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책] 오프라 윈프리는 왜 화장실에서 명상하는가

현실에 집중하라

by 오인환

샤워를 했다. 물줄기는 머리로 떨어지더니 얼굴을 타고 목과 몸으로 흘렀다. 물방울이 몸을 적시고 더러운 것을 씻어냈다. 샴푸로 머리 거품을 냈다. 손가락 끝이 두피를 건드린다. 양손은 비누를 문질러 귓바퀴의 기름과 노폐물을 벗겨낸다. 오프라 윈프리가 명상을 한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과연 그녀는 조용하고 깨끗한 곳에서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녀가 말한 명상 장소는 다름아닌 '화장실'이다. 그녀는 더럽고 냄새나는 화장실에 앉아 명상에 빠진다. 가부좌를 틀지도 않는다. 그녀가 명상할 때, 옆칸 누군가는 큰 볼일을 보기도 한다. 화장실 냄새와 소리는 마음을 비워내는 명상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그녀는 남들이 화장실에서 더러운 것을 비워내는 것처럼, 그녀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정화하고 나온다. 화장실에서 나오면 그녀의 상태는 말끔가고 가벼워진다. 그녀가 '화장실'을 명상의 장소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화장실을 명상의 장소로 설정한 이유는 방해받지 않는 유일한 공간과 시간이기 때문이다. 화장실과 욕실은 거의 유일하게 보호 받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다. 뱃속에 가득한 무언가를 배설하기 위해 사람들은 화장실을 찾는다. 생물학적으로 반드시 찾아야 하는 '화장실'은 아주 중요한 '대피소'이다. 그 누구도 그 시간과 공간을 침범하지 못한다. 그 오롯하게 혼자가 되는 완전한 공간과 시간을 오프라 윈프리는 사랑했다. 화장실에서 이처럼 무언가를 해소하고 나오는 것을 두고 '불교'에서는 다른 이름을 지었다. '해우소'다. 단순히 생물학적 본능을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잠시 앉아서 '장' 뿐만 아니라 '뇌'도 비워내는 곳인 것이다. 가부좌를 틀어 눈을 감고 행하는 고상한 '명상'은 꼭 그런 모습이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샤워를 하거나 운전을 하면서도 명상은 가능하다. 명상은 별 것 없다. '현실을 깨어 있는 것' 그 뿐이다. 나에게 오롯하게 주어진 시간. 나는 하루 두번 샤워를 한다. 아침과 저녁. 세어보진 않았지만 화장실을 가는 빈도와 횟수도 규칙성이 있을 것이다. 이 시간에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깨어 있는 연습을 해보자.

사람들은 현실을 깨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깨어있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현실이 아니라 '과거'나 '미래'라는 이름의 '망상'에 산다. 몸에게 현실의 중요 업무를 맡기고 머리는 '망상'으로 빠져 들어간다. 자. 현실을 깨어 있는지 확인해보는 법은 간단하다. 혹시 의자에 앉아 있으면 의자와 엉덩이가 닿고 있는 피부의 감촉이 느껴지는가. 숨을 쉴때 내쉬는 숨과 들여마시는 숨을 끝까지 알아차리고 있는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피부에 닿는 현재의 촉각. 얼핏 지나가 버리는 냉장고의 작은 소음. 왼쪽 팔꿈치 위로 3센치 올라간 부근의 느낌. 그런 것을 느끼고 있는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현실의 모든 것을 기민하게 느끼지 못한다. 대체로 과거를 생각하고 미래를 걱정한다. 대중 음악을 부르거나 스마트폰 혹은 TV를 보며 현실이 아닌 '과거' 무언가를 본다. 그러나 지난 수년의 모든 신체보다 지금 현재 왼쪽 네번째 발가락이 가진 현실 감각이 더 중요하다. 엉덩이 밑으로 15센치 쯤 내려간 피부의 감각은 어떠한가. 지금 귀에서 들리는 바람소리는 어떠한가. 그 쓸데 없다 느껴지는 것들에 집중하라. 그것을 집중해야하는 이유는 이렇다. 그것은 사소하고 불필요해 보이는 일이지만 '현재'이기 때문이다. 현재를 집중하는 연습은 아주 중요하다. 만약 당신의 아이가 수학 문제를 풀고 있다고 해보자. TV를 켜놓고 음악을 들으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수학문제를 풀고 있다고 해보자. 아이에게 무엇이라고 조언을 해줄까. 아마 대부분은 이렇게 조언 할 것이다.

"그게 집중이 돼? 수학문제를 집중해야지!"

대체로 수학문제를 듣거나 책을 읽을 때는 음악도 듣지 않는 편이 좋다. 오롯하게 집중해야 하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문제집을 앞에 두고 급식메뉴를 떠올리거나, 끝내지 못한 게임을 떠올리고 있다면 아이에게 무엇을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가.

"그게 집중이 돼? 문제에 집중해야지."

그렇다. 모든 문제는 현재에서만 해결 가능하다. 현재에 집중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 과거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해결 불가능이다. 미래도 그렇다. 문제는 오로지 현재에만 있으며 그것을 해결하는 것도 현재만 가능하다. 현재에 집중하고 있는가.

부, 건강, 행복 모든 게 수학문제와 같다. 하는 것에 집중하라. 지금과 여기의 감각이 온전한 이들만이 문제를 풀어낸다. 수업시간에 딴 생각을 하는 이보다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이들이 유리한 것 처럼 말이다. 들숨과 날숨에 '하나' 혹은 '둘'하며 이름을 붙여보자. 그것을 열까지 세기도 전, 아마 잡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누구나 그렇다. 그러면 다시, '하나'와 '둘'로 넘어간다. 이처럼 현재에 집중하는 순간을 늘려가면 현재에 기민한 사람이 된다. 그것이 '명상'의 핵심이다. 지금과 여기, 현재를 깨닫고 살아가는 것. 거의 모든 사람이 현재를 짧게는 2초 길게는 1분 이상 연속적으로 살고 있지 못한다. 그것은 세상이라는 경쟁사회에서 꽤 유리한 자리를 선물해 주기도 한다. 모든 플레이어들이 함께 갖는 '핸디캡'은 먼저 극복하는 사람이 우월한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혹시 주인 없는 카페를 가 적 있는가. 예전 동네에 '무인카페'가 있었다. 인건비가 들어가지 않는 '무인카페'는 그 취지가 좋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커피값을 지불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주인 없는 카페에는 누구든 들어와 헤집어 놓고 나가기 때문이다. 아무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아도 주인이 없는 곳에 '객'들은 마음대로 안하무인이 된다. 분리수거는 아무렇게나 하고, 흘린 음료는 제대로 닦지도 않으며 비치된 휴지나 아무렇게나 사용한다. 감정과 생각은 '나'가 아니다. '나'는 감정과 생각을 가만히 지켜보는 '제3의 무언가'다. 감정과 생각은 카페를 들었다 나가는 '객'이다. 이들은 온전하게 있지 않는다. 누군가가 들어오면 도로 나간다. 이들은 주인 없는 마음에는 안하무인이 되고, 주인이 있을 때는 꽤 정돈된 활동을 한다. 마음이라는 곳에서 주인의 역할을 하며 현재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잘 지켜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하무인이 된 '객'이 주인 행세를 하며 '카페'를 엉망으로 만든다. 그것을 '인지 감각 왜곡'이라고 부른다. 인지 감각을 왜곡하는 색안경을 벗어내고 귀에서는 이어폰을 벗어내고 쓰고 있는 장갑을 벗어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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