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유튜브 채널을 추천했다. 듣는 둥, 마는 둥. 지인은 채널을 꼭 보라고 다시 추천했다. 보지 않았다. 채널은 구독자도 적었다. 시덥잖은 농담과 게임 이야기를 하는 방송이었다. 구독자 5천도 되지 않았다. 편집도 엉성하고 영상도 지나치게 길었다. 나도 한 채널을 알게 됐다. 채널을 지인에게 추천했다. 지인은 자신이 추천한 채널이 바로 그 채널이라 했다. 구독자 5천도 되지 않았다.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하던 채널. 그 채널은 현재 264만 구독자를 보유한 '슈카월드'다. 이 채널의 구독자는 빨리 늘지 않았다. 짜임새도 없었다. 그냥 재미로 운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채널이 어느 순간에는 무섭게 성장하더니, 대형 채널이 됐다. 혼자만 알던 인플루언서가 갑자기 공중파TV에 나오더니 승승장구했다. 그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지인이 TV에 나오는 것처럼 뿌듯했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채널. 그 채널을 보며 느낀 바가 있다. 역시 적절한 시기가 있다. 그의 채널이 주로 '경제' 이야기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내가 처음 구독할 때. 그 채널은 잡담하던 채널이었다. 게임, 잡담 중 종종 경제 이야기가 섞여 있을 뿐이었다. 경제 이야기라고 해도 그닥 신중히 다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코로나 쇼크'로 주식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사람들이 '투자'에 관심을 가졌다. 채널 이야기는 점차 '경제'가 주가 됐다. 채널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마치 눌러 놓은 용수철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워렌버핏의 '가치투자' 원리다. 시장이 발굴하지 못한 '종목'은, 추후에 가치까지 빠르게 회복한다. 단, 그 시기는 예측불가다.
중요한 것은 '올라간다'가 아니라, '제자리를 찾는다'이다. 모든 것들은 시장에서 적정가치를 갖게 된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 시장이 그 진가를 알아차려야 한다. 2002년 런던 경매장에서 한 부부는 누워 있는 여성 조각상을 구입한다. 가격은 800만원. 고가의 조각상은 평범한 부부의 집 정원에 있었다. 20년 간 말이다. 그렇게 20년 간, 800만원짜리 였던 조각상이 2022년에 난데없이 127억이 됐다. 조각상이 '누운 막달레나(Maddalena Giacente)'라는 작품이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20년 간 800만원 짜리였다고 하지만 그것은 실제 가치가 아니다. 127억의 가치는 항상 숨어 있었다. 제대로 된 가치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 알려지면 반드시 시장은 적정가를 찾아낸다. 'tv쇼 진품명품'에는 진귀한 물품들이 나온다. 꽤 고가의 진품명품이 나오지만 모조품이 나와 어이없는 감정가가 나오기도 한다. 애지중지하던 보물의 가격이 어이없는 감정가로 나오자, 사람들은 그제서야 그것을 그것으로 보기 시작한다. 순서는 그렇다. 진품은 숨겨 놓더라도 그 가격을 찾는다. 가품은 드러내더라도 그 가격을 찾는다. 고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수에게 먼저 알려지는 것이고, 그들에게 선택 받는 것이다. '낭중지추' 주머니 속 송곳은 반드시 주머니 밖으로 튀어나온다. 가치를 알고 있다면 조급할 필요가 없다.
글을 쓰고 소통하니 독특한 사실을 알게 됐다. 채널에 함께 소통하는 이들이 정체다. 몇 명에게 알려지고 마는 것이 아니다. 함께 소통하는 이들은 그저그런 다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채널은 당연히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테다. 그러니 그럴 것이다. 사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구독할 것이다. 그러니 그럴 것이다. 그래도 하나 하나 대단한 분들이 너무 잘 정제되어 모여 있다. 이들에게서 선택이 됐다는 점은 '숫자' 이상으로 기분 좋다. 이들은 글을 읽고 공감해준다. 소통해 준다. 그 사실만으로도 굉장한 동기부여다. 가끔 '낯부끄러운 칭찬'을 듣는다. 조용히 캡쳐한다. 무림고수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고수에게 '쓸만하군'하고 칭찬 받은 느낌이다. 다만 이들의 말을 100% 신뢰하진 않는다. 이들은 대게 상대가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관대한 성향들이 있고 상대에게 유하며 스스로가 넘치는 여유를 갖고 있다. 표면적 칭찬을 듣고 50%의 의심을 하며 글을 쓴다. '법조계', '의료계', '교육계', '과학계' 등의 다양한 분들이 계신다. 읽고 쓰는 책이 피치 못하게 그들의 영역을 건드려서다. 전문가 앞에서 주름잡다가, 오류를 지적 당하고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지만 보통 조용히 읽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흔적이 남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자신의 현실에 도움되는 글만 찾아 읽어도 바쁜 시대에, 삶과 크게 동떨어진 주제의 책을 읽는 이유를 누군가 물었던 적 있다. 그때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다양한 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인 것 같다. 깊진 못해도 그들과 가벼운 이야기가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저런 사람들, 이야기가 내 안에서 잘 섞이면, 이쪽 이야기가 저쪽 이야기와 섞이며 서로 서로를 엮어 준다는 느낌도 받는다. 내 속에서 버무러진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세상 밖에 꺼내진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 가치도 시장에서 적정가를 찾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