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몰랐던 한성백제 이야기, 토기, 도기와 도자기를 둘러본다
#지금 내가 딛고서서 걷고 있는 현재 서울이라는 이 땅
올림픽공원은 삼국시대 고대국가였던 "한성 백제"라고 한다 아니 훨씬 전 BC4000전부터 한강유역에는 사람이 정착하며
빗살무늬토기를 만들고(신석기시대)
농경과 공동체생활을 하며 민무늬 토기를 만들며 살았다(청동기시대)
그러다가 좀 더 정교하고 단단한 토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철기시대)
이들은 부족공동체 안에서 가족단위로 토기를 만들었다
토기의 재료는 주변 강가. 논 근처에서 점토를 채취하여 잡티를 건져내고 물을 섞어 반죽을 하고 손으로 빚을 때 빗살무늬를 새기거나 찍어 넣기도 하며 가마 없이 노천에서
불을 지펴 구워서 만들었다 음식저장, 조리, 운반 종교제례 무덤부장품, 신분, 부족의 정체성 표현의 수단으로 만들고 사용하였다
공원 속 배모양의 박물관(해상강국의 백제)으로 지어진 "한성백제관"을 방문하였다
옛 한강유역의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면서 서있는 이 땅이 고대국가 백제의 13대 왕으로 한반도의 서역지역의 더 넓은 땅을 다스렸던 근초고왕(AD346년~375년)의 "한성백제"라고 한다
"한성백제박물관" 앞에 서서 약 1500여 년 전으로 돌아가보았다
그때당시의 모습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남한보다 땅덩이가 더 커 보여서 많이 놀랬었다
해상강국으로서 일본 규슈지역과
중국의 산둥반도(칭다오)까지 힘을 과시했던 근초고왕시대
한성백제의 토기와 도기, 자기를 감상하고 나서 흙을 다져서 쌓은 토성을 보니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가 이렇게 오래된 줄 몰랐다 5000년의 역사와 문화를 지닌 한반도인 줄 알고 있었는데 훨씬 더 오래전 국가가 형성되기 전부터 토기를 구워서 사용한 흔적들이 보였다
옛 선조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동안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나는 특히 토기, 도기. 도자기에 관심이 많다
빗살무늬 토기는 선사 시대부터 있었다 한반도에는 8000년 전에 이미 한강주변에 신석기인들이 정착하여 공동체생활을 하지 않았나 추측이 된다 토기를 제작할 때
왜 유독 아랫부분을 뾰족하게 만들었을까?
늘 궁금해서 찾아 읽어보았다
토기는 신석기시대 유물로 흙을 빚어서 유약을 바르지 않고 햇빛에 구워서 만든 그릇이다 그래서 잘 깨졌을 것이다 설명글을 읽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그때 한강유역은 모래와 자갈이 많아서
그릇아랫부분을 뾰족하게 만들어 바닥의 모래를 파서 토기를 고정시키고 그 속에 곡식이나 물건들을 담아놓기 좋아서 아래를 뾰족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이 되는 설명들이 있었다
분청자기(이조시대)를 닮은 도기들은 유약을 얇게 펴 발라서 구워내면 더 이상 토기가 아닌 도기로서 좀 더 견고하게 만들어졌던 것 같다
토기는 흙으로 빚어서 한 번 구워 내어 사용하므로 잘 부서진다 도기는 유약을 얇게 펴 발라서 자기보다 약하다 반면 자기는 한번 구워낸 토기에 유약을 도기보다 두껍게 바르거나 유약물에 초벌구이 한 토기를 풍덩 담가 고온으로 한번 더 구워 내어 잘 부서지지 않는다
한반도의 역사는 한강유역에 정착한 신석기인들이 5000년 보다 더 오래전 800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토기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한반도의 유구한 역사의 시작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한강유역에 정착한 호족 중의 하나인 백제가 주변의 호족들과 함께 힘을 합쳐 국가의 형태를 갖추었다
그 고대국가가 바로 위례성을 짓고 한강유역에 이미 오래전부터 농사를 지으며 물고기를 잡고 수렵체취로 정착해서 살고 있던 마을들을 흡수하였다
한강유역에 " 터"를 잡았기에
"한성 백제"라는 국가가 되었다고 한다
도자기를 사랑하고 직접 만들어본 사람으로서 경기도지역과 한강유역의 고운 흙으로 빚은 백제의 자기인 백자에 나는 더 정이 긴다
그중에서도 초벌구이를 하여 그늘에서 말린 토기에 흰색 유약을 바르고 청색 유약으로 간단한 문양을 붓으로 그린 후
또다시 그늘에 살짝 말려 흙가마에 넣어서 백자흙의 특성상 약 1300°C의 고온으로 구우면 도자기의 유약의 색깔이 투박함에서 벗어나 서서히 빛이 나고 흙과 어우러져 투명해지며 푸른 흰색을 띠는 "청화백자"가 탄생한다
나는 그 "청화백자"를 몹시 아끼고 사랑한다
#한성백제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