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간의 프로포즈 대작전(4)

by 노아

프로포즈 영상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고민해 보았다. 신디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이야기를 말하는 방향으로 진행할지, 오로지 결혼을 위한 내 메시지만 전달하는 방향으로 진행할지.. 그러나, 이는 너무 진부할 거 같았다. 무언가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울 거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지금 이 순간, 누구에게 가장 먼저 알리고 싶을까. 이 질문에 단 한 사람 밖에 없었다.


“어머님..”


가장 먼저 알리고 싶으나, 알릴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가셨던 단 한 사람. 나에게는 한 명뿐인 장모님이자, 신디에게는 어머니이신 분. 그분께 신디와 결혼을 앞두고 하는, 영상 편지 식으로 내 진심을 전하는 영상을 촬영해 신디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신디에게 어머니란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뭔가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마음이지만,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형태일지라도 찰나의 순간이라도 우리 곁에 잠시 머물러 함께 했으면 하는 간절한 내 감정을 영상에 담아내고자 했던 거 같았다.


또한, 어머님께 신디를 향한 내 마음과 앞으로의 다짐 등을 담은 메시지가 곧 신디를 향한 내 고백이기도 한 듯해서, 여러모로 어머님께 남기는 영상 편지 식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거 같았다. 그래서 평일, 어머님이 있으신 분당 스카이캐슬로 향했다.


처음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위치를 찾는데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네이버 지도와 두 발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지 않던가..


6월 초라서 그런지, 뜨거운 햇살 아래 노출된 두 팔이 뜨겁게 그을어가는 듯했고. 양 볼에서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무척이나 더운 날이었다. 그런 뜨거움에 마음 마저 스며들기라도 한 것 처럼, 한껏 가슴이 뭉클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애써 외면하고자 태양을 바라보았고, 그 햇살과 함께 펼쳐져 있는 광활한 푸른 하늘을 보자 내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는 듯 했다. 새푸른 하늘은 땅까지 내려와, 바람 줄기마저도 거두어가 대기를 건조하게 만드려는 기세였다. 그때, 내 귓가에서는 샤이니의 “재연”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익숙함이 준 당연함 속에

우리 사랑은

야윈 달처럼 희미해져


진심이 아닌 모진 독설로

그리 서로를

아프게 했던 시절

...

얼마나 소중한 줄 모르고

쓸쓸히 바래진

너와 나의 계절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처음, 마주했던 날을 기억한다. 애써 눈물을 참고 있던 신디와 그 옆에서 그런 신디를 바라보았던 나. 그 모습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그때 그녀의 온도와 습도, 주변 대기의 무거움. 서로를 안았을 때 느껴졌던 뜨거움.


지금 내가 느끼는 뜨거움은 그때와는 다른 류의 뜨거움이었지만, 내 눈을 계속 짓누르는 뜨거움이 아마 그때 우리가 느꼈던 감정과 같은 것이었을까.. 괜스레 날씨 탓인지 두 눈이 계속 뜨거워서 눈을 뜨기가 잠시 힘들었었다.


이 감정은 뭘까..


스스로 되뇌게 된 의문을 가진 채, 도착.


꽃을 사서, 어머님께로 조금씩 발걸음을 이어갔고.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고 나서야 어머님에 이를 수 있었다. 어머님과 나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한동안 말없이 자리를 지키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닿을 수만 있다면..


전해질 수만 있다면..


끝내 닿지 못할 말들만 배회하여 그자리에서 멤돈 채,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있다가, 납골당을 나온 나는 인근 벤치에 앉아서 “분당 스카이캐슬” 건물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편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결혼을 말하기 전에 제일 먼저 어머님께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이제는 영원한 어제가 되어버린 당신이지만, 당신만을 바라보는 신디 손 붙들고 현재를 넘어 내일로 나아가기 위해 당신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가끔 상상해보곤 해요. 어머님께 같이 찾아뵙고 저 혼자 훈계 아닌 훈계를 듣는 일상.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음식 먹고 억지로 미소 지으며 엄지를 보이는 나날. 술 따라 드리며 당신의 지난날들을 들으면서 당신을 안아드리는 일. 이 모든 일상들을 혼자 상상해 보면서 미소 지어보곤 해요.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상이겠지만, 저에게는 간절하고도 간절한 일상이니까요..”

“당신이 남겨두신 꽃은 잘 간직하며 현재를 살며 미래를 향해 같이 나아가겠습니다. 이제 흐릿해져만 가는 당신을 뒤로 한채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지난 당신의 슬픔, 사랑, 기억 모두 사랑합니다. 그 모든 마음, 제가 잊지 않겠습니다..”


이 편지와 함께 영상 편지를 마쳤을 때, 우연히 분당 스카이캐슬 공원 공간 전체에 “네버엔딩 스토리” 노래가 흘러나왔다.


너는 떠나며 마치 날 떠나가듯이

멀리 손을 흔들며


언젠간 추억에 남겨져 갈 거라고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져 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그때, 내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던 거 같았다.. 이유 모를 눈물이었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나온 눈물이었다. 신디가 언젠가 씁쓸히 웃으며 나에게 말했었다.


“자기는 장모님께서 해주시는 백숙, 먹을 수 없겠네.. 미안해..”


그때마다, 나는 신디를 보며 이렇게 생각하곤 했었다.


너를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장모님께서 해주시는 백숙을 내가 못 먹을 시간보다
네가 어머님으로부터 못 먹었던, 못 먹을 시간이 더 나에게는 마음이 아파..
신디.


어느 판타지 영화를 보면, 죽으면 영혼이 되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준다지만, 떠난 이는 말이 없는 법이다. 그 어떠한 메시지도 들을 수 없다. 사랑한다는 말도, 그리워한다는 말도 그 어떠한 말도 닿을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


그래서,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남겨진 이들의 고통이 어떠할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신디 곁에서 그걸 많이 알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겨진 이들이 떠난 이들의 슬픔을 짊어지고 어제의 연속선상에서 오늘을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매번 그런 신디를 보며 말하곤 했었다.


"어쩌면, 신디. 오늘은 어머님이 간절히 원하셨던 하루일 수 있어.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이 지난 시간에 얼룩지고 흐릿해지게 두면 안되지 않을까.. 오늘이 지워지면, 오늘로부터 돋아날 우리의 미래는 없을테니까.. 어머님께서 남겨주신 사랑, 그 마음을 간직한 채 오늘을 행복하게 보람있게 살아가는 게 어떨까.. 그게 맞지 않을까? 싶어.."


남겨진 이들은 어떻게든 이 세상을 잘 살아가게 될 것임을 믿는다.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그리지만, 그럼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을 살며, 미래를 꿈꾸고 준비하는 신디처럼. 그런 신디를 곁에서 함께 하면서 더욱더 확신을 한다. 떠난 이들이 남기고 간 사랑을 가슴에 새긴 채 그 힘을 원동력으로 삼아 살아갈 것이기에...


당신은 내게 찬란했던 봄

내가 찬란한 빛이었던 시절

그 시절, 나만 바라보았던 꽃

시간이 흘러 이젠 내가 너만을 바라본다

시간이 굽어서 내 빛 마저 녹슨 지금

네 앞에 녹슨 빛으로부터 흐르는 내 눈물만 보여

그 눈물을 너는 지긋이 바라보다가

희미하게나마 살아있을 내 빛을 찾고 있네


언제나 그래왔듯이

내 남은 빛 마저 당신에게 전부 주고

내 남은 거 마저 당신에게 전부 주고파

그러나 나에겐 오로지 얼마 안 남은 회귀뿐

너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갈 회귀뿐

이마저 주고 싶지 않아


나, 이대로 이곳에 이름 모를 꽃으로 남을지라도

당신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푸른 하늘만 쫒기를

부패해져 가는 시간 앞에 흙이 되어가는

나를 향해 뒤돌아보지 마오


당신은 내가 남긴 내 후생의 마지막 빛

찬란했던 태양을 한때 품었던 내 꿈 자체

이 지상에 좀 더 오래 눈부심을 만발하다가

당신마저 다음 꽃에 당신 마지막 빛 마저 준 날

죽음의 그림자 앞에 벌벌 떨 때

뒤돌아보오

당신을 향해 두 팔 벌려

당신을 안고자 하는 나를


그 누가 뭐래도 당신은 나의 태양

내 생애 최고의 눈부신 선샤인

내 빛을 다 쏟아낼 만큼 사랑하는 내 보물

사랑하오 언제나


우리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우리 아버지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썼던 시다. 떠난 이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남겨진 이에게 그들의 사랑을 전해주었으니, 우리들은 그 사랑을 잘 간직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살아갈 이들에게 그 사랑을 계승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영상 편지를 남기고자 했으나, 뭔가 막중하고도 엄숙한 책임감을 안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코, 신디를 울리거나 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할 것이리라. 신디에게 행복만을 안겨주겠음을 약속하며. 이 마음 결코 가벼운 마음이 아님을 어머님께 전하며, 이 메시지를 담은 영상 usb를 가지고 어머님을 뒤로한 채, 나는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으니.


그렇게 신디와 함께 한 주 한주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어느새, 그날이 왔으니..


프로포즈 당일, D 데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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