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북앤북스' 서점, 해외 문학 코너에 이상한 책을 발견했다. 겉은 비닐로 동봉되어 있었고 다시 띠지로 둘러 있었으며 그 안으로 커버가 덮여 있다. 무슨 내용이길래, 이처럼 꽁꽁 싸맸을까. 오른쪽 위에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강력한 표식이 눈에 띄었다. 읽지 말라면 더 읽고 싶은 게 사람 심리였던가. 책을 골라들었다. 며칠을 서재에 꽂아두고 읽지 않았다. 동봉된 비닐을 걷어내면 무언가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화 이블데드의 장면을 닮았다. 친구들과 숲속 오두막 별장을 찾았다가 벌어지는 사건을 담은 영화 이블데드는 내가 봤던 가장 심장 졸이는 영화 중 하나다. 공포영화라면 팝콘을 씹어 먹다가도 잠이드는 편이다. 영화 이블데드는 놀러간 오두막 별장의 지하에서 우연히 발견된 '봉인된 도서'로 시작한다. 굳이 그렇게 꽁꽁 싸매둔 금서를 인간은 꼭 풀어 읽어야 한다. 아마 내가 그 영화의 등장인물이라면 역시 지하실로 들어가 자물쇠로 잠겨진 도서를 열어 악령을 불러 들일 소지가 있다.
성인이 된 지금도 '19세 금지' 딱지를 보면 죄짓는 느낌으로 시작하는 걸까.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어떨지는 최근에 읽었던 몇 권의 책으로 가늠했다. 분명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고, 성적이겠지.
중학교 당시 인터넷이 보급됐다. 우리집도 그랬다. 인터넷이 보급됐고 여느 학생들처럼 컴퓨터 앞을 떠나질 못했다. 사춘기가 늦었던 나는 맹세컨데 인터넷을 불순한 의도로 사용하진 않았다. 그날도 컴퓨터 앞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였다. 어머니는 옆에서 빨래를 개키고 있으셨다. 전화가 울렸다. 어머니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상대쪽에서 말하는 음성이 여기까지 전해 들렸다. 집에 청소년 아들이 있느냐, 인터넷 사용량은 얼마나 하느냐, 그런 류의 대화였다. 수화기 쪽으로 잠시 정신을 두다가, 다시 컴퓨터 모니터로 향했다. 그러니 그 뒤로 대화 내용은 기억에 없다. 얼마 뒤 어머니는 수화기에 막지막 말하셨다. 그것이 기억에 난다.
"남자애들이 그런 거 좀 볼 수도 있지. 우리집은 됐습니다."
그게 무슨 말을 뜻하는지, 당시는 몰랐다. 추측컨데, '유해사이트 차단'에 대한 내용을 권유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하지 말라면 더 집요해지는 인간의 심리가 연관된다.
물정 모르는 '샌님'일 것 같아 먼저 말은 하지 않지만 스물 전에는 술을 먹어 본 적이 없다. 그게 어떤 분류에서는 이상한 일이고, 어떤 분류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대체로 내가 만난 이들은 이것을 이상한 일이라고 여겼다. 스물을 갓 몇 일 넘어 동네 친구와 삼겹살집 을 갔다.
"맥주 한 번 먹어볼래?"
친구가 권했다. '네가 주문해'. ' 네가 주문해' 서로 하다가 그냥 나왔던 것 같다. 물론 그 귀여운 에피소드 정도를 남기고 나는 '맥주광'이 됐다. 나이가 먹을수록 '타락'한 건지, 더 많이 알아가는 건지 모르지만 분명 이젠 알게 된 것도 많다.
이 책에서 '네크로필리아'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다. 단어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 수요가 있기 때문일까. '네크로 필리아'는 시체를 사랑하는 이상 성욕을 말한다. 세상에 참 이해하지 못할 것들이 많다지만 책의 소재는 '네크로필리아'다. 도서는 작년에 사망한 '사가와 잇세이'의 일화를 닮기도 했다. 실제로 책에서 '사가와 잇세이'의 일화가 소개된다. 이 글을 읽는 이들도 생소할 이름일 것이다. 신기한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 예능이나 다큐에서 가끔 소개가 되는 이 인물은 '작가'이자 'AV배우'다. 그는 2022년 11월 24일 사망하였는데 '악의 고백'이라는 베스트셀러를 남겼다. 이 책은 '일본 역사상 가장 참혹한 사랑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함께 가지고 나왔다. 소재는 이렇다. 주인공이 파리 제3대학교 박사과정 중, 학급 동료였던 네덜란드 유학생을 집으로 불러 살해하고 그 육신을 먹었다. 이 사건에 대해 그는 피해자에 대한 사죄는커녕 자신의 살인을 소재로 사용하여 책을 집필하고 CF와 방송을 했다. 그가 무죄로 풀려나고 막대한 돈을 번 스타로 오른 것은 세상의 아이러니다. 그가 쓴 '악의 고백'은 소설이 아니라 실화다.
인간이 아무리 잔혹한 상상을 문학으로 내놓는다 하더라도 세상 더 잔혹한 것은 모두 '실화'로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이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 넘는 다른 의미의 유일한 종이지 않을까 싶다. '뱀에게 피어싱'을 비롯해 꽤 잔혹하고 성적인 장르의 책을 몇권 읽었다. 물론 빠르게 읽히고 흥미롭다. 소설은 잔혹함과 성적인 부분이 많이 나온다. 어찌됐건 추리물에 속한다. 내용은 반전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류의 책을 잠시 쉬어야겠다. 뭔가. 더 많이 알면 안 될 것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