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어린 시절 고생은 사서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연습'이 되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만나지 않으면 좋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고로 될 수 있다면 어릴 때 만나봐야 한다. 뭐든 그렇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좋은 것도, 좋지 않은 것도 두 번 부터는 쉽다.
바나나를 산책 시켜보자.
바나나를 산책시키는 것은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다. 여기에 산책하는 바나나를 쓰다듬어 보라고 주변인에게 요구까지 해보자. 더할 나위없이 이상한 의미다. 사람들은 거절하거나 피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거절 당하거나 실패해 보는 일은 일부러 많이 겪어본다. 겪으면 겪을 수록 담담해진다.
실패에 담담해 질수록 나아갈 수 있다.
실패는 성공을 향하는 카페트 같은 것이다. 즈려 밟고 나아가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 밟지 않고 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은 어렵다.
네모난 피자를 요구하거나 낯선이에게 말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이런 행동은 '거절'을 당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고로 거절을 당하면 좋다. 실패하면 성공하는 꽤 승패 없는 목적이다. 무언가를 해도 달성한다. '승낙'을 받아도 좋다. '승낙'을 받으면 어떻게 해야 '네모난 피자'를 얻을 수 있는지를 알게 되며, 실제 네모난 피자를 먹을 수 있게 된다.
20대 초반 수첩에 적어 두었던 글이 있다.
'평소에 다니지 않는 길로 다녀본다.'
인생이 새로워지는 방법 중 하나다. 너무 당연해서 일고의 가치도 없던 것에 '예외'를 두어 보는 것이다.
'자동차'를 처분했다. 가장 좋은 것은 '평소'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아이와 손을 잡고 거리를 걸을 수 있다. 아이가 말했다. 빨리 갈 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 한걸음 한걸음 꼭꼭 아이의 머릿속에 추억을 심어 놓을 수 있었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손으로 양치질을 하거나, 한번도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그렇다. 나이를 쌓아가면 새로운 것들이 사라진다. 실제 새로운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습관처럼 엄청나게 내리는 많은 선택들로 단순해지는 것이다. 행동에 온통 무의식적 흔적이 생긴다. 삶을 무의식에게 맡기고 나니, 의식이라는 녀석은 잡생각을 하느라 고통스러워진다.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구름 모양을 관찰하곤 했다. 바닥에 타일 무늬를 세밀하게 살펴 본 적 있다. 성인이 되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것은 아무 자극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운전을 할 때, 패달과 핸들을 어떻게 작동하는지, 숟가락은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온 신경을 집중했던 기억이 있다. 인생 초보 시절이다. 지금은 아니다. 모두 무의식의 역할이다. 시간이 지나면 노래를 부르거나 라디오도 들으며 운전 할 수 있다.
잡생각이 일상에 끼어들 여지가 많아진다. 습관적으로 밥을 먹고 무의식적으로 샤워를 하며, 생각없이 운전을 한다. 무의식에게 일을 밑기니, 자아는 과거나 미래를 혼자 떠나고 망상을 만들어 걱정을 안고 산다. 얼마 전, 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어떻게 주문해야 하는지 어리버리 했다. 경험 없는 일을 하는 나의 서투름이 어색했다. 나이가 많으면 점차 스스로 익숙한 것들로 채워 나간다. 결국 벗어나지 않는다. 고로 고립된다. 나또한 그렇지 않은가.
난데없이 '새빨간 소지품'을 사거나, 황당하게도 생전 배달주문 해 본 적 없는 샐러드보울을 주문하는 것도 그렇다. 한번의 일탈로 인생은 '무' 경험자에서 '유' 경험자로 엄청난 정체성을 획득한다. 고로 그것이 싫었던 이유를 재확인하거나 그것을 다시 좋아 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이 넓어진다. 삶이 다채로워진다.
세네카의 말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당신의 패기를 시험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일주일 동안 가장 보잘것없는 음식으로 연명하며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생활해보라.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당신이 두려워하는 최악의 상황인지 자문해 보라. 상황이 좋을 때 앞으로 닥쳐올 나쁜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행운의 여신이 상냥하게 구는 동안 우리 영혼은 그녀가 돌변할 때를 대비해 방어벽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이 망하더라도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지를 실험해 보았다고 하던 '일론 머스크'의 일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자기계발서나 철학서에서 많은 배움을 얻는다. 그러나 그것이 그저 정보로 흘러가버릴지 삶이 될지는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스토아학파의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지 마라. 몸으로 살아 내라."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최근 손웅정 작가의 글을 보고 삶으로 철학을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진정성 있는 것인지를 배웠다.
가끔 혼자 적막한 시간이 올때면 가끔 불평과 불만이 쌓일 때가 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거나 상념에 젖어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긍정'을 권유하며 나는 그렇지 못할 순간이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의 마음에 와닿는다.
"소리 내어 불평하지 말라... 혼자 있을 때도 하지 말라"
조용히 스스로 자신을 다잡고 천천히 자신의 철학을 삶으로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은 무의식에 쌓여 생으로 나오고 그것은 삶이 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