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함에 대처하는 법
'점탄성'이라는 말이 있다. 생소할 수 있겠지만 예를 들어 보면 누구나 아는 말이다. 녹말 가루를 물에 타서 반죽을 만들면 그것을 가볍게 저을 때는 액체였다가 주먹으로 내리치면 '고체'가 되는 성질이다. 사전적으로 물체에 힘을 가했을 때는 고체와 액체의 성질을 동시에 나타내는 현상이다. 대체로 사람을 대할 때는 그와 같이 해야 한다. 부드럽게 접근하는 사람에게는 부드럽고, 강하게 나오는 이에게는 강하게 나와야 한다. 대체로 처음 만난 이는 그가 어떤 자세로 나를 대할지 알 수 없다. 그가 예의가 없을 수도 있고 좋은 매너를 가질 수도 있다. 물에 탄 녹말가루에서 배울 것이 있다. 상대가 어떻게 접근할지 알 수 없어도 일단은 부드러운 '액체'로 존재하자는 것이다. 만인에게 '액체'로 존재하다가 강하게 때려 박는 누군가에게만 강하게 고체가 되면 된다. 그것이 내면으로 들어 올 수 없도록 빠르고 강하게 고체가 되면 그것에는 나의 한방울도 묻지 않고 그것은 나에게 한 치도 들어오지 못한다. 무례한 사람을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울효과'다. 상대와 똑같이 하면 된다. 그 거울 효과에서 중요한 것은 '복수'가 아니다. 그저 동등해지는 것이다.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 있다. 가령 뉴질랜드 마오리족은 상대와 눈이 마주쳤을 때, 눈썹을 치켜들며 가벼운 눈인사를 한다. 문화를 알면 상대의 행동에 이해를 하고 같은 행동을 통해 존재와 마음을 확인한다. 서로 같은 상식과 문화를 공유할 때 그것을 이용한 것은 좋다. 다만 우리는 프랑스나 독일에 가서 목례를 하지 않고 군대를 전역한 뒤에 거수경례를 하지 않는다. 상대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행동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뉴질랜드에서는 낯선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눈을 마주치면 끝까지 눈을 보며 무조건 웃어준다. 그 행동을 한국에서 했을 때, 굉장히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 있다. 심지어 뉴질랜드에서는 당연히 하던 문화라 하더라도 한국에서 그 문화를 따르지 않아도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유는 상대는 그 문화를 모르기 때문이다. 문화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맞춰 상대의 문화대로 해주는 것이다.
예전 한 출판사의 의뢰로 서평을 쓴 적이 있다. 담당 마케터는 말했다.
"책 내용 요약은 전혀 없네요. 다시 작성해서 올려 주세요."
'도서 요약본'을 올리라는 지시에 다시 도서를 요약해서 올렸다. 그제서야 마케터는 만족했다. 이후 다만 그 출판사의 책을 읽지 않는다. 서평을 쓰지도 않는다. 이유는 이렇다. 마케터는 너무 강압적이었다. 마치 결재서류를 검토 받는 상사의 느낌이었다. 도서 마케팅의 본질은 내용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하는 것 아닌가. 독후감은 읽고 느끼고 융합하고 사색한 글이다. 다른 이야기와 버무러 놓으면 그것은 또다른 읽을 거리가 된다.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면, 그리고 그것에 적당한 호기심이 발동하면, 그것이 마케팅이다. 간혹 잔혹한 범죄자의 '팬클럽'이 사회적 이슈가 될 때가 있다. '탈옥범'을 응원하는 팬클럽이거나 '얼짱 강도'를 응원하는 팬클럽 등. 범죄자의 팬클럽은 적잖게 우리 사회를 당황시킨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분명 지탄 받아야 할 범죄자이지만 '팬클럽'이 존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이다. 모두가 비난하는 누군가라고 해도 다수에게 알려지면 지지하는 소수는 반드시 생긴다. 그 파이가 커지면 소수는 반드시 다수가 된다.
좋지 못한 글을 쓰거나, 재미없는 영상을 업로드 하거나, 형편 없는 사진을 찍어도 마찬가지다. 상관하지 말고 꾸준하게 다수에게 홍보하는 것이 가장 좋다. 대체로 자신의 컨텐츠에 자부심이 있는 이들은 그 컨텐츠가 얼마나 좋은지를 알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보다 선행하는 것이 있다. 얼마나 좋은지를 알리는 것 보다 선행하는 것은 일단 많이 알려지는 것이다. 나의 컨텐츠를 좋아할 사람이 99%라고 해보자. 그러나 이 진가를 알아보는 소수에게만 이 컨텐츠가 전달된다고 해보자. 이 컨텐츠는 고작 100명에게 전달 될 것이다. 그러나 100명이 컨텐츠를 좋아할 확률은 99%다. 고로 99명이 좋아한다. 반대로 나의 컨텐츠를 좋아할 확률이 1%라고 해보자. 그것이 좋던 싫던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다고 해보자. 최소 1만명에게 알려진다고 해보자. 그중 1%에게만 선택을 받는다면 100명이다. 고로 가장 중요한 것은 알리지는 것이다. 고로 좋지 못한 책이라도 우선적으로 많이 알려지는 것이 중요하다. 알려지려면 일단 재밌어야 한다. 유익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책은 나에게 하등 도움 안되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다. 만약 마케터의 요구처럼 내가 그 책을 평(評)해야 한다면 '책의 내용은 그냥 작가의 일상 기록문입니다. 다수가 공감하기 힘든 내용이 다수입니다.'라고 평해야 한다. 책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감상의 대상이다. 누군가가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저것은 빨간색이 너무 진하다. 그래서 아름답지 못한 낙엽이다'라고 평가한다고 해보자.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이란 그런 것일까. 만 오천원짜리 책을 보내고, 업무지시 내리는 듯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서평은 감상을 기록하는 일이다. 드라마에 간접광고로 나오는 PPL은 대놓고 제품광고를 하지 않는다. 드라마를 보다가 광고가 나오면 화장실을 다녀오듯, 광고다운 광고는 광고가 아니다. 일단 드라마가 흥미가 있어야 홍보 효과가 크다. 고로 검색하면 나오는 책 내용을 다시 정리해서 올리는 것이 출판 마케팅에서 왜 중요한지 인지하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