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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가게

우리 집 뜰 앞마당에 라일락이 꽃을 피우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by 영롱한 구슬

봄내음이 가득, 엄마의 가게로 들어왔다 " 라일락 향기다"

아, 예쁜 꽃들이 피는 계절, 특히, 라일락나무에 꽃이 피면 더욱 좋다 엄마가 좋아하는 꽃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나도 무척 좋다 특히 라일락 꽃향기가 날리면 더 좋았다

가게의 일 감은 겨울에 비해서 조금씩 줄어들지만 엄마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젊은 여성들의 옷들이 밝고 가벼워졌다 마지막 봄이 가기 전에 봄니트무늬주문으로

엄마의 가게는 정신없이 바빴다



" 5월이 지나면 안 돼! "

" 빨리 서두르되 실수 없이 개인 몸의 치수를 줄자로 재고 맞춰서 게이지를 내고 작업 들어갈 거야 "

"이번 시즌에는 좀 작은 다이아몬드무늬를 여러 개 프랑스드레스풍 주문이 많이 들어왔어 "

"우아하고 귀티 나게 허리는 고무 단으로 촘촘히 박으며 콜셑느낌으로 잘록하고 길게 만든다 목은 V라인, 팔 어깨 부분은 나시 조끼모양, 하의는 롱 드레스 치마로 한복 치마 기장에 맞출 것" 등등의 주문이 밀려왔다

"올해는 빨간색이 유행한대..."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가게 한 구석 모서리 탁자 위에 이리저리 나뒹구는 새로 나온 색색가지의

니트 실들의 무지갯빛 샘플들과 니트무늬로 디자인된 외국 잡지들을 뒤지고 넘겨보며 혼자 놀았다

" 결혼식까지 너무 시간이 빡빡해서요 "

"네네.., 알겠어요, 최대한 결혼식 전 날까지 그 가격에 맞추어 예쁘게 잘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또 오세요!"

뜻은 같지만 제각기 개성이 있는 다른 지역의 언어들로 말을 하며 옷을 맞추고 디자인하는 어른들의 대화 장면은 결코 낯 설 지 않았다 매일 흔히 있는 일상의 대화에 익숙한 라일락엄마의 호기심 많은 어린 딸이었다

" 아~ 참! , 오늘 빨간색 앙상블로 주문했던 신부님이 대박이었어, "


"학교 다녀왔습니다"

가게 언니들이 갑자기 나를 보며 반겼다

"슬이야 맛 난 거 먹고 싶지?, 숙제 빨리하고, 니트방으로 빵 먹으러 와~"

슬이야! 미스김언니가 나를 불렀다, 니트방으로 와줄래? 방울과 단추도 만들어야는데

엄마의 가게일을 도우며 우리 집에서 낮에는 니트기술을 익히고

저녁에는 야간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먼 일가친척 언니들이 만두와 빵으로 나를 유혹했다

"언니들, 밀린 일감 좀 도와줘, 학교 가야 하니까" " 방울과 단추 만들기, 치마 주름잡 기, 도와주면, 언니들이 학교 갔다 오면서 야끼만두 사 올게ᆢ 아야 나는 찐빵, 삼송빵, "

"어? 숙제해야는데. 야끼만두?"

빵을 좋아했지만 그날은 야끼만두가 먹고 싶었다

숙제를 하는 둥 마는 둥 니트무늬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시절,

어린 나는 그들 틈에서 이리저리 옷가게가 즐비한 골목시장을 누비며 다녔다

가게심부름을 하며 시장골목의 장돌뱅이가 되어갔다

주문이 확 밀려올 때는 사돈네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능글어져야했던 시절이었다

엄마가게의 작은 니트방에서는 일 손이 늘 부족해서 발을 동동 구르며 밤샘하기가 일쑤였다

나 또한 어린아이의 작은 일손이었지만 약속한 날짜를 맞추기 위해 가게일을 최대한 도와야 했다 지쳐서 말없이 다이아 몬드 무늬 만들기에 열중하는 엄마를 도우기 위하여, 먼저 줄무늬를 만들어야 했다 줄무늬를 만들면 주름이 지는 드레스 치마가 완성되어 갔다 마름모의 뾰족한 곳에서 코 풀기를 멈추고 고무 단으로 길게 코를 짜올려서 허리 부분에서 코를 멈추며 기계에 한 줄씩 1cm 간격으로 코를 촘촘히 걸기 시작하였다 다이아몬드 무늬 만들기가 좀 어려웠지만 재미났다 기계를 작동시키자 바늘이 빨리 움직이며 코를 게이지대로 넓혔다가 줄여가며 기계바늘이 옷을 짜주었다 조끼모양의 나시( 팔 소매가 없는) 원피스 드레스가 완성되어 갔다 어깨 부분만 니트바늘에 실을 끼어 손으로 꿰매고 마무리하면 끝이다

"V넥라인 니트 나시 원피스의 완성"

너무 신기해! 참 신기해! 하며 나는 엄마의 가게 옷방에서 행복한 꿈을 꾸며 잠이 들었다

어린 초등생이 공장에서 일하다 지쳐 가게방에서 그냥 쓰러져 잠이 들었다?

요즘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가끔씩 우리 가게를 다녀간 집안어른들이 우리 엄마를 향하여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 장똘뱅이가 되어가고 있는 슬이를 어쩌지? 초등생이 밤을 새워가며 레이스와 니트

무늬 만드는 일에 정신이 없네 ᆢ숙제는 언제 하고

공부는 또 언제 하고 대학은 어째 갈랐는지 모르겠다

키도 안커겠다

주택가로 이사를 빨리 하던지 해야겠구먼"

일손이 바쁠 때는 사돈네집 바짓가랑이도 붙들고 능글 어질 지경이었기 때문에 그때는 고사리 같았던 아이들의 고사리 손도 필요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추석부터 그다음 해, 봄, 라일락나무가 꽃을 피우며 꽃향기가 날릴 때까지 그렇게 나는 작게나마 나름대로

엄마의 일을 도우며 살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신기하고 예쁜 옷 만드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던 이유도 있었다 여름에 쉴 수 있는 엄마의 밝은 미소가 보고 싶어 여름을 기다리는 아이가 되었다

나는 가게일로 밤을 꼬박 새우며 일하며 힘들어하던 엄마를 도와주고 싶었다

오월의 봄 꽃들이 피고 지면, 라일락 가게에는 여름이 왔고 연이어 가을이 찾아왔다

그리고 많은 시간들이 흐르고 흘렀다

기성복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며 시장 골목 맞춤옷 가게를 덮쳤다 그로 인하여 야간학교에 다니던 언니들은 큰 섬유공장으로 옮겨가고 엄마의 라일락가게는 꽃이 피었다 지는 유행과 변화 속에서 계속해서

가게를 꾸리고 이어갈 수가 없었다

걱정하는 집안사람들의 만류로 라일락엄마는 라일락가게를 과감히 정리하고 주택가로 이삿짐을 꾸렸다

"라일락이여.., 안녕!"

라일락 향내가 진동하는 봄이 오면, 장돌뱅이로 살았던 나는 엄마를 그리며 고생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 들 중 오래된 기억에 속에 남아 있던 그 시절의 한 장면을 오늘의 그림과 글로 다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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