일. 이번엔 그림만 내내 볼 거예요.”

“부러워요. 한 달이나!”

“당신은 젊으니 얼마든지 가능하죠. 내가 부러워요.”

“그런가요? 그렇게 말해 줘서 기뻐요.”     


과연 인간은 말하는 존재다. 그녀는 내게 말을 찾아주었다.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작은 딸래미와 통화를 했다. 대사관에서 직접 가능한 해외긴급송금이라는 것이 있단다. 한국대사관은 로댕미술관 근처, 대략 아는 곳이어서 속보로 걷는다.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굵은 빗방울이 아프다. 천둥까지 친다. 드세지는 비에 비장함이 솟기 직전에 대사관 문을 열 수 있었다. 오ㅡ 대한민국, 급조되는 애국심. 일단 300유로를 받으니 마음이 놓인다. 알아보고 애쓴 식구들이 고마워서 코끝이 간질간질.     

 

바렌느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a의 몸통에 근접했던 날. 뜨거운 물이 미스트랄처럼 불안과 외로움을 씻어내린다. 마리 로랑생의 분홍들이 렘브란트의 사라지는 웃음처럼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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