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애라 Jun 27. 2024

객잔을 운영하는 꿈(feat. 남해여행기)

읽고 쓰다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북스테이'라는 것을 운영하는 꿈이었다. 


언제인가부터 한국에는 '스테이'라는 이름이 붙은 숙박업소가 등장했다. 최근에 한이경이 쓴 <호텔에 관한 거의 모든 것>(혜화1117, 2021)을 읽었는데, 그에 따르면 '스테이'라는 이름의 숙박 형태는 한국만의 고유한 현상인 모양이다. 내 생각에 '스테이'는 민박과 펜션, 홈스테이, 게스트하우스 등등의 소규모 숙소 형태를 모두 포괄하면서도 어느 하나의 정체성을 오롯이 가지지 않는 것 같다. 숙소가 지닌 개성을 드러내고 싶을 때 '-스테이'라는 단어가 붙는 듯하며, '북스테이', '팜스테이', '한옥스테이', '감성스테이', '스테이형 민박' 등등의 용어로 분화되어 쓰이는 중이다. 


매거진에서는 이 현상을 다룬 대담도 있었던 모양이다. 3인 대담자 중 노경록 지랩 대표에 의하면 '스테이'는 '머무는 것이 목적이 되는 공간, 방문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는 곳'을 말한다. (관련 기사 하단 첨부) 이 정의가 꽤 맞춤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북스테이'는 '책과 머무는 것이 목적이 되는 공간, 여행의 목적이 책인 사람들을 위한 공간'쯤 되려나? 오오, 바로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런 공간, 그런 공간을 위해 모이는 사람들 말이다. 그 속에 있으면 살아가는 일이 꿈과 현실의 경계 없이 날아다니는 일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온갖 북스테이를 랜선으로 염탐했다. 그 중에 취향과 규모가 나의 마음에 딱 드는 곳이 '몽도'였다. 몽도는 남해에 있는 북스테이이다. 너무 멀었다. 직접 가보기는 어렵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운 좋게도 이번에 몽도 근처의 남해 바닷가 마을에 갈 일이 생겼다. 가족동반 모임원 중 한 명의 고향이 남해였기 때문이다. 남해의 바닷가 마을회관이 목적지로 정해지자, 나는 얼른 아이들 가정학습을 내고 일요일은 몽도에서 묵도록 예약했다. 


그런데 막상 가게 되자 약간 걱정이 되었다. 지인들의 푸념에 따르면 북스테이를 표방한 숙소 중 몇몇은 실망스럽기도 한 모양이었다. 신간이 없고 책을 구비한 흉내만 낸 곳들이 그러하다. 예쁜 인테리어에만 치중해서 책을 아예 몇 권 갖다놓지 않은 곳도 있다고 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북카페'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북카페라고 해서 찾아갔더니 색이 바래고 먼지가 앉은 헌책들만 '디스플레이용'으로 꽂혀 있으면 실망하게 된다. 그 와중에 책 껍데기 모양의(그것도 외국어 원서 껍데기 모양의) 인테리어 소품이 뻥뻥 비어 있는 책장을 죄다 차지하고 있으면 더 실망하게 된다. 그런 일을 몇 차례 겪으면 아예 북카페를 갈 때 읽을 책을 가지고 가게 되는데, 북스테이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래서 읽을 책을 챙겨갔다. 태블릿을 챙겨가면 전자책을 볼 수 있으니까.


기우였다. 몽도 주인장은 진정한 애서가였다(SNS를 통해 엿본 결과, 약간 짐작하고 있긴 했다.). 대형 서점을 끼고 있는 스테이들과 견줄까마는, 작은 숙소 규모에 구비한 서재치고는 꽤나 내실이 있었다. 몽도의 서재 겸 살롱인 별채 '방란장'에서 읽고 싶었지만 사지 못한 근간을 몇 권 발견했다. 그 중 이장욱의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을 숙박채가져와 읽었다. 


몽도의 별채 '방란장'과 시집 필사 노트에 꽂혀 있는 흑곰(잇츠미)


그 소설로 말하자면..., 겨우 1/3을 읽고 무슨 말을 하긴 어렵겠지.


얼마 읽지 못한 까닭은 전날의 과음과 과무, 과담, 과면(寡眠)으로 인해 뒤통수가 베개에 닿기 무섭게 잠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어른 16인, 아이 16인(총32인)과 공간 구분도 없는 한 방에서 뒹굴다가 몽도처럼 조용한 곳에 오니 깨어 있을 때조차 꿈 속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잠든 줄도 모르고 잠들었다 깨곤 했다. 그러면 읽은 줄도 모르고 읽어 버린 페이지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후진을 해야 하고, 정신이 온전했던 부분을 찾으면 거기서부터 다시 읽기 시작하는데, 또 잠든 줄 모르고 잠들고... 이렇게 앞으로 두 발 뒤로 한 발 가면서 읽으면 얇은 책도 벽돌책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뭐, 그래도 좋았다. 희디 흰 침구와 소음마저 탈색된 듯한 공간에서 밤새 '숙면이란 이런 것이다'를 체험했다. 너무 고요해서 아침 새소리가 민방위 훈련 경보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동네 새들이 전부 이 집에 몰려왔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다른 인기척이 없어서 새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린 거였다. 주인장 내외가 한지붕 아래 같이 있긴 한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 발소리조차 우리 가족들 것밖에 못 들었다.(사장님들, 혹시 <천녀유혼>의 영혼들처럼 떠다니신 건가요?)


결계를 쳐둔 몽도의 주인장 - 흰 커튼 뒤로는 들어갈 수 없다. 커튼을 걷으면 당신은 광야에 서게 된다. 그 세계에서 강호의 패권을 쥐어야 다시 몽도로 돌아올 수 있다.


공간 '몽도'에 대해서는 검색만 하면 쉽게 나오니까 내 브런치에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몽도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하단의 홈페이지를 참조하시는 것도 좋다. 현일수 사장님이 찍은 사진들이 내 것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 다만 아쉬우니 몽도 조식 사진으로 불특정 다수를 향한 침샘 공격은 해야겠다.



문득, 손님에게 "누룽지 괜찮죠?"라고 익준*처럼 따뜻하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묻고 싶단 생각이 들었는데, "안 괜찮은데요"라는 답이 돌아오면 어쩔 것인가. "아침엔 가볍게 시리얼과 우유가 좋겠어요"라는 답이 돌아오면 어쩌려고. 우린 누룽지 밖에 없는데. 그러므로 "누룽지 괜찮죠?"라고 묻진 못하고, "조식으론 누룽지 끓여드려요. 9시와 9시 반 중에 선택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할 뿐이다. - <숙박일지> p.130. *<슬기로운 의사생활> 조정석 분> 


그곳을 떠날 때 <숙박일지>를 사왔다. 주인장 고사장님이 친히 쓰신 북스테이 운영일지이자 시골 이주살이 체험 수기이다. 이 책을 읽으면 북스테이 주인장의 마음에 대해 미리 공부하는 거라고, 간증을 들은 것처럼 신앙이 두터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북스테이!" 하고 외치며 당장 부동산중개소를 향해 달려 갈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간증 수기집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웃픈 하이퍼리얼리즘 고백록(feat. 문학의 문장들)이었다. 


세상에는 미리 알면 저지르지 못하는 일도 있는 법이다. 어째서 먼저 애를 낳은 여자들이 처녀들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지 아는가? 안 낳을까봐서 그러는 거다. 나만 당할 수 없으니까. 몰라야 덥썩 저지를 수 있는 일들이 세상에는 제법 있다. (그 중에 전업작가도 포함된다고 본다.)



고우정의 <숙박일지> 열매문고 - 게스트하우스 '몽도'에서 구입 가능하다.


지금은 낡은 촌집을 사서 내 손으로 수리해 농촌형 민박, 즉 게스트하우스로 꾸며 운영해 보려던 꿈이 저 책에 관자놀이를 얻어맞고 잠깐 주춤한 상태이다. 숙박업의 필수, 베딩과 청소, 빨래와 설거지는 각오했던 바였으나 벌레 퇴치 같은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허리 잘록한 벌들이 붕붕 대던 여름 한낮. 처마 밑에 이제 막 건축을 시작한 작은 벌집과 사람을 포획하고도 남을 거대 거미줄을 철거하던 현일수는 한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집엔 너무 많은 존재들이 깃들어 살아. 예약도 안 하고 말야."
- <숙박일지> p.6. 


벌집은 119에 신고해 제거한다 쳐도 거미줄은 어떻게 하지? 거미줄 쳤다고 119를 부를 수도 없고..... 지네, 모기, 파리, 초파리, 각다귀, 기타 등등의 촌집 친화형 벌레들은 어떻게 하나? 친정 엄마집에서는 풍뎅이나 하늘소가 출몰하기도 하던데. 그놈들도 대거 출몰하면 꽤나 무서울 것 같다. 


새소리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 소리를 처음처럼 즐기진 못한다. 천기간의 가득한 새소리는 마당과 옥상에 낭자한 새똥으로 연결되는 까닭. 저것은 구애의 노래이거나 세력권 방어 및 경계신호가 아니라, 쾌변의 환호성인가 싶을 때도 있다. - <숙박일지> p.42.


게다가 새똥. 아 그렇다. 새는 똥을 싼다. 책에서 위의 대목을 읽는 순간, 아침에 눈 뜨자마자 들었던 새소리를 떠올리며 머릿수를 가늠해 보게 되었다. 그 소란스런 입들이 모두 항문을 가지고 있고, 1조 1똥에 기여한다는 생각이 들자 무서워졌다.  


가구가 부서지거나 마당에 풀이 자라는 것도 나 혼자 처리하기에는 부담스럽다. 나에게는 숙박업에 전일제로 동업할 남편이 없으니까. 남편이 출근해 버리고 나면 나 혼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손님들을 위한 책 큐레이션을 하며 여유 부릴 시간이 있을라나? 그악스럽게 육체 노동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씁쓸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여관'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복사꽃 필 무렵 취생몽사주를 들고 찾아오는 오랜 친구, 맹인검객, 달걀 바구니를 든 소녀를 맞이하는 일이 여관집 주인장이 감당해야 할 노동의 전부인 줄 알았던 어린 시절엔, 감히 여관집을 꿈꾸기도 했다.(이게 다 <신용문객잔>과 <동사서독>을 보고 자라서다). 사막에 여관을 열진 못했지만 대밭 뷰, 논밭 뷰만 펼쳐진 시골에 민박집을 차렸으니, 꿈은 얼추 비슷하게 이루어졌다고 봐야 하나? - <숙박일지> p.90.


일단 <신용문객잔>과 <동사서독>을 다시 보자. 낭만에 푹 취하면 나도 몽도의 고 사장님처럼 무모해질지 모르지. 그때는 어제처럼 그러지 않을지 몰라. 부동산 유투브에 올라온 촌집을 찾아가 몰래 주변을 살피다 오는 짓은 안 할지 몰라. 공인중개사를 대동하고 가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오겠지. 요즘 유행하는 펠리컨적 사고에 충실하게.


 

펠리컨적 사고 - 일단 입에 넣어.




<관련 기사>

스테이에 관한 거의 모든 것 - https://magazine.brique.co/article/stayhereroundtable/


몽도 홈페이지

https://mondo.modoo.at/


작가의 이전글 개소리의 개, Bullshit의 shi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