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사람이 쓰는 글은 왜 따뜻할까

흔들리는 마음이 먼저 손을 내미는 이유

by 하얀 오목눈이

이상하게도

가장 따뜻한 글들은

대체로 단단한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늘 조금 불안하고,

자주 흔들리고,

확신 없이 하루를 건너는 사람들이

가장 조심스럽고 다정한 문장을 쓴다.


왜 그럴까.


불안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안다.

그래서 말 한마디가

얼마나 깊게 상처가 될 수 있는지도 알고,

문장 하나가

얼마나 오래 마음에 남는지도 안다.


글을 쓸 때

그 사람은 독자를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는다.

앞에서 이끌지도 않는다.

대신,

같은 높이에서 나란히 걷는다.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

“나도 자주 무서워.”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왔어.”


이 고백들이

글의 온도가 되는 순간이다.


불안한 사람의 글에는

정답이 없다.

대신 여백이 있다.

그 여백에

독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얹을 수 있다.


그래서 위로가 된다.


불안하지 않은 척 쓰는 글은

완벽해 보일 수는 있어도

쉽게 안아지지는 않는다.

반면 불안한 사람이 쓴 글은

조금 울퉁불퉁하고,

가끔은 멈칫거리지만

그래서 더 손이 간다.


그 글에는

살아 있는 흔들림이 있으니까.


불안한 사람은

글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이

문장을 부드럽게 만들고,

단어의 모서리를 깎고,

글 전체를 체온처럼 데운다.


그래서 불안한 사람이 쓴 글은

읽고 나면

무언가를 당장 해내고 싶어지기보다는

조금 숨을 고르고 싶어진다.


“괜찮아.”

“지금 이 속도도 삶이야.”

“너만 느린 게 아니야.”


이 말들은

불안해 본 사람만이

조심스럽게 꺼낼 수 있는 말이다.


어쩌면 글이란

불안을 없애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불안을 들키기 위해 쓰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솔직함이

독자에게는

가장 따뜻한 온도가 된다.


그래서 오늘도

불안한 나는 글을 쓴다.

완성되지 않은 마음으로,

확신 없는 문장으로.


하지만 안다.

이 흔들림 덕분에

내 글이 누군가에게

조금은 덜 차가운 하루가 될 수 있다는 걸.


불안한 사람이 쓰는 글이

따뜻한 이유는 단 하나다.


그 글은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 쓰이지 않고,

같이 버티기 위해 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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