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에 힘 좀 빼라.

글을 쓰는 나에게 말한다.

by 잉크 뭉치




어깨에 힘을 빼고 싶다.


글을 쓸 때마다 쥐가 나고,

밤을 새우는 이유는 힘을 빼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처럼,

자연스럽게 쓰고 싶은데, 힘겹게 쥐어 쓴다.


그럼에도 내가 바라는 건 순수함과 진솔함,

처음의 마음 그대로, 그 순수한 빛을 찾고 싶다.


지금도 글에 힘을 주면서,

그 힘을 빼고 싶다는 모순 속에 빠진 내 모습은

결국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다는 욕구로 변한다.


하지만 나는 묻는다.

"왜, 모두가 보는 곳에서만 써야 할까?"



글을 쓰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들이다.

때로는 자신의 치부까지, 그것이 비극이라 할지라도 내보내고 싶은 사람들이다.




아이러니하다.


누군가는 그것을 자유롭다고 부를 것이다.

또 누군가는 그것을 저급하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 차이가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쓴다면, 그것이 바로 추구하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 자유를 위해

나는 첫 문장부터 독자의 마음을 붙잡고 싶다.



종종 우울한 글과 관계의 서러움에 쓰인 글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외로움이 없다면,

사람들은 정말로 행복할 수 있을까?

그랬다면, 나는 과연 글을 쓰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 속에서,

외로움이 나를 끌어당기고,

그 속에서 나는 또,

글을 썼다.


외로움이 없다면,

세상은 과연 무엇으로 가득 차 있을까?

그 공허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갈구했을까?



혼자 살 수는 있지만, 살아갈 수는 없다.

글을 쓰는 동안 세상은 그대로 돌아가고, 사람들의 말이 나를 감싸기 전까지는

그 허전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갈증 속에서, 나는 내 글을 풀어낸다.


그럼에도 나는 또 모순된 결심을 한다.

"누가 보든 상관없이 그냥 쓰겠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자유다. 내가 꿈꾸는 가장 순수한, 가장 돈키호테적인 자유다.


이 글을 읽고, 당신이 느끼고, 생각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나는 성공이다.

내가 쓴 글을 세상에 던져 놓고, 내가 느낀 것, 생각한 것, 공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생각에 갇힌 작가는

결국 죽는다.


돈키호테가 알론소 키하노로 되돌아가며

죽음 앞에서 슬픔을 젖히듯,


결국 글을 보는 이가 내 속마음을 알지 못하면

그 글은 외롭게 시들어간다.

글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나 글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나도 글을 쓰지만,

너도 글을 쓴다.


너도 글을 쓰지만,

한강도 글을 쓴다.


누가 글을 썼는지, 누가 글을 보는지.

글을 탓하지 마라.

결국 은 도구에 불과하니깐.


오늘 쓴 글이 아까워 새벽에라도 올린다.

올리고 나면, 과연 이 글이 살아날까

하는 의문과 불안에 시간을 허비한다.


그렇게 다듬고 다시 올리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도

내가 추구하는 건 순수함과 진솔함이다.


이제 그만 떠나야 할 시간인 것 같다.

어깨의 힘을 빼는 방법을 조금씩 깨닫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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