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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독립심 있는 7살로 키우는 육아 노하우

TV 없는 집

by 오인환

집에 TV가 없다. 책꽂이만 있다. 책꽂이에 아이책을 꽂아둔다 책은 두 곳에 배치한다. 거실과 침실.

거실에 두는 이유는 거실의 용도가 원래 가장 오래 거주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거실은 living room이라 부른다. 역시 가장 오래 머물기 때문이다. 거실 책꽂이 옆에는 아이들 가방과 내 가방을 둔다. 외출 시에 항상 책 한권을 갖고 나간다. 거실 책꽂이에 서서 무슨 책을 볼지 고민하고 있으면 옆에서 아이는 그 모습을 흉내낸다. 아이의 책가방에는 항상 책 한 권이 있다. 침실에 두는 책은 적게 둔다. 원래 침실에도 책을 많이 두었다. 다만 종이책 특성상 건조하게 보관해야하고 책벌레 혹은 종이벌레, 집먼지진드기가 생기기 쉬워 크기는 줄였다. 주황색 스탠드를 침대 맡에 두었다. 아이들의 성향에 맞춰 아이템을 고른다. 아이들은 아래로 잡아 당겨 불을 끄는 스탠드를 선택했다. 그 아래서 책을 본다.

책꽂이에 책을 둘 때는 책꽂이 선반 끝까지 책을 앞으로 당겨 놓는다. 책을 밀어 넣으면 상대적으로 안으로 들어간 책은 찾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책이 앞으로 나와 있을 때, 책을 찾기 좋다. 심미적으로도 좋다. 아이에게 TV는 결코 보여주지 않는다. 보여 준다면 '영어만화'만 보여준다. 할머니집에 가서 주말에 가끔 보는 정도다. 평일에는 어떠한 영상 시청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은 원칙이다. 사교육 시장에서 수많은 아이를 경험해 본 바, 아이를 망치는 주된 원인은 스마트폰과 TV라는 확신을 가졌다. 자기통제력이 약한 아이에게 술과 담배를 권하면 안되는 것처럼 스마트폰과 TV는 결코 노출되선 안된다. TV가 거실에 있는 집의 특징은 '소리'와 '빛'이 멈추지 않고 유혹한다는 점이다. 대체로 인생의 중요한 일은 조용한 곳에서 발생한다. 뇌의 신경을 자꾸 이끄는 번쩍거림과 소리는 최대한 줄여야 한다. 아이에게 책을 보게 하고 밖에서 TV를 키는 일은 쥐에게 쥐약 묻은 치즈를 보여주는 꼴이다.


거실 TV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빈 A4용지와 B4를 둔다. 종이를 꺼내 마음껏 그리고 오리고 붙이고 하도록 둔다. 단,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둔다. 오전 내내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인형 놀이를 한다. TV가 없으니 1차적으로 말이 많아진다. 구성원들끼리 말이 많아지면 많이 듣게 된다. 해외에서 10년 간 살며 느낀바가 있다. '영어'라는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의 능력을 따로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듣기는 가장 빨리 완성된다. 듣기가 가장 빨리 완성되도 말은 나오지 않는다. 많이 들어도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말이 늘기 위해선 말을 많이 해야 했다. 인간은 원래 듣기와 말하기 중 '듣기'가 먼저 발달한다. 이유는 사용 빈도가 높기 때문이다. 스스로 말하는 것보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것이 많다. 고로 TV와 스마트폰에 노출될 경우,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능력 중 '듣기'만 비정상적으로 늘어날 여지가 있다. 외국 영화를 많이 봤다고 갑자기 영어를 내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로 말이 많은 집에서 자라면 '듣기'와 '말하기'가 동시에 늘어난다. 듣기와 말하기는 자연적인 일상에서 늘어나는 기술이다. 다만 여기에 '교육'으로만 늘어나는 능력이 있다. 쓰기와 읽기다. 쓰기와 읽기라는 방식은 인간에게 아주 오랫동안 없던 능력이다.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나타난 것이 400만 년 전이다. 이후 399만 년 간 인간은 돌을 떼어 쓰는 구석기 시대를 보낸다. 이후 그것을 갈아서 더 나은 도구로 변형시킨 것이 1만년 전이고 2000년 전에 청동기를 사용하고 100년 전에 비행기를 만들었으며 50년 전에 달을 탐사하고 15년 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초기 399만년 간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한 인간이 근 몇 세기 사이에 크게 발전을 한 것은 '문자'의 활용 덕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자의 발견과 최초문명의 시작 시기가 동일하고, 종이 발견 시기와 철기 시대가 겹친다. 문자 교육이 인간의 발달을 만들어 냈다.


고로 문자는 교육에 의해 만들어지는 기술이다. 인간의 시간은 한정적이다. 동시에 들으면서 말할 수 없고, 쓰면서 동시에 읽을 수 없다. 고로 듣기 능력만 지나치게 늘어 난다는 것은 다른 쪽의 부재를 의미한다. 대체로 아무것도 없고 읽을 거리만 있으면 사람은 반드시 읽게 되어 있다. 이또한 내가 사방에 책밖에 없던 운전병 휴게실에서 몸소 체득한 내용이다. 사람은 반드시 적당히 심심하고 적당히 적막해야 읽고 쓴다. 인간의 뇌는 애초에 읽고 쓰는 것을 부자연스럽다고 여길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능력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능력이다. 고로 집에 시끄럽고 반짝이고 흥미로운 것들로 채우면 안된다. 집에서 TV를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능력 중 듣는 능력만 비대한 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말을 하는 방법을 서툴러한다. 그럼 소통에 부재가 생긴다. 스마트폰을 하거나 업무를 해야 한다면 반드시 아이가 잠든 뒤에 한다.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는 항상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쓰는 모습을 노출하고 혹은 쓸데 없는 이야기, 잡담을 자주한다. 그렇다고 아이 교육 방침이 '똑똑한 아이 키우기' 혹은 '명문대 보내기'에 목적을 두는 것은 아니다. 아이 교육의 가장 큰 원칙은 '노예로 만들지 않기'다.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방식을 길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누군가의 생각과 결정에 의해 움직여지는 삶을 살게 된다.


용돈은 없다. 앞으로도 줄 예정이 없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학습해야 한다.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고 필요하면 요구하면 된다. 요구하면 반드시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요구한 내용에 상응하는 무언가와 거래한다. 칭찬스티커를 구매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하자. 돈을 원한다고 했다. 알겠다고 답했다. 아이는 다시 말했다. '초록색으로 주세요'. 아이가 받은 용돈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다. 집에 똑같은 장난감이 있다해도 그냥 사게 둔다. 똑같은 장난감을 사면 열심히 노력한 댓가로 가질 수 있는 물건의 수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스스로 학습해야 한다. 용돈이 아니라 월급여를 줄 생각은 있다. 운이 좋게도 좋은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스스로 청소하고 심지어 빨래와 설거지도 스스로 한다. 정리를 한 번 하면 기가 막히게 한다. 집안의 불은 스스로 끈다. 한 번은 아이가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자고 졸랐다. 그때 아이에게 말했다. 더 좋은 집으로 이사가려면 초록색 돈을 더 많이 모으면 돼. 전기, 물, 가스가 모두 돈으로 나간다고 일러주었다. 이후 화장실을 나와서 불을 끄지 않으면 혼나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아빠 쪽이 됐다.


쇼핑은 무조건 같이 한다. 집 안에 무엇이 떨어졌고 무엇이 필요한지 쇼핑리스트를 직접 적게 한다. 자리에 앉아서 전혀 자기 삶과 상관 없는 받아쓰기를 시키는 것보다 자기가 필요한 리스트를 직접적게 하는 것이 훨씬 더 '한글 공부'에 도움이 된다. 아이들이 쇼핑리스트에 적지 않은 물품은 결코 사오지 않는다. 물건을 살 때, 결제는 아이가 하도록 한다. 그 밖에 아이가 필요한 모든 일은 모두 직접 시킨다. 가령 지난 번에는 새로 산 신발 모양이 예쁘지 않다며 교환하기로 했었다. 나는 아이에게 카드를 맡기고 말했다.

"자기가 필요한 건 자기가 해."

아이는 점원에게 신발과 카드를 보여주고 직접 교환했다. 교환에게 다른 디자인을 요구하고 사이즈를 바꿔가며 자신이 원하는 신발로 교환하고 왔다. 아이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너 하고 싶은대로 하면되지 왜 아빠한테 물어봐?"

아이가 인형에 달린 옷을 잘라도 되냐고 물었다. 흠짓. 스스로 결정하라고 말해준다.

아이가 수학 문제 종이를 찢고 싶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대신에 다 푼 수학 문제만 찢으라고 했다.

아이가 종이 찢는 것을 좋아해서 아이는 수학문제를 앉은 자리에서 풀고 북. 북 하고 찢었다.

육아 방식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후 사춘기가 되고 더 많은 친구를 만나고 세상을 만나면 부모가 어쩔 수 없는 방식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본다. 그래도 어쨌건 함께사는 동거인으로써 적당히 만족한 수준까지는 독립심을 갖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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