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아침에 버겁게 눈을 떴다. 안팍의 공기차로 창문은 뿌옇게 있다. 창에 이마를 붙이고 살핀다. 코와 입에서 나오는 숨, 체온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에 창이 더 뿌옇게 변했다. 살짝 창을 열어 밖을 다시 본다. 잘 보이지 않는다. 눈은 내리는 듯, 내리지 않는 듯 했다. 오늘은 산을 넘어야 할 일정이 있다. ‘여차’하면 ‘취소’해야 할 일정이다. 다만 상대쪽이 연락이 닿지 않는다. 어쩐지 ‘출발’해야 할 듯 싶다. 찌뿌둥한 허리와 어깨를 살짝 풀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아침 샤워를 했다. 머리가 채 마르기 전에 밖을 나섰다. 밖은 얼어 있는 빙판에 떨어지는 우박이다. 하루의 시작이 그렇게 됐다. 차 문을 여니, 차 내부로 눈이 쏠려 들어왔다. 앉아야 할 좌석에 눈이 금새 쌓였다. 눈이 만든 방석을 깔고 앉았다. 엉덩이, 등이 촉촉하게 젖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좌석히터를 켠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고, 다시 그것은 습한 기체가 되어, 면과 살을 기분 나쁘게 접촉하게 했다.
‘가다보면 마르겠지’
주말에 한라산을 넘어 1시간 30분의 거리를 이동했다. 얼마를 주행하니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미 출발해 버린 것을… 이왕 가기로 했으니, 조심히 가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섬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눈은 점점 고도르 높일 수록 많아졌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산비탈을 내려갈 때가 되면 다시 괜찮아지기를 바랐다. 기어가듯 이동했다. 가는 길에 ‘오디오북’을 들었다가, 음악을 들었다가, 조용히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가를 반복했다. 목적지에 15분 정도 늦었다. 그것도 겨우 그렇다. 다만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일은 거의 하지 못했다. 한 시간 반정도를 머물다가, 다시 돌아가게 됐다.
‘차라리 오지 말걸 그랬나.’
다시 산을 넘어 1시간 30분 거리를 이동했다. 넘어 올 때는, 갈 때보다 더 심했다. 눈은 꼽슬거리는 내 머릿카락처럼 질서없이 흩어졌다. 그렇게 눈 길에서 3시간 가까이 쓰니, 어제 채우지 못한 잠이 몰려 왔다. 히터를 끄고 창문을 열었다. 눈이 내부로 미친 듯 들어왔다. 잠시 잠을 다시 깼다. 졸음이 몰려오면 잠깐씩 창을 열었다. 바람소리, 눈, 비가 창틈을 타고 들어오는 소리, 추위가 아니라, ‘소리’가 주행을 방해했다. 결국 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기로 했다. 한참을 거북이 속도로 주행한다. 집으로 겨우 도착했다. 이제 5분만 가면 집이다.
직진, 좌회전, 다시 직진. 그러면 집이다. 마치 한참을 참던 화장실로 달려가는 마음으로 절실해졌다. 앞에는 렌터카가 있었다. 렌터카는 차선을 몇 번 바꾸었다. 다시 그 차는 내 앞으로 서서히 왔다. 차는 브레이크를 밟으며 섰다. 아마 좌회전을 하려는 모양이다. 다행스럽게 그 차는 정차했다. 다만 뒤따라가던 나의 차는 그러지 못했다. 앞차의 브레이크 등을 보고, 이쪽에서도 브레이크를 밟았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더 가속됐다. 브레이크를 뗐다. 속도는 줄었다. 그러나 앞차위 꼬랑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바퀴는 브레이크를 밟거나 떼거나, 그것은 상관없었다. 결과를 알고 다시보는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브레이크를 밟았다. 더 가속이 됐다. 다시 뗐다. 덜 감속됐다. 그러나 길지도 짧지 않은 거리는 결국 모두 소진하고 뒤 차량의 뒷부분으로 끌려 들어갔다. 자석처럼 끌려갔다.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는 듯 끌려 갔다.
‘쿵’
차 문을 열었다. 상대는 나오지 않았다. 동영상 버튼을 누르고 차량 사이를 촬영했다. 다시 카메라를 열어 이곳 저곳을 찍었다. ‘롯데보험’에 전화를 걸었다. 차량 사고 신고를 하고 앞차로 갔다. 상대는 나오지 않다가 나왔다. 이쪽만큼이나 그쪽도 천청벽력 같겠다. 보험 접수를 했고, 추우니까 서로 나와 있지 말자고 했다. 보험에서는 차량을 옆으로 빼두라고 했다. 슬금슬금 차량을 옆으로 뺐다. 렌터카에는 젊은 부부가 내렸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잠시후 보험회사에서 왔고, 대략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 여행을 나온 젊은 부부일 것이다.
지구가 참 이상한지, 그제까지만 해도 꽤 더워서 손 선풍기를 챙기고 가야하나 싶었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눈이 내리고 결빙이 되다니, 12월에 8월이 함께 섞여 들어온 느낌이다. 어쨌건 생각지도 못한 추위와 눈보라에 당황스러운 하루다. 차량은 앞쪽 번호판 부분이 깨져 버렸다. 보험에서 연락이 갈것이라고 했다. 너덜거리는 번호판 주변 플라스틱을 달고 겨우 집으로 기어 왔다. 집으로 오니, 주변 사람들이 꽤 있다. 왜 그럴까. ‘엘리베이터’에는 숫자가 사라져있다.
‘뭐지’’
정전인가 보다. 두 자리 숫자로 되어 있는 층까지 어떻게 올라갈까. 고민하다가, 그래. 운동이 별거인가. 하고 시작했다. 집 안으로 들어왔다. 불을켰다. 불이 켜지지 않는다. 물이 나오는지 확인했다. 물이 나오지 않는다. 인터넷도 잡히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보니 배터리는 9%이다. 태블릿은 10%다.
‘아하… 그렇게 한다 이거지.’
혼잣말을 하고 사용하지 않는 노트북의 전원을 켜본다. 꽤 배터리가 있다. 노트북에 충전선을 여럿 달아 놓는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100%까지 충전하니 노트북이 꺼져 버린다. 맥북을 켠다. 맥북의 배터리 잔량은 30%다. 맥북으로 글을 좀 쓰고 스마트폰으로 영화나 보고 잠에 들어야 할 모양이다. 내일까지는 정전이 풀려야 하는데… 벌써 정전 4시간째다. 언제쯤 불이 들어오려나… 불이 들어오지 않으니, 책을 읽을 수가 없고 일도 할 수 없다.
그나저나 새옹지마라고 하는데, 오늘 불운을 이렇게 다 써버렸으니, 이제 얼마나 좋은 일들이 몰려올까..
어느 친구가 해준 조언을 떠올리며, 오랫만에 넷플릭스 정주행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