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 높은 구두에서 내려와, 차가운 물로 샤워한다. 숨겨진 세포 하나 하나가 깨어 나는 감각이 느껴진다. 그 감각이 사라지기 전, 캔맥주 하나를 깐다. 냉동실에서 꺼낸 유리잔에 따른다. 절반은 비스듬히, 절반은 가운데 집중 투하한다. 절반부터 거품이 일어나면 톡쏘면서 부드러운 맥주가 완성된다.
그것을 목구멍으로 넘긴다. 따끔거리는 것이 목구멍으로 내려가면 절반의 합리화와 절반의 자책감이 혈관을 타고 퍼진다. 시공간이 정확히 나눠지지 않는 취기가 혈관을 타고 돌아 콧김으로 빠져 나온다.
책을 펴고 같은 줄을 두어번 읽다가 포기한다. 밀어 넣어도 들어가지 않는 과부하를 인정한다. 디스플레이, 적, 녹, 청이 만든 발광 모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덮어버린다. 한 것도 없는데 시계는 새벽 한 시를 가리킨다. 어쩐지 삶을 닮았다. 얼마 전, 아이를 앉고 잠에 들었다. 한참 자는데 꿈에서 변을 보았다. 화들짝 깨어 살핀다. '꿈'이다. 잠 중 실례 한 건 아니다. 잠시 깨어 있다가 해몽을 살핀다. 예기치 않은 행운이란 의미란다.
'이런 걸 믿어 본 적은 있나' 피식. 다시 잠에 든다.
20대 초반에는 꽤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빈 하늘을 보면 UFO를 발견할 것만 같았다. 뜨거운 밥을 담은 그릇이 상 위에서 저절로 움직이면 '염력'이라도 생겼다고 착각했다. 떨어지는 벼락에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날 것만도 같았다. 어두운 밤이면 귀신이나 도깨비와 마주치지 않을까. 그랬다. 그런 기간이 길었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거짓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거의 모든 것을 의심해 봤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거짓이 많다. 논리는 비약이 되어, '거의 모든 것은 거짓'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그것마저도 '거짓'이라 전개됐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차갑게 식어버린 일부 영역이 '감성'을 앗아갔다. 스쳐지나가던 논리의 전개가 상처를 남겼다. '오류 범벅'에 '모순 범벅'들이 남았다. 때로는 이렇게 생각했다가, 다음에는 저렇게 생각했다가.
중심없이 흔들 흔들거리는 상태로 지냈다. 중심이 없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자아가 아닌가 싶었다. '흔들거리는 것' 자체가 자아 일수도 있겠다.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나마 조금 낫다. 시계추가 흔들린다고 정체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흔들리는 것 자체가 정체성일 수도 있다.
20대 초반 해외에서 퇴직했다. 퇴직사유는 꽤 도덕적이다. 나 아닌 누군가의 '도덕성 결여'을 대면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 퇴사한 것은 '나'다. 그 뒤로 휘청거리던 시기가 있었다. 한국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감성적인 판단이 큰 고통이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변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꽤 이성적으로 돌아갔다. 어쨌건 퇴사하던 날, 정산 받은 퇴직금은 불쾌했다. 받으며 들은 이야기, 알 수 없는 배신감, 대책없지만 어이없을 만큼 단호한 결단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적잖은 퇴직금 모두로 긁는 복권을 샀다. 1불짜리 동전으로 미친 듯이 복권을 긁었다. 복권 판매 직원과 서로 마주하고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의 공장 직원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간혹 수 십불, 수백 불 짜리 당첨금도 나왔다. 그것이 나오면, 그것을 그대로 복권으로 교환하여 긁었다. 그 불결한 돈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그 망할 돈지랄은 하루만에 퇴직금 모두를 사라지게 했다. 지금도 이런 류의 소득이 생기면 '고수레' 차원으로 날려 버린다. 조금더 고상한 방법으로 날린다. '기부'. 거기에는 선의가 반스푼 정도 감겨져 있다. 아마 두 톤 정도에는 그 의미가 없다.
인간에 대한 실망감은 그 뒤로도 있었다. 의미 없는 도박판에 따가갈 때가 있었다. 모르는 게임을 즐겼던 적 있다. 도박판이라니 어감이 이상하다. 그곳은 '합법적인 카지노'였다.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문한 카지노다.
일단 '도박'에 대한 디폴트값이라면 이렇다.
'나는 도박하면 무조건 잃는다'
고로 아예 잃을 때까지 나는 일어나지 않는다. 결코 벌고 나오지 않는다. 그날도 죽은 시간을 채우느라 그곳에 있었다. 할 줄 모르는 룰렛에 50불을 넣었다. '당기는 레버'는 없었다. 화면 아래 커다란 버튼만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눌렀다. 언제까지 눌렀는가, 화면에 표기된 금액이 0이 될 때까지 눌렀다. 누르던 중에 돈이 불어나기도 했다. 그러든 말든 돈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버튼을 눌렀다. 버튼을 누르고 누르고 눌렀다. 50불짜리 게임이 종료되는 순간 나는 자리를 일어났다.
그건 강한 철학적 신념 때문이 아니다. '그저', '그러다 보니 그렇게 됐을 뿐이다' 그 뒤에 무언가 대단한 건 없다.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면 굉장히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거의 모든 것에 그런 건 없다. 그냥 어쩌다보니 그런 것이고, 그러다 보니 그런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는 신앙심이 깊다. 그는 말했다.
"형은 신앙도 없는데 신앙인처럼 사네."
그 말의 의미를 안다. 재미없게 산다는 의미다. 가만 돌이켜보면, 정말 재미없게 산다. '술, 도박, 이성, 담배, 게임' 한 번 빠지면 정신 못차리고 인생을 갈아 넣는다는 그것에 나는 잘 빠지지 않는다. 술도 어쩌다 맥주 한 캔, 도박도 카지노 에피소드 하나, 이성에 대한 관계도 깨끗한 편이고, 담배라면 군대 선임고참이 억지로 물렸던 담배 한 개피, 지금도 당장 배우고 싶은 것은 게임인데 그 망할 '왜 그래야 하는지'하는 의문 때문에 배우질 못한다.
"가만히 있는 애들은 왜 때려 잡는거야?"
"왜 쟤들을 쏴서 죽여?"
"이거 이기면 뭐가 좋은데?"
게임을 해서 무엇을 얻느냐고 묻는 질문에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은 아연실색한다. 그렇게 세상이 깔아놓은 재미를 싹다 걷어 차놓고. 기껏해봐야 아이랑 가끔 '지렁이 게임'정도할까...
무언가에 미쳐 산 기억이 없어서. 성격도 뜨뜨미지근하다. 일상도 그저 그렇다. 그렇다고 막 잘못된 것 같지도 않고, 막 잘된 것 같지도 않다. 그냥 그렇다. 이렇게 머리만 깎으면 중이 될 것 같고, 수단만 걸치면 신부가 될 것 같은... 그러면서 신앙심도 딱히 없는 모호하고 무색무취한 그냥 그런... 무언가에 미쳐지지 않는 그 모호함이 정체성이 됐다. 참, 심심하게 산다... 스스로도 참 안타까워 뭔가 해 보려고 해도 그게 되질 않는다. 차라리 이렇게 사는 데에 철학이나 신념이라도 완벽했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그냥 그러다보나 그렇게 됐다. 그래도 어쩌나 그렇게 살아왔는데... 하고 그냥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