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나는 먼저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대학 대신 물류센터로 들어갔던 그해의 기록

by 한동수

스무 살의 나는

캠퍼스가 아니라

물류센터의 바닥을 먼저 밟았다.


친구들은

각자의 대학 합격 소식을 올리고 있었고,

나는 새벽 알람에 맞춰

안전화 끈을 묶고 있었다.


누가 틀렸다고 말한 건 아니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늘 한 박자 늦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처음 물류센터에 들어갔을 때

단기 직원이라는 말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더 가볍게 만들지 않았다.

‘잠깐’이라는 말 뒤에

불안이 더 크게 따라왔기 때문이다.


컨베이어 벨트 위로

끝없이 지나가는 박스들,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는 순간들,

몸은 바쁘게 움직이는데

마음은 자꾸 뒤처졌다.


솔직히 말하면

울고 싶은 순간이 정말 많았다.


화장실에 잠깐 숨어

숨을 고른 적도 있었고,

퇴근길 버스 안에서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맺힌 날도 있었다.


“나는 왜 여기 있을까.”

“다른 애들은 다 잘 가는 것 같은데.”


그 질문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붙잡았다.


하지만 아무도

내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얼마나 애써 괜찮은 척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몰랐다.


그저

‘바로 사회로 나간 애’ 정도로

가볍게 불렸을 뿐이다.


그 시절의 나는

아직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고,

작가라는 단어는

내 인생에 등장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이미 아주 중요한 걸 배우고 있었다.


남들보다 먼저

현실의 무게를 아는 법을,

버티는 하루가

얼마나 길 수 있는지를.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약해질 수 있는 순간을

혼자서 견뎌내는 법을.


그때는 몰랐지만

그 물류센터의 시간들은

훗날

내 문장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게 해주었다.


쉽게 말하지 않게,

가볍게 위로하지 않게.


스무 살의 나는

아직 꿈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야기를 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말로 하지 못한 감정들을,

삼키고 넘겼던 질문들을.


만약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한마디를 건넬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뒤처진 게 아니라,

조금 다른 길을 먼저 걷고 있는 거야.”


그 길 위에서 흘린 눈물도,

꾹 참았던 마음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문장이 될 거라고.


그땐 상상도 못 했겠지만,

나는 그 시절 덕분에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스무 살의 그날들이

아직도 내 문장 어딘가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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