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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Feb 02. 2024

[생각] 책은 마치 죽은 시계를 닮아서..._이상한 사

 책은 마치 죽은 시계를 닮아서 언젠가는 정확한 시간을 맞춘다. 그 자리에 멈춰서서 끊임없이 정시를 기다리는 죽은 시계를 닮았다. 20대의 나라면 결코 공감하지 못할 내용을 어떤 시기에 읽으면 정확하게 공감하고, 지금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또 어떤 시기가 되면 정확하게 공감할 것이다. 사람의 감정은 삶과 마찬가지로 골과 산이 번가르며 진행하기에 하루에도 몇 번의 골과 산이 존재하고, 그것은 삶도 마찬가지에 몇 번의 골과 산을 마주한다. 그 골과 산이 출렁거리는 일정의 파동이 책이 기다리는 지점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면, 마치 내 삶을 관통한 것 같은 경험을 한다.

 '도시와 그 불활실한 벽'

 누군가는 이 소설에 큰 여운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지만, 소설은 죽은 시계처럼 가만히 나의 때를 기다린듯 정확히 맞았다. 내 흔적과 기억이 책에 묻어 완전하게 동화됐다. 

 도서에는 '고야스'라는 인물이 나온다. '고야스'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무난한 삶을 살던 남자다. 그가 바늘 없는 시계와 어울리지 않는 스커트를 입고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 사람의 알 수 없는 행동에는 언제나 이유가 존재한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를 '괴짜'라고 취급하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최선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반드시 존재한다. 어느 누군가에게 나 또한 그렇게 비춰질지 모른다.

 도무지 이유나 동기를 알 수 없는 형체의 결과물로 비춰질지 모른다. 모르지만 반드시 그럴 것이라는 사실은 안다. 나에게는 논리가 명확한 그 흔적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비춰지고 새롭게 느껴진다는 것은 사람의 종류가 다양한 이유이기도 하다.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아내기 어렵다. 말로 표현하지 못한 발악이 '행위'나 '형체'라는 흔적으로 쏟아져 나오기에, 그것을 물어도 제대로 된 답을 얻기 힘들다.

 속 시원히 말하면 속 시원해질 것 같은 것을 끌어 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여 끙끙거리다가 이윽고 자신이 될 때가 있다. 그것이 곧 정체성이 될 때가 있다. 대개 거울을 보며 지금의 내가 본래의 내가 아닐 거라 부정할 때가 있다. 잠시 혹은 임시 이 모습으로 존재하다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여길 때가 많다. 그런 시간은 1분 1초였다가 하루, 한달, 일년이 되기도 한다.

전쟁에 참여한 이들이 그 흔적을 몸에 담고 살듯, 나태한 이들이 그 흔적을 몸에 담고 살듯

 가만 보면 지금의 내 모습이 내 삶의 흔적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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