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자의 영향력
부대 입구에서 위병 조장을 하고 있을 때 였다. '레토나'라는 소형 군차가 부대를 나가다가 멈춰 섰다. '다이아몬드 3개'가 붙어 있는 '대위 전투모'가 보였다. 이를 쓴 이가 걸어왔다. 왼쪽 팔에 둘러진 '노란색 완장'을 고쳐맸다. 대위는 '뚜벅', '뚜벅' 걸어왔다.
'똑.똑.똑' 조그마한 위병조장실 창을 두드리며 물었다.
"너 얼마 뒤에 전역이지?"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의 나이는 지금의 나보다 어렸을 것이다. 그는 지갑에서 만 원 짜리 몇 장을 꺼내다가 창문 속으로 '휙' 던져 놓았다.
"책 좋아하던데, 사서 봐라. 이거 주러 왔다."
"잘못 들었습니다?"
던져진 만원짜리 몇 장을 손에 쥐고 재빨리 위병조장실 밖으로 뛰쳐 나갔다.
"볼 때 마다 책 보고 있던데. 아무튼 전역 축하한다."
대위는 '레토나'를 타고 위병소를 빠져 나갔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쳐다만 봤다. 대위는 내가 지원 나가는 부대의 대대장이었다. 지원이라고 해봐야 신병 자대 배치다. 나는 운전병이었다. 그곳은 경치가 좋았다. 대부분 부대는 산속 깊은 곳에 있다. 그래도 그곳은 정말 깊은 곳이었다. 부대 앞에는 폭이 작은 강이 흘렀다. 운치 있는 낮은 산이 하늘에 걸려 있었다. 커다란 바위가 강폭을 막고 있어 그 위로 신선이 도를 닦을 것만 같았다. 그 운치 좋은 곳에서 군생활의 절반을 보냈다. 운행은 2차례에서 많게는 4차례 정도 있었다. 부대가 행정적인 준비가 될 때까지, 나는 대기실에서 대기했다. 그곳은 탁구대와 TV도 있었다고 들었다. 내가 들어 갔을 때, 그런 것은 없었고 사방이 책으로 둘러 쌓인 공간이었다. 먼지 냄새가 나는 소파가 벽으로 붙어 있었다. 안락한 소파였고 창을 열면 새소리가 들렸다. 그곳에서 책을 봤다. 운행이 취소되는 날이면 하루종일 책을 보기도 했다. 대개 운행하는 시간보다 책 보는 시간이 많았다. 부대 복귀를 하면 부대 도서관을 갔다. 치열하게 목표를 두고 읽진 않았다. 상병부터 병장까지 1년 간 들고다닌 'PD수첩'에 일기를 썼다. 일기장에는 '편지', '체크리스트', '독후감' 등이 있었다. 수첩과 함께 가지고 다닌 것은 '책'이다.
'짬'이 찰수록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빵 주머니'에 나는 책을 넣고 다녔다. 건빵 주머니는 전투복 바지 무릎 측면에 투박하게 붙어 있는 세, 네번째 주머니다. 대개 용도를 모르고 사용하지도 않는 주머니다. 나는 '두돈반'이라 부르는 2와 2분의 1톤 트럭을 운전했다. 이 운전 좌측에는 의자와 자체 사이에 책 한 권 들어가기, 딱 알맞은 크기의 공간이 있었다. 그곳이 나의 3번째 건빵주머니였다. 책은 항상 그곳에 비치해 두었다가 운행을 나가면 읽었다. 운전병의 일과는 이렇다. 운행 대기를 한다. 물건을 적재한 곳으로 이동한다. 이동 후 다른 부대 아저씨들이 물건을 적재하면 잠시 대기하다가 점심을 먹고 운행을 시작한다. 하차하는 곳에서 물건이 내려지는 시간 동안은 다시 또 대기다. 보통 차에서 잠을 자거나 '노가리'로 통하는 '수다'를 떤다. 대체 그 시절에 스마트폰 없이 빈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지금은 미스터리다. 어쨌건 나는 그 시절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군생활 1년 간 읽은 책은 100권이다. 정확한 숫자를 기억하는 이유는 수첩에 그것을 기록해서다. 보여지는 것 신경없이 읽었다. 그것이 '대위'의 눈에도 비췄다. 대위가 지나가면서 던진 용돈은 너무 예상 밖이었다. 충격이 맞는 것 같다. 충격이었다. 왜?
전역한 병사를 대위는 수도 없이 마주쳤을 것이다. 전역하고 나면 아예 존재하지도 않은 듯한 인연으로 끝난다. 서로의 이름도 모를 것이고 찾지도 않을 것이며 그냥 없었던 존재처럼 될 것이다.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인연들로 가득한 곳이 '군대'다. 특히 타부대 간부와 병사의 관계가 그렇다. 전역일을 알고 있다 지나치지 못하고 돈을 던진 행위는 어떻게 가능할까. 시간이 갈수록 소름끼치는 일이다. 돌이켜보니 유학 중 내 모습이 떠올랐다. 사람에 정이 많은 편이다. 그것은 완벽주의를 닮아, 채우지 못할 인연이면 시작도 하지 않는다. 해외에서 상대를 만나면 '성격', '나이', '성별'을 떠나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비자만료일'이다. 언제갈지도 모를 사람에게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연기처럼 사라질 인연들. 성격이 냉소적으로 변했지만 실제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을 주었다. 비자만료일을 채운 이들은 어김없이 한국으로 돌아갔고 그때마다 상쳐를 받았다. '다시는 돌아갈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 그러나 인연은 어쩔 수 없이 이어졌고 상쳐받길 반복했다. 그 시절은 이미 연기처럼 사라진 대위의 존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뜩 대위의 존재가 떠오를 때가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는 사라진 것 같았지만 불연듯 십 수년이 지난 뒤에도 나에게 남아 있었다. 그렇다. 사라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은 왔다가 사라진다. 연기처럼 사라진다. 옛 직장 동료, 연인, 가족도 마찬가지다. 모두 없던 일처럼 사라진다. 그것이 허무를 낳는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어렴풋 지나가고 남은 것은 보이지 않는 연기의 환영이 아니다. 향기다. 향기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며 시각보다 오래 머문다.
'사라져도 좋다. 그래도 표현할 것은 표현한다'
아마 대위의 철학이 그랬을 것이다. 어차피 사라질 것들에 정을 주지 않는 것 보다 삶이 풍성해지는 일인 것 같다. 보육원이나 장애 아동들, 유니세프 등에 후원을 했었다. 적게는 한 번에 몇 만원에서 많게는 100배도 넘게 했다. 누군가의 월급여 만큼을 기부해도 상투적인 '감사합니다.' 이상의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도 만원짜리 지폐를 움켜지고 떠나가는 레토나 자동차를 어리버리 바라봤던 나를 닮았을지 모른다. 잊혀질만하면 불쑥 찾아오는 무언가일지 모른다. '보이는 것'은 순간에 사라지지만 그 향기는 사라지지 않고 재생산된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