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우리들의 과거였다. 신디와 내가 각각 직면해야 했던 과거이자 치부, 상처. 마냥 결혼에 대한 환상에 가려졌던, 그것이 점점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와 드러나고 있었음을 우린 애써 외면해 왔었다. 그런데 그 치부가 드러나 우리 사이에 갈등을 꽃피우게 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결혼을 준비함에 있어서 우리가 간과했던 것은 결코 결혼이란 연애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제3의 요소들이 존재하며 그 요소들로 인해 결혼하기도 전에 끝날 수 있다는 거. 한때 전부라고 생각했던 가치와 존재들이 지금의 적이 되어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헤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거. 그 상황을 신디로서도 나로서도 견디기가 너무나 힘들었었고. 지쳐가고 있었다. 동시에, 헤어짐까지도 생각하게 할 만큼 우리의 관계는 극한에 치닫고 있었다.
"너는 나랑 결혼할 생각 있는 거야? 내 생각은 안 해?"
"너무 몰아붙이지지마! 나도 힘들어.. 왜 자기 생각만 해?"
결혼이란 연애와 차원이 다른 무언가였으니..
체감상 네카라쿠배 면접보다도 더 어려운, 내 생애 최고로 어려운 면접과도 같았다..
NCS 시험 대비도..
자격증 준비도..
그 모든 준비를 다 갖췄건만~
내가 준비했던 모든 걸 보여줄 수 없을 정도로 이변의 연속이요, 변수 투성이었어서, 내가! 네가 준비했던 알고리즘은 오류만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 디버깅을 하는 건 늘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도 너무 벅찼던..
거 같았다.. 이제로선.
이 모든 것들이 터졌던 어느 날이었다. 물론, 사건은 있었으나..
그때 그 순간, 우리들의 씬은
Lift!
(Lift : 영상 편집 용어로, 타임라인에서 선택한 영상 클립이나 특정 구간을 제거하되, 그 자리에 빈 공간(블랙 비디오)을 남겨두는 명령이라고 한다. - 노아 주)
순간의 바람이 불어나간 직후, 우린 한동안 우린 말이 없었다. 그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할 수 없었다. 왁자지껄한 어느 도시 속 거리. 그 거리 속에서 우리만 말이 없었다. 방금 전 있었던 상황들이 너무 쌩쌩하게 내 머리에서 사라지지를 않았다. 그때 확실히 체감을 할 수 있었던 거 같았다.
'그동안 신디가 이런 환경 속에서 아픔을 견뎌왔구나.. 얼마나 답답하고 분했을까.. 외로웠을까..'
지금 내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수치심과 굴욕, 분노와 증오보다도 신디의 모습이 더 눈에 밟혔던 거 같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살펴보았다.
“신디? 괜찮니?”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녀는 말없이 부르르 온몸을 떨고 있었다. 입술은 다문채.. 무언갈 참고 있는 듯 보였다. 그 미세한 균열을 본 나는, 그런 신디에게 말했다.
“참지 마. 지금 올라오는 감정을 삼키지 말고, 쏟아내. 내가 말했지~ 더 이상 눈물 참지 말라고~!”
그러자, 신디가 걸음을 멈추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떨리고 있었고. 그녀의 말은 흐릿해진 채, 지금에 번져만 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행복해지면 안 되는 사람인가 봐..
어쩜 이래..
...
너한테 많이.. 미안해..”
나는 그런 그녀를 안아주면서, 달래주었다. 그 어떠한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는 분노와 슬픔 그 상반된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고. 맑고도 화창했던 하늘과 온도 그 모든 게 뭉개지는 듯했다. 뭉개지는 세상 속에서 너와 나 둘마저도 하강하는 세상과 함께 셧다운 되는 기분만 가득했다. 극심한 분노와 공허함, 허탈함과 자괴감에 몸서리를 치는 등 마음속에선 여러 생각들이 극단으로 치달아 격동의 파란을 일으키려는 듯 시시각각 뒤엉키고 있었으나, 그 폭풍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 채, 일렁이는 그 물결을 그저 바라보며 흠뻑 젖는 거밖에. 그리고 잔잔한 강이 언제나처럼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저 삭이고 또 삭혀서 이 또한 지나가기를.. 아물기를..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 자다가도 갑자기 울분이 터져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새어 나와 폭발하는 나날이 많았다. 그래서 괜히 신디에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싶었기도 했었다. 신디가 했던 말..
“나는 행복해지면 안 되는 사람인가 봐..”
실은, 나도 했었다. 찰나의 행복.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왔던 이별과 그리움의 시간. 또다시, 시작인 건가?라는 생각에 이 세상을 잠깐이나마 원망했었다. 그러나, 나보다도 신디가 더 괴로우리라.. 신디가 걱정되었다. 그렇게 평일을 내내 보내다가, 주말에 다시 마주한 우리. 그때, 신디가 나에게 말했다.
“나 이런 생각도 했었어. 내가 널 붙잡는 게 아닐까.. 너는 나보다도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텐데, 내가 붙잡는 건 아닌가.. 하고..
놔줘야 하는 거 아닐까..”
이때, 나는 그녀의 모습에서 예전에 누군가가 떠오르기 시작했었다.. 한때, 내가 사랑했던.. 2년 넘게 그리워했던.. 내게 그리움의 시대를 안겨줬던 그녀가..
“노아.. 노아는 분명..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반드시요.”
거짓말..
거짓말이잖아.. 그날 나에게 보여줬던 미소, 그때 너와 내 설렘, 온도, 그리고 떨림.. 이 모든 게 단 한마디로 종지부 지어지는 거야?
“노아 씨는 절 언제부터 좋아하셨던 거예요? 노아 씨는.. 저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실은 연애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해서요..”
어느 카페. 짙은 장맛비가 창밖 너머에서 내리고 있었던 어느 날. 그 창가 쪽에 앉았던 세레나가 찻잔을 보다가 나를 응시한 채 내게 말했다. 이에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히 대답하였다.
“처음에는 호감이었어요. 궁금했어요. 그런데 점점 얘기를 나누다 보니 대화가 잘 통하고 재밌는 세레나 씨가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아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요. 세레나 씨와 함께 하고 싶어요.. 진심으로요..”
세레나의 손을 꼭 잡은 채, 우린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서 진지하게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내 시간은 그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