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은 선과 악을 가르지 않는다. 중력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르지 않는다. 건물 옥상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던, 나쁜 사람이던 '힘'은 그것을 구분하지 않는다. 모든 에너지는 양자로 나눠져 있다. 그것을 '음' 혹은 '양'으로 불러도 좋다. '밝음'과 '어두움', '빛'과 '그림자', '여름'과 '겨울', '겉'과 '속' 이렇게 이렇게 양자로 나눠진 것들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도 에너지의 크기는 같다. 이것을 수학에서는 '절대값'이라고 부른다. 절대값은 이렇다. 수직선 위에 한점을 찍고 좌측이던 우측이던 점으로부터 멀어져 보자. -3과 +3은 둘다 절대값 3이다. 위아래로 출렁이는 파동을 보면 위로 볼록 나온 부분을 '마루', 아래로 움푹 들어간 부분을 '골'이라고 부른다. 진동의 중심에서 골과 마루는 각각 일정부분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진다. 결국 '골'이나 '마루'나, 진동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진폭은 커지며 진폭이 커지면 파동이 커진다. 선한 내적 동기나 악한 내적 동기나 둘다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곤 한다. 일정 부분에 성공을 이룬 이들을 보면 대체로 '선한 동기'로 시작한 사람도 있지만, '악한 동기'로 시작한 사람도 있다. 가령 '사람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겠어'라고 다짐하는 에너지나 '내가 반드시 성공해서 복수하겠어'하는 에너지나, 절대값은 같다. '사랑'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크지만 '증오'는 그 대척점에서 사랑만큼 큰 에너지를 갖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이 그것을 윤리적으로 비판하던 믿지 않던 혹은 그 원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던 그것은 그저 그렇다. 도덕적이고 윤리적 잣대는 인간의 관념상에서나 존재하지 태초에 자연과 우주에 '도덕'과 '윤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석유는 '선'하기 때문에 '물'보다 더 많은 열량과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고로 세상에는 꼭 좋은 사람에게만 '돈'이 따라 붙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사기치거나 속이고 기만한 사람에게도 '돈'은 여지없이 따라 붙고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사람과 집단에게도 '돈'은 끌려간다. 그것은 '중력'과 같다. 중력은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하지 않으며 그것을 사용하는 목적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작동한다. 때로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사람에게 사람들은 더 끌리기도 하고 실제로 사이코패스 또한 타인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은 걸로 알려졌다.
부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만큼 '악의 감정'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성공한 이들을 보면 때로 열등감이나 복수심을 동력 삼아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대체로 이런 에너지를 이용하여 일정 궤도에 올라서면 이들은 어느 정도의 사회적 위치를 확보한다. 뒤이어 스스로를 움직였단 '악의 감정'에서 벗어나 '선한 영향력'을 고민한다. '악의 감정'을 만들어내는 다수는 대체로 '결핍'이다. 결핍이 해결된 이들은 더이상 '악의 감정'이 동력으로써 에너지를 잃는다. 이후부터 그들은 다른 도약을 위해 '선한 영향력'이라는 단계로 넘어간다. 이후 새로운 원동력을 얻은 이들은 다시 한 단계 도약을 하며 다음 단계로 퀀텀 점프를 한다. 이들이 이처럼 두 번 째 감정으로 퀀텀 점프를 할 때 쯤,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꽤 높아진다. 또한 말 그대로 또다른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출판'한다. 결국 출판되는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선한 영향력'을 강조할 수 밖에 없다. 한결 같은 성공 방정식은 없다. 17세기에는 17세기에 성공하는 방정식이 있고 21세기에는 21세기에 성공하는 방정식이 있다. 20대에는 20대에 맞는 방정식이 있고 50대에는 50대에 맞는 방정식이 있다. 영업사원은 영업사원에게 맞는 방정식이 있고 자영업자에게는 자영업자에게 맞는 방식이 있다. 성별, 지역, 출신, 시기, 나이에 따른 각자 다른 방정식이 존재한다. 대체로 베스트셀러에 속한 자기계발서는 '대중'에게 선택 받기 때문에 그것은 일반화 된 내용일 뿐이며 모두가 같은 방정식이 사용된다고 볼 수 없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시간이 지나며 중학생에 입학한다. 인간의 관심사는 처음에는 먹는 것에, 그 다음은 부모에 그리고 친구로 이어진다. 다시 이성과 부, 사회적 지위, 건강, 행복 등으로 넘어간다. 모든 것은 단계가 있다. 유명한 누군가의 자기계발서를 보며 따라한다는 것은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고 아무런 계획도 없는 사람이 '선한 마음'을 가졌다고 제비가 박씨를 가져다 주진 않는다. 그것이 '선'이던 '악'이던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있어야 한다. 대체로 초기에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발화하는 것은 '악'의 에너지다. 여기서 말하는 악은 '살인'을 저지르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사기를 치는 '악'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갖고 있는 '열등감' 혹은 '복수심', 보여주고 말겠다는 '허세'와 '허풍' 혹은 '허영심'도 포함된다. 실제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당췌 말이 안되는 목표를 허풍을 늘어놓고 그것을 해내고 만다. 내뱉고나면 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카푸어'라는 이들의 대부분은 빈곤해지는 과정을 겪지만 이들 중 소수는 실제 그것을 탈 수 있는 사회적 지위까지 스스로 만들어내곤 한다. 위로 혹은 아래로 깊은 진폭은 어쨌건 '동력'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무엇으로든 움직이게 하는 힘이 중요하다. 그 말의 본질은 '움직임'이 결국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움직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어떻게 하면 '악'이던 '선'이던 그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을까. 원리는 이렇다. 그것을 종이 위에 쓰는 것이다. 우리뇌에 들어 온 정보는 '망상활성계'에 이해 중요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로 나눠져 이곳 저곳에 전송된다. 어떤 정보는 우선시 되고, 어떤 정보는 그렇지 않는다. 망상활성계는 이렇게 나눠진 정보 중 일부 정보에 기민하게 만들고 각성되게 한다. 종이 위에 글을 쓰면 그것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의식 깊은 곳에 박힌다. 이후 뇌는 우연하게 스치는 수많은 정보 중 '일부 그것'을 기민하게 받아들이고 발견한다. 그것을 스스로 재생산하고 저장하길 반복한다. 그런 과정은 다른 생각을 하거나 심지어 잠을 자고 있는 중에도 일어난다. 결국 무의식은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세상 가장 신기한 힘은 따지고보면 '중력' 아닌가. 왜 그것이 서로를 당기고 있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그것을 사용한다. 결국 '힘'은 원리를 파악하는 것보다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