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교육청에서는 초등학생 1학년을 대상으로 희망자에게 '키즈폰'을 무상으로 제공해준다. 2년 약정 단말기값과 월 이용 요금 8,800원도 모두 무료다. 교육청 지원이다. 이제는 스마트기기가 생활로 들어 오더니, 초등학교에 입학과 동시에 국가가 나서서 지원하기도 한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 당시, 이런 온라인 교육의 역할은 중요했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현상이 반드시 좋아 보이진 않는다. 언택트 비대면 교육은 '대안'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대체'는 될 수 없다. 쉽게 말해 온라인 교육은 '선택'의 폭을 넓혀 줄 수는 있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보완하거나 추가 옵션을 제공하는 정도까지 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교육의 형태를 바꿀 수도 없고 바뀌어도 안된다고 본다. 즉, 온라인 교육이 오프라인 교육을 대체 할 수는 없다. 그러지 않아도 언택트 교육은 최근 몇 년간 급격하게 증가했다. 문제점은 여럿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적 상호작용'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배우는 것 또한 교육이다.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을 상대하고 다른 이들을 상대하며 '학업' 이외로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사회적 기술을 배우고 의사소통 능력을 개발한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학습하고, 타인의 실수나 성공을 옆에서 지켜보며 반면교사를 삼거나 동기부여를 받아야 한다. 이 모든 상호작용이 언택트 교육에서는 사라진다. 우리는 전화를 개발했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항상 '만남'을 통해 해결한다. '전화'는 아무리 '화상통화'나 VR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어도 '만남'의 대안이 될 뿐, 만남을 '대체' 할 수는 없다.
언택트 교육의 두 번 째 문제는 집중력 저하다. 스마트폰 기기가 무서운 것은 그 속에 있는 컨텐츠가 '몽땅' 무료라는 점이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등 다양한 컨텐츠들은 모두 무료거나 '저렴'한 가격으로 배포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세계 최고 수익률을 만들어 내는 거대 공룡이 됐다. 그들이 '무료'로 배포해도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마케팅'이다. 어떻게 해서든 시선을 잡아 끌어야 하는 생존전력 상, 우리의 집중력은 너무 쉽게 저하된다.
세번째는 기술적 장벽이다. 기술이 좋아져서 온라인으로 화상교육을 한다고 해보자. 누군가는 최신식 아이패드를 도구로 삼고, 누군가는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학습하게 된다. 공간에서 학습하는 이들에게는 '부모소득'이 '자리 배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온라인 학습 공간에서는 '부모소득'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다. 일부 학생은 안정적인 인터넷 연결이 어려운 상황에서 수업에 참관할 있고 적절한 학습장비가 없어 교육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 질 수 있다. 또한 주변 환경적 영향도 크다. 집 안 사정, 개인적인 문제 또한 비슷한 문제를 만들어 낸다. 실제로 부모가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흔히 '사교육 시장'은 '교육'보다는 '보육'의 의미가 훨씬 크다. 부모가 6시에 퇴근하는 사회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하교 시간이 1시인 것은 공교육이 사교육을 부축이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로 대부분의 학부모는 '뺑뺑이'라는 용어를 익숙히 알고 있다. 자녀의 '학습'보다 중요한 것이 때로는 '시간'이다.
그러나 온라인 교육은 꾸준히 시장을 형성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앞서 말한 '대안'이다. 모두가 같은 교육 여건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누군가는 '장애'를 갖고 있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동'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필히 언택트 교육 기술이 그 역할을 할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쉽다. 교육의 목적이란 단순히 '학문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와 사회를 직, 간접적으로 겪고 그것을 맥락에 맞춰 해석하는 것이 교육이다. 이후 사회 구성원으로 적합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간접 경험을 통해 미리 시행착오를 겪어보는 일일 수도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자아를 실현하고 인성과 관계 형성을 배우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학습은 '국영수'를 대단한 온라인 속 선생님께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며 성공과 실패를 겪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고로 '명문대 합격률'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한 무게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