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많다는 건 갈피를 못 잡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어릴 적 나는
꿈이 유난히 많은 아이였다.
하루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고,
다음 날은 배우,
또 어떤 날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른들은 자주 물었다.
“그래서, 진짜 꿈이 뭐야?”
그 질문이
그땐 조금 어려웠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전부 진심이었으니까.
꿈이 많다는 건
갈피를 못 잡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꿈이 많으면 방황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방황이 아니라
스스로를 시험해 보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러 꿈을 통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 앞에서 오래 머물 수 있는지를
하나씩 알아가고 있었다.
다만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진짜 힘들었던 건
꿈이 없을 때였다
막상 세상에 나와 보니
꿈이 많았던 시절보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던 시간이 더 힘들었다.
먹고사는 문제,
현실적인 조건,
“이걸 해서 뭐가 되겠어?”라는 질문들.
그 사이에서
나는 한동안
꿈을 접어 두고 살았다.
꿈이 없는 척,
원하는 게 없는 척.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결국 나를 붙잡은 건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하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완벽하지 않았다.
재능이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손에서 놓이지 않는 것이 있었다.
목소리,
글,
표현하는 일.
잘 되지 않아도
계속 돌아오게 되는 것.
힘들어도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하는 것.
그제야 알았다.
아, 이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거구나.
꿈은
갑자기 발견되지 않는다
꿈은
어느 날 번쩍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여러 번 돌아가고,
망설이고,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는 사이에
조용히 남아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꿈이 많아서 불안한 사람에게
이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지금 당장 하나로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의 혼란이
나중엔 방향이 된다고.
꿈을 이루고 싶은 사람에게
내가 해 주고 싶은 말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남들보다 느려도 된다.
중간에 멈췄다 다시 시작해도 된다.
중요한 건
“이걸 왜 아직도 붙잡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는지다.
그 답이 있다면
이미 충분히 잘 가고 있다.
꿈이 많았던 아이는
결국 하나의 꿈에 도착했다
그건
가장 빛나서도 아니고,
가장 안전해서도 아닌,
가장 오래
내 곁에 남아 있던 꿈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 꿈을 향해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걷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직 꿈의 이름을 모르고 있다면
괜찮다.
당신이 계속 돌아오는 그 자리,
그게 아마
당신의 꿈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