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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구집아이

나를 보며 홍시라고 놀렸던 아이가 하필 그곳에서 마주칠 줄이야

by 영롱한 구슬

봄바람 꽃바람을 타고 나의 단짝 글친구 수은이와 함께하는 즐거운 일요일이었다 처음 가는 성당 앞 분식집에 가는 날이었다 분식집에 도착하자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후다닥

지나가며 그중 한 명이 나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기분이 몹시 나빴다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왠지 문방구집 아이 같았다


초등학교3학년, 같은 반 짝꿍이었던 문방구집 막내아들이

툭하면 나를 놀렸다 아침에 교실문을 밀고 들어오면, 짝꿍의 첫인사가 "홍야 홍야 홍시 메롱메롱!"이 그 아이의 나쁜 입버릇 인사였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와서 나는 서러워서 많이 울었다 할머니께서는 속상하지만 참아보는 것이 미덕이라고 양반집규슈는 그래야 한다고 나를 가르쳤다 개구쟁이 남자아이들 패거리는 언제나 문방구집막내아들 주변을 맴돌며 놀았다

'어?~ 홍야~홍야~홍시, 감홍시, 안녕?'

'어? 분홍 xx, "

" 홍시, 감홍시, 제발 좀 그러지 마~'

'내가 뭐? 뭐랬는데? 홍 씨를 홍시로 들은 네가 바보지"

"지우개 넘어오면 연필칼로 자르기다'

공책도 책도 다 잘라간다며 나의 책과 공책 연필 지우개의

모서리와 귀퉁이를 다 싹둑싹둑 잘라갔던 그 아이와 주변 패거리아이들이 함께 나를 놀려대었다

정말 기가 막혀 어이가 없었던 그 얄미웠던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어서 왜 하필이면 분식집에서~~

수은이와 오랜만에 만나기로 약속한 성당 앞 분식집에서 마주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침등교마다 나는 왕복시내 버스비를 부모님으로부터 매일 용돈 형식으로 타서 다녔다

한 달에 적어도 여덟번의 버스비를 모아서 약간의 종잣돈을 만들면 기분이 좋고 든든하였다 만나는 친구라밨자 글친구 수은이와 그림친구명애밖에 딱히 다른 친구는 없었다 고등학교 진학 후 서로 학교가 달라서 만나지도 못하고 있던 차 중학교 졸업 후 오랜만에 부활절날 만나게 돼서 기뻤다 중등부미사시간을 마치고 성당 앞 분식집에서 수은이와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서 즐겁게 토끼 마냥 뛰어 분식집 안으로 들어갔다

분식집에서 계란토스트를 먹고 있던 교복을 입은 몇몇 남학생들이 나를 바라보며 흠칫 놀라서 시선을 돌리다가 후다닥 나간 아이 한 명이 낯익은 듯 아닌 듯 그냥 갸우뚱 스치며 지나쳤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집 아이 같았다 성당미사시간, 고요함 속 대성전을 감미롭게 물들이며 은은한 성음악이 울려 퍼지던 부활 미사를 뒤로하고 그들이 하필이면 이 좋은 날에 성당 앞 분식집에서 나와 마주치다니?


그 순간 초등3학년교실 에서 놀림당하는 아이의 모습.

짝꿍에게 무지하게 놀림을 당하고 있는 아이 한 명이 영화파노라마처럼 선명하게 지나갔다

기억을 지울 수 만 있다면 지우개로 지우고싶었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지나갔다

온몸을 부르르 떨며 서있었던 나를 발견하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부활절 성음악미사 전례장면과 나의 서글펐던 초등3학년 교실장면이 캡처되며 지나갔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위에 새겨진 형형색색의 성화그림들이 나의 온몸을 비추며 지나갔다 어린 시절 초등3학년교실과 함께 지나갔다 해가 뜨고 질 때 무지개 빛으로 변해가는 스테인드글라스 불빛을 받으며 나는 부활절이 되면 고해성사로 문방구집 아들을 용서하겠노라고 눈물로 기도 하였다 올겐의 성음악이 나의 모든 마음을 알고 치유하며 잡아주는 듯하였다 부활미사를 마치고 문예반에서 제일 글 잘 쓰는 수은이를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그날이었다 나에게는 글 잘 쓰는 수은이의 도움이 필요했다 "5월 가톨릭 미션계의 학교에서 열리는 마돈나 축제가 우리 학교에서 열렸다" 문예반이었던 나는 나의 개인 문집을 출간하고 싶었다 그곳에 실을 여러 가지 다양한 글들이 필요했다 문예반에서 주최하는 문집을 개인 이름으로 만들어도 된다고 문예반 선생님께서 우리들에게 귀띔을 해주셨기 때문에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났다 10대 청춘들은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며 살아가는 세대가 되어야 한다고 문예반 선생님은 언제나 학생 편에서 얘기를 해주셨다 꾸밈없이 마음대로 글을 쓰고 글 내용에 잘 어울리는 그림을 삽화로 그려보라고 하셨다 서로 좋은 글귀와 명언집을 모아서 수록하기 위해서 수은이 와 분식집에서 만나기로 한 그날이었다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계란토스트와 납작 만두가 있던 분식집에서 만난 친구는 끝없는 상상의 나래로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되어 첫봄날 학교가 달라서 만날 수가 없었던 삼총사(명애와 수은이) 중 수은이를 만나기 위해 성당에서 중등부 미사를 마치자마자 큰 마음먹고 한달음에 달라간 난생처음 독립적으로 가보는 분식집이었었는데ᆢ 왜?하필이면, 그곳, 그 시간에 문방구집 막내아들과 패거리친구들을 스치듯 지나가며 만나게 될 줄이야!


나는 잠시, 좀 힘들고 당황했던 내 추억의 교실 속으로 돌아갔다

초등 3학년교실문이 활짝 열렸다

"용용 죽겠지 홍야, 홍야, 홍시야. 감홍시~"

하지 마! 제발!, 나는 온몸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식은땀이 나서

스러질 것만 같았다


"뭐라고요?, 문방구집 아이가 우리 토스트값을 계산하고 나갔다고요? "


매일매일 갔던 그 문방구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갖가지 완구들로 가득 차 있던 보물상자, 나는 구경하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우리들을 항상 반겨주었던 친절하고 고마웠던 문방구집아주머니를 생각하며 조금은 용서가 되었지만, 나는 그때의 어린 마음에 상처를 준 그 아이를 생각하면,, 나만 보면 약 올리고 달아나던 그 아이를

대학생이 되어 첫 미팅 장소에서 그 아이를 또 만났다

대학 첫 미팅장소에서 그 아이와 다시 또 마주쳤다 나는 너무 소스라치게 놀라고 당황하여 그 자리에서 현기증이 나서 하마터면 쓰러질 뻔하였다 목이 타서 물을 마셨지만 도저히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아무리 어렸어도 어린 시절 장난을 쳐도 정도껏 쳤어야지라는 단어가 내 입안을 맴돌았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 아이가 용서가 되지 않았다 정신없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왔다 그날의 미팅은 엉망이 되었다 친구들 모두 우리 두 사람을 보고 많이 당황했었다고 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미팅이 흐지부지 된 건사실이었지만 친구들은 나의 속 마음을 모른 체 그저 " 호호호, 깔깔깔"거리며 "한 편의 재미있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재미있었다"며 친구들이 나를 보며 놀리고 웃어댔다

참 웃겨도 너무 웃기는 그 아이 와의 대학 첫 미팅 장면은 우연치고는 너무 심했었다 또 장난?

그때는 이상하고 어색하였지만 서로 한마디라도 사과와 용서의 단어를 누구라도 먼저 내뱉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얘! 그때 그 분식집 계란 토스트... 고마웠어" 한마디 맨트를 내가 먼저 했더라면 하는 감정 표현의 미성숙함의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어설픈 헛웃음만 나왔다

나는 부활절이 다가오면 오늘도 웃으며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의 묵상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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