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배경은 다르지만, 사람사는 것 다 똑같더라

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들

by 오인환

12월의 크리스마스는 햇볕이 따갑고 공기는 찼다. 눈을 뜨고 있으면 눈이 아팠다. '찰싹' 내리쬐는 햇살에 피부는 따끔 거렸다. 들여 마신 공기는 콧구멍으로 들어와 몸 구석 구석을 돌고 나갔다. 차가운 공기가 남극 빙하의 냄새를 품은 것만 같았다. 그것이 '오세아니아'의 첫 인상이다. 신발 밑창이 더러워 지지 않는 나라. 정갈한 카펫을 깔아 놓은 것처럼 잔디가 덮여 있고, 그 어디를 봐도 그림과 같았다. 마치 사진촬영을 위해, 강한 조명을 켜놓은 것처럼 모든 것은 '모델' 같았고 그림 같았다. 그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에도 여유가 있었다. 비가 내려도 그들은 뛰지 않았고 맨발로 거리를 걸어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선글라스가 필수품인 그곳은 '뉴질랜드'라는 곳이었다. 친구에게 '뉴질랜드'를 이야기하면 이야기가 길어졌다. '풍차'가 있는 나라가 아니며, 유럽에 있지 않다고 알려줘야 했다. 국기에는 하얀색이 아니라 빨간색 별이 있다고 알려줘야 했고, 별의 갯수와 모양, 위치가 다르다는 부가 설명도 해야 했다. 그곳은 매우 '영국'과 닮았고 그러지 않기도 했다. 뉴질랜드의 전통음식을 묻는다면, 현지 친구들은 '피쉬앤 칩스'를 답하곤 했다. 다른 음식을 물으면 '스테이크앤 칩스'를 답하기도 했다. 영국 여왕의 생일은 국경일이 었으며 국기 자체에도 '유니언잭'이 있었다.

별것 아닌 것들이 뭐든 새로워졌다. 배경이 바뀌었다. 어쩌면 배경이 바뀌었다는 믿음이 그렇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행동에도 여지없이 그랬다.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니, 뭐든 것은 신기했고 새로웠고 흥미로웠다. 애초에 '언어'에서도 그랬다. 날마다 '배움'이 가득했다.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지, 카페나 병원, 식당에서 언제나 배웠고 언제나 실수했고 실수한 흔적은 기억이 되어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됐다. 그것들은 나의 머릿속 '메모리 공간' 어느 한 켠을 차지하고 완전히 새로운 자아가 될 것만 같았다. 사람들이 말을 할 때, 그들의 입술을 뚫어지게 쳐다봤고, 그들의 입술 모양과 혀의 움직임 목젖이 떨림까지 느리게 보였다. 어제 들은 말을 오늘 써보고, 오늘 써본 말을 다시 들어가며, 그들이 사용하는 말에 어감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떠난 이유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여행이 일상을 새롭게 한다는 것에는 어느정도 동의한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경험은 반드시 필요하다. 원래 사람은 환경에서 배우는 터라, 맹자의 어머니도 세번이나 이사를 떠났다고 하지 않던가. 환경이 바뀌면, 사람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면 '관계'가 바뀐다. '관계'가 바뀌면 결국 '자아'가 바뀐다. 과거에 내가 쌓아 올린 흔적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들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다시 새로운 환경을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매순간이 또렷하게 기억나는 까닭은 오늘 아침 먹었던 식사 메뉴가 기억나지 않는 까닭과 완전히 상반된다. 그것이 기억나는 이유는 그것이 새롭기 때문이고, 그것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반복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복되는 어떤 것을 '일반화'하여 같은 것으로 인식한다. 고로 반복된다는 것은 이미 흘러 넘치는 호수에 빗물을 뿌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충분히 적셔도 티나지 않는 충분함. 삶이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는 한 번도 적혀진 적 없는 땅 위에 비를 뿌리는 것도 한몫이다. 어린시절, 선생님들은 '외국'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외국인들은 '개인주의'가 심하다거나 '정' 많은 국가는 한국 만한 곳이 없다거나, 이들은 자신감이 넘친다거나 하는 것들이 그렇다. 내가 본 것이 일반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10년을 겪어보니,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더라. 그곳에도 말 한마디는 커녕 눈도 마주치지 못할 만큼 내성적인 백인 여자애들이 있었고, 다들 배우처럼 잘생기거나 예쁜 것도 아니였다. 중학교 때, 배운 영어 문법을 현지애들이 틀리는 경우는 허다했고 연애에 대한 고민, 취업에 대한 고민,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은 거기에서도 그대로 있었다.

정도가 다르지만,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 아버지는 내가 군입대를 예정하고 있을 때, 그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사는 것 다 똑같다'. 실제 아버지는 '특전사'로 군활동을 하셨지만, 그곳의 사람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어디에도 이상한 사람이 있고, 좋은 사람이 있다. 비율의 차이라면 존재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 '외국인 친구'들은 점차 그냥 '친구'가 되어갔고, 사용하는 언어나 생김새의 경계는 희미해져서 '사람'으로 보였다. 어떻게 보면 '언어', '비즈니스', '마케팅', '경제', '경영' 그 따위 것들이 아니라, 내가 가서 얻은 가장 소중한 배움은 '그것'이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다는 것. 그 시선을 얻었다는 것은 꽤 엄청난 것이다. 사람을 상대하다보면, 나쁜 사람과 멍청한 사람, 이상한 사람, 좋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그렇게 보여지는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누구나 사연이 있고, 누구나 자신만의 역사가 있다. 그것을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역사를 배워야 하고, 그들 각각의 역사가 5000년 된 한반도의 역사를 배우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그것을 배운다기보다 그냥 수용하는 것이 맞다고 깨닫게 됐다.

'그런가보지,', '뭔가 이유가 있나보지', '그럴만 하니까 그런가보지'

그런 자세로 삶을 살아간다. 결국 나에게도 비슷한 시선이 생긴다. 나의 역사를 설명하기에 상대는 그 지리한 것에 호기심도 없을 것이고 시간도 충분치 않을 것이다. 나의 온전체에 대해 충분한 설명과 이해를 줄 여지가 없을 때, 나는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노현지 작가'의 '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은 중장기 해외 생활을 한 젊은 부부의 일상이 담겨져 있다. 이 글을 읽으니, 20대의 나의 생각들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맞아. 그랬지'

지금은 조금씩 잊혀져 가는 그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는 걸 보니, 내가 겪은 기억들은 '신기루'나 '환상'같은 것은 아니었나보다. 가끔 현실에서 현실로 돌아온 지금에서야 '그것들이 너무 환상같은 경험'이라 그것이 진정 나의 기억속에 존재하는지 의심됐다. 그러나 기억은 먼지에 뒤덥힌 사진처럼 먼지만 걷어내면 언제든 되살아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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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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