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화원에 온 것처럼, 저마다의 화분으로부터 가지각색의 개성으로 솟아오른 난. 저마다 무리를 이뤄서 공동체를 형성한 듯 분포되어 있고. 군데군데 조그맣게 가죽이 벗겨진 흔적이 있는 소파. 그 소파를 감싸듯 잎이 퍼져있다. 그 위는 온실 속 조명처럼, 연한 노란색으로 카페 안 전체를 물들여 아늑함을 자아낸다. 그 아래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는 나와 신디. 우린 서로를 지긋이 바라본다. 그러다가, 내가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고, 신디를 마주 본 채 한쪽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신디를 보며, 나는 말한다.
“신디, 나와 결혼해 줄래?”
신디의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이고 있고. 나는 그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다. 날 보며, 기쁜 마음에 눈물 흘리는 네 모습에서 황홀함을 느끼며. 너의 그 눈물에 1%의 슬픔이 없다는 사실에 환희를 느끼고 목격하고 있는 상황에 감격한다. 그리고 내가 너의 신랑이 된다는 행복에 온 세상 가득 채워짐을 느끼며. 그렇게 너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그때, 내 귓가에 들리는 소리.
“이렇게 프로포즈하면 돼.. 겠지?”
그리고 장면은 바로 카페 안 소파에 앉아있는 풍경으로 전환된다.
“노아~ 그래서, 어떻게 프로포즈 하실 건가요? 제가 뭘 해드리면 되는 거예요?”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잔뜩 미소 지은 채로 카페 사장님이 날 마주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죠..”
신디는 2주간, 회사 출장으로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간 상황이었고. 그 긴 시간, 나는 한국에서 프로포즈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참 시의적절했지 뭔가.. 마치, 우주의 기운이 깃들어 나를 도와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몰래 기념일 챙기고 서프라이즈 하는 걸 좋아하는데, 신디랑 만나면 아무래도 서프라이즈를 준비할 틈이 없다 보니.. 신디의 부재가 어떻게 보면 내가 무언가를 준비하기에 철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신디가 없는 이때가 프로포즈 준비하기에 최적의 시기였고. 나는 그 시작일부터, 프로포즈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다만, 문제가 있었으니..
어떻게 프로포즈를 해야 하지?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섬 하나 통째로 빌린다거나, 놀이공원을 빌려서 불꽃놀이와 함께 고백하는 그런 씬들이 많았는데.
나는 구준표나 김신이 아니야~! 물론 마음만은 그들 못지 않지만!!!
내가 무언가를 빌린다고 하면, 은행 대출이나 비디오 정도지. 놀이공원 같은 것들을 빌린다는 생각은 1도 없고, 그럴 돈도 없으니.. 고민이 되었다. 프로포즈라고 하면, 무언가를 빌려야만 하는 것인가? 여기에 대한 회의감과 거부감도 있었고. 신디에게 재벌 2세 흉내를 내기는 싫었다. 뭔가, 신디와 내가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을 압도하는 듯한 구도인 듯하여, 나로서는 그런 방식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신디 가라사대.
“노아, 나는 화려한 조명이 보이는 뷰가 있는 레스토랑에서 분수쇼나 그런 쇼를 하는 타이밍에 프로포즈하는 게 좋아~~”
아, 그래서 라스베이거스를 간 것인가?
너무 어려웠다. 고민되었다. 내 나름대로는 현실과 낭만 사이에 적절한 타협을 해야 했으니.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부분이 있었다면, 바로 프로포즈 반지였다. 2023년부터 2024년에 걸쳐서 IT 전문 서적 출판 번역을 했었던 일이 있었다. 그때, 그 일로 번역료를 받았었는데, 그 돈 그대로 프로포즈 반지를 샀었던 것이다. 물론, 나를 위한 선물은 1도 없.. 신디를 위한 선물이 날 위한 선물이.. 지.. 뭐.. 그렇지, 신디? 이렇게 나는 유부남이 되어 가는 것인가.. 이게 바로 유부남의 길인 것인가? 순간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순간..
아무튼, 반지가 일단 있고. 꽃도 준비가 되었기에 시나리오만 있으면 되었다.
그런데, 그 시나리오를 어떻게 짤지가 난제였으니, 명색이 작가 지망생인데 이런 시나리오 하나도 구상 못하는 게 말이 되나? 싶어서 이대로 주저하지 않고, 여러 업체를 물색했으니.
그 업체들 중 한 업체를 발견하여, 그 업체에서 프로포즈 관련하여 상품으로 판매 중인 시나리오들 하나하나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시나리오들 중 인상적인 것들은 아래와 같았다.
롯데 월드타워 123F 프로포즈
영화관 프로포즈
전시장 프로포즈
소극장 프로포즈
영화관 프로포즈의 경우, 할인해서 30만 원대 정도 되었고. 다른 것들도 비슷한 가격이었다. 대관이나 임팩트를 생각했을 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변수!!
영화관 프로포즈를 하기 위해서는, 상영관을 빌려야 할 것이고. 영화 상영 시간 사이 빈 타임에 진행될 텐데, 만약 이때 영화관이나 프로포즈 업체 측의 오류로 프로포즈 목적으로 대관한 상영관이 영화관 예매 프로그램에 노출되어 버린다면?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매했다면? 내가 프로포즈하려고 관객 앞에 서있는데 신디와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다면?
그보다도 더 민망한 일이 있을까.. 나는 파워 I이고, 파워 E인 신디조차도 그러한 일은 심히 부끄러워할 것이기 때문에.. 선택을 할 수 없었다(그런데 실제로 이러한 일이 발생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 주변 친구들의 프로포즈 썰을 물어보았다. 공통적으로 그들은 말하였다.
“풍선이 가득한 방에 촛불 켜놓고, 프로포즈했어~”
아하, 그거야!!! 그러면 우리가 예전에 아지트로 많이 갔었던,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 호텔 객실을 예약해서, 그 객실에 방을 꾸며서 프로포즈하면 되겠다~(“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 호텔” 내 있는 바를 신디와 자주 갔었다. 칵테일만 시켰고. 안주는 언제나 기본 안주였다 : 노아 주) 아무래도 우리 둘만의 의미 있는 장소에서 하는 것이 로맨스의 기본 아니던가~ 음핫핫~ 분명, 명색이 고급 호텔인데 이런 프로포즈 이벤트가 없을 리가 없다고 판단. 물어보았고, 역시나~ 있었다. 그래서 가격을 들은 순간,
바로 포기해 버린 나였다~~ 하하하...
미안해, 신디~
그래서, 또다시 고민.. 또 고민하다가.. 문득, 배우 남궁민 님의 프로포즈 영상을 보았다. 같이 밥 먹다가 갑자기 프로포즈하는 남궁민 님의 모습을 보고, 뭔가 이렇게 담백하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늘 역동적인 우리지만, 실은 조용하고도 담백한 우리에게는 이런 느낌의 프로포즈가 어울릴 거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만약, 이런 프로포즈를 한다면 우리들만의 아지트에서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아지트로 제일 먼저 떠올랐던 곳이 그 카페였다.
매주 한주의 마지막날인 일요일마다, 언제나 우린 그 카페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한주를 마무리하곤 했었다. 내 처음 회사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때도, 운전면허에 4번이나 떨어져서 힘들어했던 날에도 언제나 그 주의 마지막은 그 카페였다. 시트콤 “프렌즈”에서 센트럴 파크 카페처럼, 우리에겐 그 카페가 그런 장소였다. 될 수만 있다면, 우리의 모든 시간을 함께 한, 아지트와도 같은 이곳에서 우리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진심을 담아서 카페 사장님께 DM을 보냈고. 이에 사장님께서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던 것이다.
이후, 신디하고도 결코 해본 적 없는, 인스타 DM 주고받기를 카페 사장님과 진행하였으니~ 흡사 썸 타는 사이를 방불케 할 정도로, 쉴 새 없이 대화를 하였다. 여러 번 카페를 방문하여, 동선도 파악해 보고, 아이디어도 짜보고 회의하고. 그 끝에 아래와 같이 프로포즈를 기획할 수 있었다.
프로포즈 순서
1. 2주년이지만, 반지 사는데 다 썼다며 준비 아무것도 안 했다 거짓말하기~
2. 피곤하다며 8시 20분쯤 홍대에 도착해 카페에 있다가 헤어지자 한다.
3. 8시 20분쯤 카페에 간다.
4. 소파에 앉아 있다가 텔레비전에서 내가 준비했던 영상이 흘러나온다.
5. 영상이 끝나면 무릎 꿇고 반지 건네면서 준비된 편지를 읽으며 프로포즈
6. 준비한 꽃다발 주면서 마무리~
**중요 : 이때, 카페에서의 과정 전부 영상으로 기록되어야 함!!
- 이를 위해, 당일 꽃다발과 반지 패키지, 영상 USB를 카페에 맡겨야 한다, 카페 오픈 시각에 바로!
- 영상의 경우, 전날이나 전주까지 틈틈이 편집하고.
- 꽃다발은 전주나 해서 사전에 예약 주문해서 당일 받아갈 수 있도록 할 것.
흔쾌히 비용 요구 없이 허락해 주셔서 카페 사장님께 너무나 감사했다. 대관은 카페 사장님의 철학이 아니지만, 통제해주신다고 하셔서 어찌나 감사했던지..ㅠㅠ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사장님..ㅠㅠ)
카페 사장님과 함께 프로포즈 작전을 짠 후에, 난 프로포즈 영상을 찍으러 길을 나섰으니..
그때, 프로포즈 당일까지 D-16이었다..
그리고 프로포즈 영상을 찍기 위해, 나는 분당 스카이캐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