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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04. 2024

[읽을책] 누군가 왜 읽냐고 물어본다면_민음사세계문학전

 인간의 뇌는 하루 6천에서 8만개의 생각을 하는데, 이중 70%는 부정적인 생각이다. 사람에 따라, 이 수치는 급격하게 올라간다. 인간의 뇌는 '부정편향'의 성격이 강하다. 생존 메커니즘상 필수적인 진화적 결과다. 

 부정적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오래 기억하는 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생존력을 늘렸으나, 현대에 와서 이는 '사회적 생존력'을 급격하게 위협한다.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이런 부정적인 생각. 이것을 반복적으로 곰곰히 반추하는 것을 '루미네이션'이라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증폭된다. 과거 고타마 싯다르타, 즉 붓다는 생각을 멈추기 위해 다양한 수행과 명상을 시행한다. 호흡에 집중하여 생각의 흐름을 멈추기도 하고 자신의 신체나 감정, 마음을 가만히 집중해 들여다 봄으로써 마음이 작동하는 길을 바꾸려고 했다.

 사람의 마음은 물과 같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짜여진 프로그래밍처럼 움직인다. 한 번 지나간 길은 길이 되어 더 많은 물이 쉽게 지나갈 수 있게 한다. 쉽게 지나가는 길에는 더 많은 물이 들어오고 들어온 물은 그 흔적을 더 깊고 선명하게 남긴다. 가만히 나를 두었을 때,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그 흔적의 꼬리를 잡아다가 물고를 틀어 막으면 어찌되는가. 틀어막힌 물길은 어느 순간 차고 넘쳐 선명한 두 갈래의 길로 발전한다. 두 갈래의 길은 더 큰 물고를 만들어 더 많은 물을 흘러 보낸다. 흘러내리는 물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좌절감에 우리는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가. 물은 하루에도 6천에서 8만개의 단어와 문장이 되어 끊임없이 나를 '부정' 덩굴 속으로 밀어 넣는데 말이다. 화수분처럼 마르지 않고 샘솟는 이런 물길은 막을수도 진로를 바꿀 수도 없다. 고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바로 '물을 사용하는 것'. 끊임없는 이 흘러나오는 물이 샘솟는 동시에 모두 소진된다면 어떨까. 그것을 틀어 막을 필요도 물길을 바꿀 필요도 없다. 그저 흘러나오는데로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소진해 버리는 것이다. '퀀텀 라이프'의 저자, '하킴 올루세이'처럼 어떤 부정적인 생각과 유혹이 샘솟는다면 그 감정을 부정하기도 막지도 말 것이며 바로 주변의 무언가를 세어 버린다. 무엇이든 괜찮다. 책꽂이에 있는 책의 권수도 괜찮다. 길가의 보도블럭의 숫자도 괜찮다. 하다못해, '싯다르타'처럼 자신의 호흡을 세는 것도 괜찮다.

 인간의 뇌는 동시에 여러가지 일을 하기 어렵다는 점을 활용하여 다른 하나의 집중할 거리를 만들어 버리자. 호흡을 세고 주변 혹은 자신을 관찰하고 현재를 집중하도록 함으로써, 나에게 스치고 지나갈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 잠을 에너지를 사용해버리자.

 어찌하면 될까. 짧은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도 좋고, 평소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것도 좋다. 뇌에게 '부정적인 생각'이 스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활동은 무엇이 있을까.

 비디오 게임? 비디오 게임은 즉각적인 보상에 길들어진 뇌를 만든다. 단 30분만에 '승패'가 결정되는 '게임'의 '보상'에 익숙해져 버린다면, 과연 '삶'의 어떤 부분에서 그보다 더 빠르고 즉각적인 보상을 얻을 수 있을까. 삶에서 주어지는 대부분의 '보상'은 그것보다는 훨씬 지연된 방식으로 오는데 말이다.

 영상? 영상은 시각 정보의 흐름에 따라 정보를 받아 드릴 수 있다. 아주 쉽고 간편하다. 책읽기보다 더 빠르고 쉽게 정보를 이해할 수 있다. 책 읽기가 바가지에 물을 떠서 몸에 붓는 목욕법이라면, 영상시청은 무한대로 나오는 '샤워기' 같은 존재다. 다시말해, 책은 내가 멈추면 멈춰지지만, 영상은 내가 멈춰도 무한대로 정보를 쏟아낸다. 즉, 어떤 것이 더 뇌를 수고스럽게 하는 일인가.

 잡생각이 파고들 틈이 없게 하기 위해 우리는 무슨 선택을 해야 하는가. 결국 내가 선택한 일은 '책'이다. 책이라고 무조건 다 훌륭하다고 할 순 없다. 형편 없는 책, 시시한 책, 황당한 책 등. 책은 무수하게도 많은 종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책은 이렇다. 눈을 감고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는 것보다 조금은 더 생산적이고 적어도 덜 세상과 차단하도록 돕는다. 되려 세상과 연결하도록 하는 명상법이 아니던가.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그 생각은 다음 생각에게 꼬리를 내민다. 생각을 멈추기 위해서는 다른 생각을 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생각의 에너지를 다른 방향으로 모두 소진해 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채워지는 부정적 생각의 호수에 잠겨 익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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