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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리 Feb 03. 2022

할머니와 무지개 강

#무지개는 환상#강물의 무지개#옛이야기의 의미


어릴 적 할머니의 옛 얘기 중에 지금 내가 기억하는 가장 으스스한 얘기가 있다.

어느 날 할머니는 

"무지개가 뜬 날 그 무지개가 비치는 강물에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이 아주 좋아진단다.

그래서 어떤 처녀가 무지개 뜬날 강물에 머리를 감다가 너무 무서워서 그만 강물에 빠져 죽었단다."라고 

사실인지, 전설인지 모를 얘기를 들려주셨다.


나는 머릿속으로 재빨리 그림을 그렸다.

무지개는 보통 비가 한바탕 쏟아지고 난 뒤에 

비스듬한 햇살과 아직 남아 있는 구름들 사이에 나타나는 것.

모든 사람들이 무지개를 아름답다고 하며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한다.

그런데 내 그림 속 무지개는 넓은 강, 비 온 뒤라 제법 물이 늘어나고, 물살도 조금 센 강 건너 하늘에

그림물감으로 칠해놓은 듯 아주 짙은 색으로 크게 걸린 무지개였다. 

아직 하늘에는 소나기를 뿌린 먹구름과 그위로 흰구름이 층을 이뤄 남아 있고, 

서쪽으로 기운 해는 붉은 햇살을 구름 위로 뿌리고 있었다.

잿빛 강물 위로 붉은 노을과 함께 일곱 빛깔 무지개가 비쳐 물결에 따라 부서져 흩어지곤 했다.

그런 강물에 아마도 칠흑 같은 검은색이었을 긴 머리를 풀고 머리를 감는다니!

생각만으로도 오싹한 그림.

그 그림 속의 처녀는 강물 속에서 일렁이는 무지개와 

붉은 노을을 머금은 회색 구름 풍경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놀라서 죽기까지 했을까.

아니면 그 배경과 함께 강물 속 자신의 모습에 심장이 멎을 만큼 놀란 것일까.

그 처녀가 강물에 머리를 감다 놀라 고개를 젖힐 때 그 머리카락에서는 

무지개 일곱 색 물방울이 사방에 흩뿌려졌을 것이다.

그것이 내 머릿속 무지개 강의 으스스한 그림이었다.


잔잔한 호수에 비추인 무지개의 사진이나 그림을 많이 본다. 

무지개는 늘 아름다움과, 행복, 사랑과 평화와 연결된 상징으로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것이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것이고, 쉽게 볼 수 없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 걸린 무지개에 대한 감상도 그저 환상일 뿐인데 

그 환상을 겹으로 두껍게 하는 강물에 비친 무지개라니.

하늘의 무지개에는 닿을 수 없고 강물에 비친 무지개는 손에 닿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까?

할머니의 얘기 속 그 처녀는 자신의 작은 욕심을 안고 그 환상을 비추는  무지개 강에 내달렸다 

목숨을 잃은 것이라고 하면 과한 해석일까.


무지개가 뜬 날이면 나는 꼭 할머니의 이 옛이야기가 생각난다.

단순히 할머니의 옛이야기로만 생각했던 이 얘기에 

아주 깊은 의미가 들어 있음을 깨달은 것은 

내가 한참 나이를 먹은 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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