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자녀의 성적이 좋지 않다면, 시험 범위의 목차를 물어보라.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이가 더딘 이유다. 자녀가 대답을 하지 못했어도 나무라지 말자. 이 문제는 성인에게도 똑같이 존재한다.
제목은 목적지와 같고 목차는 루트와 같다. 제목과 목차를 모르고 글을 읽는 것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가는 것과 같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목적지'와 '경로' 확인하며 여정을 떠나는 일이다. 길을 찾아 갈 때, 지도를 단 한 번만 보는 이들은 없다. 목차는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목차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확인시켜주는 지표다. 책은 단순히 정보를 얻는 도구가 아니다. 프로세스를 학습시키는 과정이다. 책을 읽을 때는 제목, 작가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등을 확인한다. 독서는 컨텐츠 뿐만 아니라 프로세스를 학습시킨다. 쉽게 말하면 독서는 뛰는 것과 같다. 뛰는 것은 단순히 목적지에 빠르게 도달하기도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한번의 빠른 목적 달성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길러지는 체력이다. 책을 읽을 때, 제목, 작가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을 순차적으로 읽는 것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프로세스의 올바른 방식이다. 현대인들이 정보를 얻는 방법은 워낙 다양해져서, 때로는 느리고 지루한 '책읽기'가 낡은 방식이라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시청각을 통해 얻는 정보는 우리의 뇌를 자극하여 아주 쉽고 빠르게 이해 되도록 돕는다. 유튜브와 같은 짧은 영상이 주는 정보는 분명 아주 빠르고 강력하게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다만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간혹 이 매체를 열등하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매체가 쉽기 때문에 '독서'보다 열등한 매체라고 할 수는 없다. 둘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겠다. 장점과 단점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상 시청 시간이 길어질수록 주의력이 감소하고 인지능력과 언어능력이 감소한다는 연구들이 있다는 것이다. 영상이 컨텐츠 내용을 제공하는 역할에서 월등한 반면에 어떤 부분에서는 열등한 부분도 존재한다. 바로 프로세스의 부재다. 누가 쓰고 있는지, 진행방향은 어디인지 그 프로세스를 영상은 학습시키지 않는다.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중간 중간에 목차를 확인하거나 작가소개를 살펴보진 않는다. 영상은 획기적으로 빠른 전달력과 이해력을 갖지만 방향에 대한 확인이 없다.
썸네일은 어떤 제작자가 어떤 의도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컨텐츠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는지 알려주기 부족하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정보의 부재가 아니라, 정보의 신뢰에 문제가 생겼다. 현대인들은 '정보를 찾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올바른 정보인지 확인할 수 없어서' 문제가 생긴다. 결국 '다이어트에 효과적인 음식'이라는 검색에는 초콜렛이라는 음식이 포함되고, 반대쪽에서도 초콜렛이라는 음식이 포함된다. 다양한 작가가 자신의 논리를 설명하는 과정이 빠진 정답만 내놓는다. 실제로 '커피'는 '불면증에 안좋다'는 정보도 있지만 찾기에 따라서, '불면증에 효과적이다'라는 정보도 얼마든 찾아 낼 수 있다. 일관적인 논리를 통해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다양한 작가가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정보 간의 충돌이 생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아무리 뛰어난 리더라고 하더라도, 그 리더들이 많아지면 그 집단은 엉망이 된다. 집단을 이끌어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리더'가 아니라, 단 하나의 일관적인 리더다. 고로 한 사람의 논리를 진득하게 따라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한 사람의 논리를 읽기로 했다면, 그가 말하는 논리의 지도를 살피며 길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역할을 목차가 해준다. 제주에서 서울로 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제주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갈 수도 있고 일본이나 이탈리아를 경유 할 수도 있다. 경로와 목적지를 알고 있는 자에게 그 과정은 '여행지'가 되지만, 모르는 자에게는 '방황'일 뿐이다. 미괄식 구성의 글쓰기는 종점에서 필자의 의도가 드러난다. 진행 방향을 모르고 출발했다면 미괄식 구성의 글쓰기에서 독자는 '필자'가 '딴소리 한다'고 느낄 지도 모른다. 누가 썼는지, 왜 썼는지, 어떻게 썼는지는 고로 반드시 읽어야 한다.
'탈것'에 탈 때는 누가 주행하고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떻게 가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누가 쓰고 있는가. 무엇을 쓰고 있는가. 어떻게 쓰고 있는가. 이 셋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작가소개, 제목, 목차에 있다. 빠르게 간다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롤러코스터는 아주 빠르고 신나게 달리지만 결국 1cm도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탄 곳과 내린 곳이 같은 곳이다. 속도는 어떤 면에서는 분명한 이점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탄 '탈것'이 나아가는 방향을 확인하고 여차하면 내리고 다른 것을 탈 수 있는 정도의 감각이다.
어떤 행위를 할 때, '왜 이것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그것을 우리는 '본질'이라고 부른다. 왜 그것을 하고 있는가를 꾸준하게 탐구하지 않으면 행위는 본질을 상실한다. 왜 하는지 모르고 행위만 남기 때문에 행위는 힘을 잃는다.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직원이나, 전역을 손꼽아 기다리는 군인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이유는 단 하나다. '행위'에 '본질'이 상실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버스를 탄 이는 틀림없이, 빨리 내리기를 소망한다. 다만 식당을 가기 위해, 혹은 어떤 목적을 위해 버스를 탄 이들은 빨리 도착하기를 소망한다. 고로 본질이 없는 이들은 빨리 끝내기를 소망하고, 본질이 있는 이들은 빨리 완성하기를 소망한다. 이 작지만 사소한 차이가 사람의 성과를 가른다. 갈라진 성과는 인생을 바꾼다. 이렇게 바뀌어지는 인생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부른다. 챗GPT가 온갖 물음에 답을 내리면서, 모든 사람들이 지적 보조 장치를 얻게 됐다. 달리기 속도가 느린 노인도 자동차만 타면 청년들을 앞지릴 수 있다. 이는 갖고 있는 장애에 대한 보조장치의 도움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제 신체 보조 장치를 넘어 지적 보조장치까지 탑재하게 되면, 스포츠카에 탄 노인과 같이 더 나은 신체조건의 누군가와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능력을 보조하게 되면서, 앞으로우리는 많이 아는 사람과, 적게 아는 사람의 차이가 줄어들게 된다. 결국 달리기 속도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여정의 속도를 줄여주는 것이 아니듯, 컨텐츠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는 지적 경쟁력이 아니다. 체력이나 달리기 능력이 아니라 '운전실력'이 능력이 되는 것처럼, 앞으로는 영상을 통해 빠른 컨텐츠 입력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올바른 정보인지 판단하는 '독서' 능력이 훨씬 중요해 질 것이다. 독서는 컨텐츠의 학습이 아니라, 프로세스의 학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